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맸다<3>
닉내임을을 빛입니다'에서 상운님께서 지어주신 '일영(日影)'으로 변경하겠습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혼란을 주어서 죄송합니다. '일영'을 사랑해 주세요. 감사홥니다.
<사푸란볼루>2005년 10월 3일(월)흐림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 잠자리에 누운 채 눈만 감고 두어 시간 지나서야 모스코의 확성기에서 아침 기도문 읊는 소리가 들렸다.
흑해지역이 가까워서 그러한지 날씨가 흐리고 비도 간간히 뿌린다. 어저께 이스탄불에서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일본 학생 ‘요타 우미노’가 카파토기아로 갔다. 상냥하고 친절하며 남을 배려할 줄 하는 학생이다.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하면서 주소를 주었다. 그는 집이 요꼬하마라고 하였다.
오전 중 언더그라운드로 가기 위하여 여관을 나서려하는데 주인집 개가 나를 따라 나오더니 내가 언덕을 향하여 오르자 앞장서서 졸래졸래 갔다. 겁이 많은 녀석으로 한길 한가운데에 닭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긴장이 되는지 내 뒤꽁무니에 바짝 붙어서 닭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그 옆을 지났다. 그리고는 나를 안내하듯이 좁은 길로 들어서서 나를 힐긋힐긋 돌아보면서 앞장서 갔다.
개의 뒤를 따라 언덕에 올라보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전망이 꽤 좋은 곳인데 담배 경작이 끝난 밭에는 마른 담배대궁과 생명을 다한 잡초들만이 밭을 덮었다. 사푸란볼루에서 우리나라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개는 내 주위에서 꼬리치며 이리저리 즐겁게 뛰어다녔다. 허허한 넓은 언덕 위에서 처음 만난 개와 함께 사방의 낯선 풍경들에 마음이 쏠려 넋을 잃고 풀밭에 앉아 있는데 개는 내 주위를 맴돌다가 나의 팔을 물어 이끌었다. 개가 앞장서서 가는 곳으로 갔더니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아마 농사일을 하다가 쉬는 장소인지 아니면 이곳에 올라오는 관광객을 위해서 만든 쉼터인지는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언덕 바로 밑에는 규모도 크고 정원도 잘 가꾼 집이 몇 채가 보였다. 개는 참으로 영리한 놈이었다. 어떻게 자기집에 온 손님을 대리고 산책을 시켜 주고 또 그런 장소로 안내를 할 수 있는지......
전통마을과 ‘두체 개년’으로의 투어 시간이 임박하여 언덕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개는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지 않고 다른 쪽 언덕으로 나를 인도하려고 하였다. 내가 자기를 따라가지 않으니까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왜 벌써 내려가느냐고 하는 시늉이더니, 내가 개에게 내려오라고 손짓을 하자 어기적거리면서 마지못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나의 산보를 도와준 것이 고마워서 개에게 먹이를 사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주인에게 전하고 2TL를 건네 주었다.
오후에는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마을과 Duzce Kanyonu을 관람하였다. 여관주인 Ahmet Yapici씨가 운전을 하고 여관 주인 딸 Yasemin Yapici가 안내를 맡았다.
전통 마을로 들어가니 마치 한국의 전통마을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집과 골목의 형태가 우리나라 시골의 그것과 흡사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고향 시골마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돌담도 있고 토담도 보였다. 돌담 사이로 난 골목길에는 호박넝쿨이 담을 타고 올랐고 한쪽에는 고추와 토마토 그리고 가지를 심어놓은 것이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전통가옥의 내부구조가 독특하였다. 모든 가옥이 외부에서 볼 때는 목재 골격에 흙벽이었다. 그런데 내부는 석조물이 많았다. 이곳이 옛날에는 상업지역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한편 그들의 생활도구는 우리와 흡사한 점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이 사용하였던 연장, 부엌도구, 물레 등 길쌈질 도구들은 우리의 것들을 가져다가 놓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낯이 익었다. 물론 방의 구조나 화장실 등 많은 부분들은 생소하였지만....
전통마을에서 되돌아 나오다가 우측으로 꺾어진 포장도로를 따라 10여분 달려갔다.
거기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석회석 단층이 이루어놓은 절경이 나타났다. 아직 관광지로 개발이 덜 된 탓인지, 아니면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서인지 캐뇬(canyon)의 입구에서 하차하여 멀리서만 바라보게 하고 그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다. 지질이 약하여 사람의 발길이 많게 되면 금방이라도 현재의 모습을 잃을 것 같았다. 정말로 지반이 약하였고 각종 여행 안내서에도 두체 캐뇬에 대한 안내글을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프란볼루에 꾀 많은 관광객들의 모습이 사프란볼루의 시내거리에서나 전통마을에서는 끊이지 않았는데 이 캐뇬에 갔을 때는 우리만 있었다.
늦은 시각에 여관으로 돌아와서 여관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하였다. 음식이 깨끗하고 맛도 있었다. 주인 딸은 음식 솜씨를 은근히 자랑하면서 살걉게 굴었다. 애교도 있고 손님들의 기분을 맞추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저녁에는 주인이 자기 소개를 장황하게 하였다.
Bastoncu Pansiyonu은 한국배낭여행자들도 많이 이용하는 여관이지만 일본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이집 주인은 일본인들에 대한 대우가 극진하다. 물론 일본인들이 그들의 주된 고객이니까 그럴 법하다. 아마 월등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그들의 호감은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이 여관(Bastoncu Pansiyonu)도 전통가옥의 하나이다.
주인 남자(이름 Ahmet Yapici)의 말에 의하면 이집은 300년의 역사를 가졌는데, 1987년에 이집을 매입해서 12년 동안 수리하고 난 후 1999년 9월에 여관을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 직업이 목각사(woodcarver)인데 지팡이(walking stick)을 아주 잘 만든다고 하면서 여관 명칭의 내력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 직업이 지팡이(stick)를 만드는 것과 관련시켜서 여관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 stick(영어) → Baston(터키어) → Bastoncu(터키어) *cu(터키어)→maker(영어) > 그래서 여관이름을 'Bastoncu( stick maker) Pansiyonu'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일본학생 --뒤 벽쪽에 전통 화장실로 들어가는 분이 열려 있음
두체 캐년
두체 캐년
나를 안내했던 주인집 개
전통마을의 외관 일부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마을의 돌담길
전통가옥 창가에 달아놓은 사냥한 짐승의 두개골(우리나라에서 집의 기둥이나 문설주 위에 붙여놓는 부적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하였다)
전통가옥 실내화장실
전통가옥의 내부중 일부
Bastoncu Pansyon 주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