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맸다<1>
2005년 9월 30일 17시50분 대한항공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22시45분에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동양호텔에 픽업을 부탁하였더니 이스탄불 공항 출구에 터키인이 내 이름을 쓴 종이를 양손에 높이 들고 있었다. 동양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2005년 10월 1일(토) 맑음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어제 저녁에 공항에서 같이 픽업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오늘 일정을 물어보았더니 나의 일정과 비슷하여 그들과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모두 네 명이 동행이 되어 고고박물관과 토프카프 궁전, 아야 소피아박물관과 불루자미를 관람하였다. 그런데 오늘 동행했던 이들은 이스탄불에서 오늘 보지 못한 구경거리들은 출국하기 위하여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마저 보고 귀국할 거라고 하였다. 나도 애초에 계획했던 일정을 바꿔서 그들처럼 이스탄불에는 다시 들려야 하기 때문에 그때 와서 나머지를 구경하기로 하고 다음 코스로 떠나기로 하였다. 그녀들은 저녁 7시경에 카파토키아로 가고, 나는 밤11시30분에 출발하는 사프란볼루행 버스표를 예매하였다. 여관에서 알선한 버스를 탔는데 10시 30분경에 시외 버스터미널까지 버스회사의 셔틀버스가 픽업해 주었다. 마침 일본인 학생과 동행할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고고박물관에는 소장품도 많고 다양하며 그야말로 대단한 박물관이었다. 이곳에는 헬레니즘 시대부터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과 석상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역사에 무지하고 게다가 사전 지식 없이 무작정 들어갔기 때문에 전시물의 참다운 의미나 그 가치를 헤아리지 못하고 전시물들이 나에게는 하나의 돌조각이나 그림일 뿐이었다. 그래서 대충 눈요기나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느 역사 서적에서 많이 본 듯한 것들이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하고 정교한 조각품들을 보면서 그저 입을 다물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전시물에 넋이 팔려 오전시간을 몽땅 바쳤다. 15세기 중엽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황제 메메트 2세에 의해 비잔틴제국을 정복한 후 부르사에서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겼다. 이스탄불이 오스만 투르크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토프가프 궁전은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간이나 황제(술탄)들이 살았던 성이다. 서방세계를 제패하다시피 하였던 황제가 살던 토프카프 궁전은 보스프러스 해협에 면하여 주변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건축물들이 그 규모가 크고, 호화롭고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궁전의 호화로움에 감탄도 하고, 또 보물관에 전시해 놓은 보석들에 넋을 놓고 보석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나는 평소에 보석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탓에 흥미도 없고 하여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오스만 제국 황제들의 여인들이 거쳐했다는 하렘은 중요한 볼거리의 하나인데 같이 들어간 사람들이 높은 입장료 때문에 관람을 포기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들어가지 않았다. 토프카프 궁전은 기대가 컸던 만큼 나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고고학박물관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나온 탓인가? 그러나 궁전의 휘황찬란한 초호화판 장식물들과 주변경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나왔을 때는 무언가 많은 것을 놓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아야 소피아의 웅장함은 형언하기 어렵다. 아야 소피아는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콘스탄티우스 2세가 360년에 세운 교회가 그 모체이다. 현재의 이 건물은 537년에 세운 것으로 그리스 정교의 대성당이었다. 콘스탄티노플 때에는 그리스 정교였던 것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성립되면서 회교의 건물로 바뀌었다. 당시 성모상과 예수의 상들을 지우려고 그 위에 덧칠을 하였으나 덧칠한 것이 벗겨지면서 그 안에 묻혀 있던 예수와 마리의 상이 최근에 발견되었고 한다. 그것이 특히 서양 사람들이 그 앞에서 장사진을 이룬다. 내부의 안쪽은 지금 한창 수리중이라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현재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놀라게 하였다. 내부의 무늬들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놓았다고 믿기지 않는 것들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성(城)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몇 구비를 돌고 돌아 위층의 난간으로 올라섰다. 아래쪽 바닥이 가물가물 거렸다. 우측으로 돌아 안쪽으로 갔더니 벽면에 덧칠했던 것이 벗겨져나가고 예수와 마리아상 등 성화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염이 없었다. 안쪽 기둥에는 둥글고 커다란 검은 바탕에 황금색으로 이슬람을 상징하는 글을 도안해 놓은 것이 사방으로 붙어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신비롭다. 우리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나와서 분수대와 공원길을 가로질러 바로 옆에 있는 블루 자미로 갔다. 하늘을 찌를 듯이 힘차게 솟아오른 뾰족탑(미나레)과 웅장한 모스크가 우리를 압도하였다. 우리는 자석에 이끌려가는 못처럼 불류자미에 도착하였다. 운이 좋아서 이교도들에게 내부를 공개하는 시간에 도착하여 모스크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내부는 높고 웅장한 돔과 내벽의 파란색 타일과 다양한 문양과 색으로 만든 스텐글라스가 우리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슬람 사람들의 신앙심을 단적으로 볼 수 잇는 기도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불루모스크에서 나와 오늘의 관람을 모두 마감하고 소피아 성당 앞 분수대가장자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서쪽으로 기운 햇빛을 받아 웅장하면서도 찬란한 아야소피아와 아야소피아를 보호하는 듯이 높아 솟아 있는 미나레가 한데 어울려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또 서족에는 블루자미도 여섯 개 미나래의 호위를 받으면서 신비로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솟아오르는 분수의 시원한 물줄기와 함께 주변의 아름답운 새로운 정경에 해가 넘도록 취해 있었다. 저녁7시경에 카파토기아로 가는 사람들의 픽업버스가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보스포러스의 해변으로 내려가서 밤바다의 야경을 보았다. 이스탄불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밤바다 위로 대형 여객선에서 새어나온 불빛을 이용하여 갈매기들이 밤을 잊고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객선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들고 났다. 도시의 여러 곳에서 자미의 미나래가 품어내는 파란 빛은 이스탄블을 아름답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바닷가 식당에서 저녁밥을 사먹고, 동양호텔로 올라왔다. 그리고 사프란볼루를 가기 위하여 10시 30분경에 픽업 온 셔틀버스를 타고 시외터미널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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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30일 17시50분 대한항공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22시45분에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동양호텔에 픽업을 부탁하였더니 이스탄불 공항 출구에 터키인이 내 이름을 쓴 종이를 양손에 높이 들고 있었다. 동양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2005년 10월 1일(토) 맑음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어제 저녁에 공항에서 같이 픽업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오늘 일정을 물어보았더니 나의 일정과 비슷하여 그들과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모두 네 명이 동행이 되어 고고박물관과 토프카프 궁전, 아야 소피아박물관과 불루자미를 관람하였다.
그런데 오늘 동행했던 이들은 이스탄불에서 오늘 보지 못한 구경거리들은 출국하기 위하여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마저 보고 귀국할 거라고 하였다. 나도 애초에 계획했던 일정을 바꿔서 그들처럼 이스탄불에는 다시 들려야 하기 때문에 그때 와서 나머지를 구경하기로 하고 다음 코스로 떠나기로 하였다. 그녀들은 저녁 7시경에 카파토키아로 가고, 나는 밤11시30분에 출발하는 사프란볼루행 버스표를 예매하였다. 여관에서 알선한 버스를 탔는데 10시 30분경에 시외 버스터미널까지 버스회사의 셔틀버스가 픽업해 주었다. 마침 일본인 학생과 동행할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고고박물관에는 소장품도 많고 다양하며 그야말로 대단한 박물관이었다. 이곳에는 헬레니즘 시대부터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과 석상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역사에 무지하고 게다가 사전 지식 없이 무작정 들어갔기 때문에 전시물의 참다운 의미나 그 가치를 헤아리지 못하고 전시물들이 나에게는 하나의 돌조각이나 그림일 뿐이었다. 그래서 대충 눈요기나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느 역사 서적에서 많이 본 듯한 것들이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하고 정교한 조각품들을 보면서 그저 입을 다물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전시물에 넋이 팔려 오전시간을 몽땅 바쳤다.
15세기 중엽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황제 메메트 2세에 의해 비잔틴제국을 정복한 후 부르사에서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겼다. 이스탄불이 오스만 투르크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토프가프 궁전은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간이나 황제(술탄)들이 살았던 성이다. 서방세계를 제패하다시피 하였던 황제가 살던 토프카프 궁전은 보스프러스 해협에 면하여 주변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건축물들이 그 규모가 크고, 호화롭고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궁전의 호화로움에 감탄도 하고, 또 보물관에 전시해 놓은 보석들에 넋을 놓고 보석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나는 평소에 보석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탓에 흥미도 없고 하여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오스만 제국 황제들의 여인들이 거쳐했다는 하렘은 중요한 볼거리의 하나인데 같이 들어간 사람들이 높은 입장료 때문에 관람을 포기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들어가지 않았다. 토프카프 궁전은 기대가 컸던 만큼 나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고고학박물관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나온 탓인가? 그러나 궁전의 휘황찬란한 초호화판 장식물들과 주변경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나왔을 때는 무언가 많은 것을 놓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아야 소피아의 웅장함은 형언하기 어렵다. 아야 소피아는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콘스탄티우스 2세가 360년에 세운 교회가 그 모체이다. 현재의 이 건물은 537년에 세운 것으로 그리스 정교의 대성당이었다. 콘스탄티노플 때에는 그리스 정교였던 것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성립되면서 회교의 건물로 바뀌었다. 당시 성모상과 예수의 상들을 지우려고 그 위에 덧칠을 하였으나 덧칠한 것이 벗겨지면서 그 안에 묻혀 있던 예수와 마리의 상이 최근에 발견되었고 한다. 그것이 특히 서양 사람들이 그 앞에서 장사진을 이룬다. 내부의 안쪽은 지금 한창 수리중이라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현재 보이는 것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놀라게 하였다. 내부의 무늬들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놓았다고 믿기지 않는 것들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성(城)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몇 구비를 돌고 돌아 위층의 난간으로 올라섰다. 아래쪽 바닥이 가물가물 거렸다. 우측으로 돌아 안쪽으로 갔더니 벽면에 덧칠했던 것이 벗겨져나가고 예수와 마리아상 등 성화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염이 없었다. 안쪽 기둥에는 둥글고 커다란 검은 바탕에 황금색으로 이슬람을 상징하는 글을 도안해 놓은 것이 사방으로 붙어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신비롭다.
우리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나와서 분수대와 공원길을 가로질러 바로 옆에 있는 블루 자미로 갔다. 하늘을 찌를 듯이 힘차게 솟아오른 뾰족탑(미나레)과 웅장한 모스크가 우리를 압도하였다. 우리는 자석에 이끌려가는 못처럼 불류자미에 도착하였다. 운이 좋아서 이교도들에게 내부를 공개하는 시간에 도착하여 모스크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내부는 높고 웅장한 돔과 내벽의 파란색 타일과 다양한 문양과 색으로 만든 스텐글라스가 우리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슬람 사람들의 신앙심을 단적으로 볼 수 잇는 기도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불루모스크에서 나와 오늘의 관람을 모두 마감하고 소피아 성당 앞 분수대가장자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서쪽으로 기운 햇빛을 받아 웅장하면서도 찬란한 아야소피아와 아야소피아를 보호하는 듯이 높아 솟아 있는 미나레가 한데 어울려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또 서족에는 블루자미도 여섯 개 미나래의 호위를 받으면서 신비로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솟아오르는 분수의 시원한 물줄기와 함께 주변의 아름답운 새로운 정경에 해가 넘도록 취해 있었다.
저녁7시경에 카파토기아로 가는 사람들의 픽업버스가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보스포러스의 해변으로 내려가서 밤바다의 야경을 보았다. 이스탄불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밤바다 위로 대형 여객선에서 새어나온 불빛을 이용하여 갈매기들이 밤을 잊고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객선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들고 났다. 도시의 여러 곳에서 자미의 미나래가 품어내는 파란 빛은 이스탄블을 아름답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바닷가 식당에서 저녁밥을 사먹고, 동양호텔로 올라왔다. 그리고 사프란볼루를 가기 위하여 10시 30분경에 픽업 온 셔틀버스를 타고 시외터미널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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