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동유럽을 헤매다<50> 에페스
셀추크 . 에페스
2005년 11월 26일(토) 비
아침 5시 경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오늘 셀추크로 가야 하는데 비가 오는 소리를 들으니 걱정이 되었다.
6시30분경 침대에서 일어나 4층 리셉션실에 들어갔더니 한국인 부부가 와 있었다. 경주에서 관광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현장 답사 겸 관광을 왔다고 하였다.
나는 2일간의 숙박비를 계산하고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바로 데니즈리 행 버스를 탔다. 데니즈리 기차역에 8시에 도착하였다. 8시 30분에 출발한 기차는 셀추크에 12시30분에 도착하였다.
기차 안은 우리나라 통근 열차처럼 지정좌석이 없고 먼저 들어온 사람이 자리에 앉고 뒤에 들어온 사람은 자리가 없으면 서 있어야 한다. 차창밖에는 비가 와서 대지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으며 개울에서는 흙탕물이 세차게 흘러갔다.
기차 길 연변은 올리브나무와 귤나무에 노란 귤이 꽃처럼 달린 과수원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갈대처럼 생긴 나무들이 기차 길을 따라서 줄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차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우측 산허리에는 하얀 안개가 띠를 둘렀다. 달리는 기차 속에서 터키인들의 빠르고 높은 톤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정겹다.
어떤 청년이 내게로 다가와서 영어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 직업은 무엇이냐 보수를 얼마나 받느냐 결혼했느냐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 무수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중학교 사회과목 교사인데 군에 입대하기 위해서 지금은 쉬고 있다고 하였다. 군에 입대해서 16개월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복직할 것이라 하였다. 터키의 청년들은 군대에 16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복무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사는 곳도 무척 아름다운 곳이니까 거기도 들려보라고 권하였다. 그런데 건성으로 들어서 도시이름을 외어두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무척 미안하다. 그의 따뜻한 마음씨를 봐서라도 도시 이름을 기억했다가 사정이 허락하면 들려 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셀추크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내가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니까, 자기가 셀추크에 들어서면 일러주겠으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무척 순진한 청년이었다. 좀 긴 시간을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셀추크 역에 내렸을 때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어느 젊은 여인이 내가 우산이 없어서 머뭇거리니까 우산을 받쳐주면서 자기가 여관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여 따라갔다. 驛舍에서 100여 미터쯤 되는 곳에 가서 어느 가게에 들어서더니 나를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어떤 남자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그 남자를 따라가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무슨 술수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잠깐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그들의 생김새가 순진해 보였고 나를 도와주려는 순수함이 느껴져서 오히려 잠깐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죄스러웠다. 그 남자는 나에게 우산을 주고는 자기는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앞장서서 나가려는 것을 내가 말렸다. 그래서 처마 밑에서 잠깐 비를 긋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그 남자는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앞장서 갔다. Homeros Pansion이란 간판이 보였다. 그는 집 주인을 불러내어 나를 인계하고는 악수하고 헤어졌다. 터키인들의 친절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참으로 친절한 터키인이다....
저녁 때는 구름이 높이 올라갔다. Homeros Pansion은 예상보다 값이 비쌌다.
에페스(에페소스)
2005년 11월 27일(일) 맑음 아침에 여관집 아주머니가 싱글벙글거리면서 아침 식사를 주고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는 것이었다. 아마 비가 계속 오다가 오늘 모처럼 날씨가 맑아진 모양이다.
10시경에 여관을 나와서 에페스까지 3km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중간에 다른 구경거리가 있으면 그것도 들러서 보기 위해서였다. 도중에 ‘잠들어 있는 일곱남자의 교회’나 ‘성모마리아 교회’로 가는 길 안내 표지판이 보였지만 걸어온 길이 멀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유적지 입구에 있는 고대 체육관과 경기장 앞길을 지나 바로 매표소로 갔다.
고대 경기장 앞을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친절하게 다가오더니 내 손에 무얼 쥐어주기에 보았더니 코인이었다. 그는 나에게 코리안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였더니 자기 할아버지가 한국전전쟁에 참전했다고 하면서 코인을 사라는 것이었다. 사지 않았다.
고대 체육관과 경기장은 건축물들이 허무어진 채 방치해 둔 것 같다.
날씨가 화창하여 파란하늘과 맑고 산뜻한 공기가 에페스(Efes) 유적지를 아주 돋보이게 했다. 유적지의 통로에 도열해 있는 원주(圓柱)들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석조물들이 희고 깨끗하여 신비감을 느끼게 하였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니 맞은 편 산비탈에 대극장이 보였다. 참으로 거대한 극장이다. 당시에 이곳에서는 연극 상연과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 회의장이었다고 한다.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로마시대에 확장하여 2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었다고 한다. 4세기경에는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도 벌였다고 한다.
극장 입구에서 일군의 여학생들이 나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달라면서 막아섰다. 그들의 발랄한 모습을 부러워하면서 대극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들 중 한 여학생의 메일 주소로 사진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국 단체 관광객들도 여럿이 만났다. 그들은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 들어서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매표소에서 들어오면 처음으로 들어서는 길이 ‘아디카디안 거리’라고 하는데 대리석으로 깔아놓은 길이 서쪽으로 멀리 뻗혀 있는데 에게 해로 통하는 항구와 대극장을 연결 하던 길이였다고 한다. 대극장 앞에서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대리석을 깔아놓은 길을 마블거리, 도서관에서 시공회당까지의 대리석 길을 크리테스거리라고 한다. 이 길들을 중심으로 좌우에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던 흔적이 파손된 상태로 현장을 지키고 있다.
돌들 하나하나에 들인 공역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이 수많은 석재들을 기계 장비가 아닌 사람의 손끝으로 일일이 다듬고 옮기고 했을 것을 상상해 보면 기술과 노동력 시간 등이 얼마나 동원되었을까 상상하기도 힘들 것 같다. 공회당 대극장 등을 만들고 거기서 토론하고 의견을 집약하고 또는 연극과 격투기를 관람할 수 있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고 하니 옛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나의 상상력으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길은 대리석으로 깔려 있고 대리석 길 밑으로는 하수로를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대리석 길 양편으로는 수많은 석주와 석물들, 사람의 손끝이 일일이 미쳤던 석물들---그것은 정교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다듬고 부조(浮彫)하여 멋을 부렸다.
케르스스 도서관 정면에는 지혜 학문 운명 미덕의 네 가지 의미를 상징하는 여성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케르스스 도서관을 마주 보고 섰을 때의 우측에는 상업 지역이었던 아고라로 이어진다. 도서관에서 이 상업 지역으로 들어가려면 마제우스와 미트리다레스 문이 있는데 이것은 아우구스트 황제의 노예였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가 해방될 때 황제에게 감사의 표시로 세운 것이라 한다.
크레테스 거리를 올라가는 왼쪽에 하드라아누스 신전 입구 정면의 아치 위에 여신 티케가 새겨져 있고 그 안쪽 아취 위에는 양손을 벌린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다.
헤라클레스 문을 지나면 외쪽에는 메미우스 비가 있다. 포투스에서 에페소스를 탈환한 로마의 독재관이며 메미우스의 할아버지인 스라를 칭송하는 말들을 새겨놓은 것이다.
거기서 왼쪽으로 올라서면 시공회당과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악당이 있다. 여기서는 시민 대표자회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음악당에 들어가서 계단에 앉아 있는데 신군을 또 만났다. 신군은 배낭여행을 하는 다른 젊은이 두 사람과 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들과 어울려서 다녔다. 신군은 내일 실린제를 구경하고 밤차로 부르사로 간다고 하였다. 내일 실린제에 갈 때 만나기로 하고 셀추크로 돌아와서 각자 여관으로 헤어졌다.
페리세폴리스, 파묵칼레의 히에라폴리스 그리고 여기 에페스는 역사의 현장으로 인류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래 사진들은 에페소입니다
좌측 이층이 도서관 -- 우측의 두개의 문은 상업지역의 아고로 통하는 문인데 마우제스와 미트리다테스 가 노예에서 해방이 되면서 감사의 표시로 이 문을 만들어 황제 일가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크레테스 거리 --도서관에서 헤라클레스문까지 이어짐
헤라클레스문쪽에서 도서관을 향하여 찍은 사진입니다.
셀추크
아래사진들은 요한 성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