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매다<54> 프라하 그리고 빈으로

어르신네 2006. 10. 25. 00:05


프라하 그리고 빈으로


2005년 12월 5일(월) 흐림. 엷은 안개로 인하여 시계가 맑지 못하다.

오늘도 프라하 성과 소지구(카를 교, 성 니콜라스 교회)를 다시 돌아보고 신시가지로 가서 박물관 구경을 하였다. 

장군과 이군 그리고 서양과 함께 걸어서 로레타 교회 앞을 지나 왕궁으로 갔다. 어저께 보았던 왕궁을 다시 둘러보았다. 왕궁 앞의 근위병은 어제나 오늘이나 미동하지 않고 인형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왕궁을 돌아 소지구의 각국 대사관이 자기잡고 있는 곳을 지나서 카를 교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다가 비틀즈의 한 멤버가 낙서를 해놓은 유명한 벽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비틀즈의 낙서가 어느 것인지는 찾지 못하고, 그 많은 낙서 중에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낙서만 돋보여 그것만 기억하고 돌아 나왔다.


카를 교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간광객으로 넘쳐났다. 구시가지와 구시가지 광장을 다시 돌아보고 비츨라프 광장으로 가서 우체국에서 엽서를 붙였다. 기차표 예매소를 찾아 오스트리아의 빈(Wien)으로 가는 차표를 예매(30유로)하고 나왔다. 서 양도 내일 빈으로 함께 가기로 하였다.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아 코나(kn)로 환전하여 지불하였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래서 유태지구를 들러보는 계획을 취소하고 나는 젊은이들과 헤어져 박물관을 갔다.


박물관은 3시30분경에 들어갔다. 3층과 4층을 돌고 나왔다. 역대 유명 인사들의 인물 조각상가 그림들이 전시되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단지 이들은 자기 역사에 대한 사랑, 역사적 인물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거기에 담겨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각종 돌과 수정 그리고 보석들은 정말로 수없이 수집 전시해 놓았다 또 화석도 아주 많은 양이 전시되었는데 진귀한 것들로 보이는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각종 동물 새 어패류들의 박재의 수량도 엄청나게 많았으며 모두 나에게는 진귀하게 보였다. 인류가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해온 과정을 상세하게 현물로 전시해 놓은 것들도 특별하게 보였다.

박물관을 나와서 Tesco(대형 마켓)로 가서 저녁에 먹을 음식을 조금 사고 포도주를 1병 사가지고 민박집에 돌아와서 젊은이들과 나눠 마셨다.



2005년 12월 6일 (화) 프라하에서 출발할 때는 흐린 날씨였는데 기차를 타고 프라하를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서부터는 계속 눈이 내렸고 빈에 도착했을 때는 비로 바뀌었다.

아침에 날씨가 흐려 음산한 분위기였다. 11시에 민박집에서 나왔다.


서 양과 함께 빈으로 가기 위해 트램을 타고 카를 교를 조금 지나서 내렸다. 시내 지도상으로 보아서는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서양이 갑자기 내리자는 하는 바람에 따라 내렸다. 거기서부터 프라하 본역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서양이 역으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더니 전혀 감을 잡지 못하였다. 사전에 역으로 가는 길을 답사해 두었더라면 이런 낭패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체코 사람들은 오랜 공산주의 치하에서 생긴 버릇인지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의 표정이 무뚝뚝하게 굳어 있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이곳 체코사람들에게 길을 묻기 위해 가까이 가면  얼른 외면해 버리거나 바쁘다는 표정으로 말도 하기 전에 손을 내저으면서 피해 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아마 오랜 기간 공산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표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길을 묻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프라하 본역까지 갔다. 12시에 출발하는 차를 타야 하는데 프라하 본역에 도착하였을 때는 12시가 다 되었다. 뛰어서 플랫폼에 올라가서(양쪽에 열차가 있어서 쩔쩔매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가 타고 있는 차가 빈으로 간다고 해서 얼른 올라탔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서양은 아직 기차를 못 탔는데. 움직이는 열차 계단 난간에 나가서 서양의 가방을 끌어올렸다. 간신히 서양도 열차에 올랐다. 휴우우............... 이런 것을 가지고 극적이라 하던가.


12시 정각에 프라하 본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프라하 시내를 벗어나 평야의 농촌지대로 들어서서 달렸다. 날이 흐리고 안개가 깔려 시야가 맑지 않았다. 곧 이어 열차 밖은 눈이 펑펑 내렸다. 온천지가 눈으로 덮였다. 15시 10분에 Braclav 역을 출발하자마자 출국자들에 대한 검문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오스트리아 국경을 지나서 이번에는 Hobenau라는 역을 출발하자마자 입국검문이 있었다.


기차는 16시 30분에 빈의 남부 역에 도착하였다. 서부역에 내렸으면 내가 예약한 까치민박집을 쉽게 찾아갈 수 있을 터인데, 남부 역에서 트램을 타고 7정거장인가를 더 가야 했다. 빈에 내리니 눈이 비로 바뀌어 억수로 쏟아 부었다. 서 양은 호스텔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처음 여행을 하면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단 몇 시간이라도 함께 지냈으면 헤어지기가 아쉽고 좀더 같이 지내고 싶다는 마음의 끈을 붙잡고 힘들어했다. 그런데 여행이 석 달째로 접어드는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헤어지는 데에 익숙해졌다. 서양과 언제 또 만날지는 모르지만 나머지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비 내리는 빈의 밤거리에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까치민박집에 도착하였다.


 

 프라하의 국립박물과 내부 층계

 프라하의 국립박물과 앞 바츨라프 광장



카를 교에 있는 십자가 앞에서

카를 교



국립박물관

박물관앞 동상




구 시청 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