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매다<49> 파묵칼레
파묵칼레(Pamukkale)
2005년 11월 24일(목) 맑음 파묵칼레는 흐렸음
안탈랴 오토갈에서 10시 30분에 파묵칼레로 가기 위하여 데니즐리 행 버스를 탔다. 버스 회사에서 3시간이면 갈 수 있다더니 5시간 거렸다. 지나 온 길을 살펴보니 안탈랴에서 데니즐리로 바로 오지 않고 많은 곳을 거쳐 돌아오느라고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안탈랴에서 데니즐리로 올 때는, 버스가 바로 가는 것인지, 여러 곳을 들려 돌아가는 버스인지를 미리 확인하고 타야 했는데 그걸 몰랐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오는 시간을 많이 걸렸지만 버스 밖에 전개되는 낯선 지역을 살피면서 오는 재미도 있다.
데니즈리에 3시 30분 경에 도착하였다.
파묵칼레로 가는 미니 버스에서 또 우리 젊은이 정 양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파묵칼레에서 내려 같은 여관에 묵기로 하고 함께 저녁식사도 손수해서 먹었다. 여관은 깨끗하였으나 방이 좀 협소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잠자는 데는 별 불편이 없었다.
2005년11월 25일(금) 흐림
파묵칼레 석회층에서 일출을 보려고 아침 5시에 깨어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1시간 이상이 지났는데도 창밖이 어두웠다.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하늘에 검은 구름이 꽉 끼었었다. 파묵칼레 석회층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려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심하게 일었다. 정 양은 지난 밤에 잠을 설쳤는지 몸이 피곤하여 오전에는 쉬었다가 오후에 석회층을 관람하겠다고 하였다.
김군과 나는 여관 주방을 빌려 아침밥을 해서 먹고 바로 석회층으로 향하였다.
석회층은 넓은 산기슭 위에서 흘려 내려온 석회성분이 함유된 물이 오랜 시간을 거쳐서 결정체가 되고 산기슭 전체를 위덮은 것이다. 하얀 눈이 와서 덮고 있는 형상이다. 우리는 석회층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석회층 위로 흘러내리는 물에 발을 담그면서 위로 올라갔다. 층층이 다랑이처럼 만들어 물이 담겨있는 있는 곳에 석회의 앙금이 갈아 앉았다. 굳지 않은 석회의 앙금이 발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온천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라 차갑지 않고 미지근하여 물속을 걷기도 좋았다.
석회층의 한 가운데에 들어서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하얀 대지에 있는 예쁜 다랑이마다 고인 물이 푸른 빛깔로 곱게 물들어 신비로운 기운마저 풍겼다. 하얀 바탕에 고여 있는 파란 물빛의 아름다움이 환상적이다. 그리고 석회층의 규모가 광대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감미로운 느낌을 주는 석회를 밟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석회수가 흘러내리다가 계단식 논 같은 곳에 석회수가 고여 파란 빛을 띠고 있는데 천연적 다랑이의 석회수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고, 인위적으로 석회성분의 물이 흘러내리게 하여 물이 고이면서 석회가 가라앉은 곳으로만 사람들이 들어가서 거닐 수 있게 하였다. 석회수가 담긴 다랑이에 들어가면 감미로운 감촉을 가질 수 있고 신비의 세계에 자신을 맡긴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석회층을 벗어나 언덕 위쪽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페르가몬 왕국의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도시는 페르가몬 왕 에우메네스 2세가 세웠는데 로마와 비잔틴 시대까지 오랜 기간 번성했으나 셀추크 왕조에 의해 멸망했다.
히에라폴리스에는 가장 볼만한 것이 원형극장이었다. 이 원형극장은 부분적으로 오랜 세월을 견디기 어려워 파손된 곳도 많았지만 기원전 2세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원형극장으로는 보존상태가 좋고 극장 상부에 올라서면 전망도 멋지다. 2,200백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거대하고 웅장하며 오랜 세월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그 원래의 모습을 이만큼이나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장하였다. 원형극장 안에 들어가서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관객들이 출입하였던 문과 전면 무대의 모습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극장의 돌계단에 앉아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왜 만들었을까.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였을까. 무대에 나섰던 사람들과 관객은 어떤 관계였을까. 이 원형극장에서 직접 민주의의를 실시하던 곳은 아니었을까. 오늘처럼 공연이 위주였을까. 관객은 자발적으로 왔을까 동원된 사람들이었을까. 죄인을 재판한 장소로 사용되진 않았을까. 혹시 주민을 모아놓고 죄인을 처형하여 본을 보이던 곳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을까............
원형극장 앞에는 아폴로 신전의 흔적도 보이는데 건축 구조물은 모두 사라지고 그 터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아폴로 신전 앞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이어지는 大路(양쪽에는 원주들이 늘어져 있었던 같음)가 있는데 그 대로변에는 고대 유적들이 그대로 방치되어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大路에는 크고 작은 원주들과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던 무수한 석재들이 흩어져 있어 고대인들의 영화스러웠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대로에는 비잔틴게이트와 로만게이트가 있다. 이 문들은 대부분 허물어져 겨우 그 형체가 조금만 남아 있을 뿐이다. 로만게이트는 북쪽 끝부분 가까운 곳에 있는데 로마 양식으로 표현하였으며 기원 1세기 경에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하여 도미티안 문이라고도 한다.
도미티안 문을 지나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돌로 쌓아올리고, 벽 표면은 대리석으로 둘러싼, 대형아치를 지닌 전형적인 로마 건축이 보이는데 이것이 북쪽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이 목욕탕도 기원전 2세기의 건축물인데 한때는 교회로도 사용되었었단다. 이 목욕탕은 석축이 많이 무너지고 흩어져 돌무더기를 모아놓은 것 같다. 현재의 목욕탕 건물도 쌓아 놓은 석축들이 서로 어긋나 있어서 불안한 상태이다.
목욕탕 북쪽으로 가면 공동묘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석관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여기가 아크로폴리스라고 한다. 터키에서 고대 공동묘지로서는 가장 크고 오랫동안 이용되었었다는 아크로폴리스는 그 양식이 헬레니즘에서 비잔틴 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점심식사는 박물관 앞 노천에서 가지고 온 빵으로 해결하고 2시에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박물관은 2세기에 만든 남쪽 목욕탕을 이용해서 히에라폴리스에서 출토된 조각과 석관등을 전시해 놓았다. 조각들이 대체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것들로 정교하다. 조각품들 가운데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담은 것들이 많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읽어 읽어보고 왔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아폴로 신전 아래에 있는 기념품가게들이 들어선 건물 안에는 온천 수영장이 있는데 물에 손을 넣어보았더니 따뜻하였다. 수영장 한쪽에서는 서양 사람들 여남은 명이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온천장에는 부서지고 조각난 것들이긴 하지만 히에라폴리스의 유물인 석물들이 물속에 그대로 잠겨있다. 그 석물들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온천장을 만들면서 유적지에 버려져 있는 것들을 가져다가 넣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온천장에서 나와 아폴로 신전에 가서 그 앞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석조물들을 다시 보았다. 유적지 복원 사업을 위해서 모아놓은 것 같다. 석조물이 부서져 토막 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석조물에는 부조를 해 놓았는데 그 솜씨가 하나같이 뛰어나다.
히에라폴리스는 정말로 장대하고 큰 규모의 유적지이다. 석회층에 가려 히에폴리스의 빛이 좀 바래진 것 같다. 나는 석회층보다 유적지에 마음이 더 끌렸다.
저녁에는 김 군이 카파도키아로 가는 것을 배웅해주었다. 예의도 바르고 책도 많이 읽은 것 같다. 컴퓨터학과에 다니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학생이다. 생각과 행동이 반듯한 청년이다.
김군을 보내고 오늘 오후에 정양과 안탈랴에서 파묵칼레로 온 신군과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파묵칼레의 석회층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
로만 게이트(도미티안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