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65세의 젊은이가 중동을 헤맸다<2>
2005년 10월 2일(일) 흐림 오후 늦게부터 비
밤에 버스로 이동하면서 좌석에 앉은 채로 잠을 자서 몸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견딜 만하였다. 그리고 버스(Ulusoy)가 훌륭했다. 어저께 이스탄불에서 좀 무리한 관광일정을 소화해내느라고 몸이 극히 피로한 상태에서 버스를 탔기 때문에 5시간을 한번도 깨지 않고 잔 것 같다. 그러나 오늘 하루 종일 피로하였다. 역시 늙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사프란볼루 터미널에 내렸을 때, 일본 학생이 예약한 Bastoncu Pensyonu의 주인이 픽업해 주었다. Pension 주인이 제공한 빵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밤새도록 버스에 시달린 몸을 풀기 위하여 도미토리의 침대에다가 몸을 맡겼다.
오전 내도록 잤는데 문을 열어 놓고 자서 그런지 감기 증세와 함께 약간 어지럼증이 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조금씩 걸어 보았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입은 옷이 얇아서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몸을 따스하게 다스렸다. 그리고 혼곤하게 한잠 더 자고 났더니 몸이 가벼웠다. 다행이었다.
오후에는 여관 뒤쪽 얕은 언덕을 향하여 가파른 길을 따라 올랐다. 오르다가 보니 어떤 가정집의 2층에서 아기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귀여운 모습을 보니 손녀들 생각이 났다. 그 아기와 한참 동안 손을 흔들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아기들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천사와 같다.
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 위 평평한 곳을 손질하여 공원으로 조성해 놓기는 했는데 좀 엉성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의 것인지, 꽤 큰 석관이 공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언덕에서는 구 시가지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사프란볼루는(Safranbolu)는 소읍이다. 사프란볼루라는 도시이름은 이곳에서 자생하는 사프란이라는 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시가지의 로터리에 사프란볼루를 상징하는 꽃을 모조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아래 사진 참조) 주변은 대체로 농토로 둘러있는데 땅에 돌이 많이 섞여 있어서 전반적으로 척박해 보였다. 그리고 지형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라고 할 수 있는데 굴곡이 심하다. 굴곡진 곳들이 특이한 형태를 이루어 눈길을 끌었다.
또 오래된 가옥들도 눈길을 끌었는제 그 가옥 구조도 특이하였다. 대개 이삼층인데, 목조로 집의 골격을 세우고 짚을 썰어 짓이긴 흙으로 벽을 만들었다. 일본 주택과 흡사하다. 그래서 그런지 도미토리에 들어있는 일본 젊은이들은 내일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있는 마을로 관람을 갈 것이라 하였다. 이곳의 전통가옥은 유내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절후가 늦가을로 접어들어 기후가 건조해서 그런지 대지의 초목은 모두 시들어 마른 풀이 많고 마지막 생명을 부지하기에 힘겨운 모습이다. 수목들은 우리나라와 거의 같았다. 소나무가 많고 배나무, 모과수, 호두나무에는 탐스런 열매가 매달려 있다.
언덕 밑으로 흘러내린 절벽이 절묘한 풍치를 이루었다. 밤에는 절벽하단에서 절벽 상단으로 라이트를 비춰서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길에는 대부분 작은 돌을 깔아놓았다. 매끄럽고 평평한 돌이 아니라, 작은 굴러다니는 돌들을 시멘트에 촘촘히 박아놓았기 때문에 길을 걷기가 편안하지 않았다. 그 돌길을 만드는데 많은 인력이 들었을 것 같다.
옛날에는 이곳이 번성했던 상업지역(14~17세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한 시골 장터 같은 느낌이 든다. 거리의 상점들은 관광객을 위한 상품들을 빼곡하게 진열해 놓았는데 지금은 비수기라서 그런지 거리가 한산하다. 이곳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고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는데 정이 넘친다.
도미토리에서 네 명의 젊은 일본인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들은 여행을 많이 하는 젊은이들로서 아주 친절하고 예의를 갖추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여관 일을 하고 있는 여관집 딸은 일본인들과 일본어로 막힘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국외자로서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여관집 딸은 작은 키에 날렵한 몸놀림이 여간 귀엽지 않다. 상냥하게 손님들을 대접하였다. 일본 젊은이들도 나에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주인집 사람들의 친절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2005년 10월 2일(일) 흐림 오후 늦게부터 비
밤에 버스로 이동하면서 좌석에 앉은 채로 잠을 자서 몸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견딜 만하였다. 그리고 버스(Ulusoy)가 훌륭했다. 어저께 이스탄불에서 좀 무리한 관광일정을 소화해내느라고 몸이 극히 피로한 상태에서 버스를 탔기 때문에 5시간을 한번도 깨지 않고 잔 것 같다. 그러나 오늘 하루 종일 피로하였다. 역시 늙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사프란볼루 터미널에 내렸을 때, 일본 학생이 예약한 Bastoncu Pensyonu의 주인이 픽업해 주었다. Pension 주인이 제공한 빵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밤새도록 버스에 시달린 몸을 풀기 위하여 도미토리의 침대에다가 몸을 맡겼다.
오전 내도록 잤는데 문을 열어 놓고 자서 그런지 감기 증세와 함께 약간 어지럼증이 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조금씩 걸어 보았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입은 옷이 얇아서 다시 여관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몸을 따스하게 다스렸다. 그리고 혼곤하게 한잠 더 자고 났더니 몸이 가벼웠다. 다행이었다.
오후에는 여관 뒤쪽 얕은 언덕을 향하여 가파른 길을 따라 올랐다. 오르다가 보니 어떤 가정집의 2층에서 아기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귀여운 모습을 보니 손녀들 생각이 났다. 그 아기와 한참 동안 손을 흔들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아기들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천사와 같다.
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 위 평평한 곳을 손질하여 공원으로 조성해 놓기는 했는데 좀 엉성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의 것인지, 꽤 큰 석관이 공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언덕에서는 구 시가지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사프란볼루는(Safranbolu)는 소읍이다. 사프란볼루라는 도시이름은 이곳에서 자생하는 사프란이라는 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시가지의 로터리에 사프란볼루를 상징하는 꽃을 모조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아래 사진 참조) 주변은 대체로 농토로 둘러있는데 땅에 돌이 많이 섞여 있어서 전반적으로 척박해 보였다. 그리고 지형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라고 할 수 있는데 굴곡이 심하다. 굴곡진 곳들이 특이한 형태를 이루어 눈길을 끌었다.
또 오래된 가옥들도 눈길을 끌었는제 그 가옥 구조도 특이하였다. 대개 이삼층인데, 목조로 집의 골격을 세우고 짚을 썰어 짓이긴 흙으로 벽을 만들었다. 일본 주택과 흡사하다. 그래서 그런지 도미토리에 들어있는 일본 젊은이들은 내일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있는 마을로 관람을 갈 것이라 하였다. 이곳의 전통가옥은 유내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절후가 늦가을로 접어들어 기후가 건조해서 그런지 대지의 초목은 모두 시들어 마른 풀이 많고 마지막 생명을 부지하기에 힘겨운 모습이다. 수목들은 우리나라와 거의 같았다. 소나무가 많고 배나무, 모과수, 호두나무에는 탐스런 열매가 매달려 있다.
언덕 밑으로 흘러내린 절벽이 절묘한 풍치를 이루었다. 밤에는 절벽하단에서 절벽 상단으로 라이트를 비춰서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길에는 대부분 작은 돌을 깔아놓았다. 매끄럽고 평평한 돌이 아니라, 작은 굴러다니는 돌들을 시멘트에 촘촘히 박아놓았기 때문에 길을 걷기가 편안하지 않았다. 그 돌길을 만드는데 많은 인력이 들었을 것 같다.
옛날에는 이곳이 번성했던 상업지역(14~17세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한 시골 장터 같은 느낌이 든다. 거리의 상점들은 관광객을 위한 상품들을 빼곡하게 진열해 놓았는데 지금은 비수기라서 그런지 거리가 한산하다. 이곳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고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는데 정이 넘친다.
도미토리에서 네 명의 젊은 일본인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들은 여행을 많이 하는 젊은이들로서 아주 친절하고 예의를 갖추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여관 일을 하고 있는 여관집 딸은 일본인들과 일본어로 막힘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국외자로서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여관집 딸은 작은 키에 날렵한 몸놀림이 여간 귀엽지 않다. 상냥하게 손님들을 대접하였다. 일본 젊은이들도 나에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주인집 사람들의 친절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