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해매다<84> 다합,시나이 산

어르신네 2007. 1. 4. 22:45
 


이집트로

<다합에서 시나이 산에 오르다>


2006년 1월 15일(일) 맑음

오늘은 6시 30분에 사막을 떠나서 아카바 항구로 갔다. 그리고 빠른 배를  타고 이집트 다합으로 왔다. 다합에서 여관(여관이름 : Seven Heaven)을 정하고 여관에서 알선하는 시나이 산 투어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밤새도록 추위로 떨면서 선잠을 자다가 새벽5시에 일어나니, 서쪽 하늘에 둥근 달이 사막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달빛에 젖어있는 사막의 새벽 풍경이 색달랐다. 대지에는 하얀 서리가 깔렸고 찬 공기가 새벽을 두텁게 드리운 것 같았다. 사막의 새벽은 여간 추운 게 아니었다.

밤새도록 추위로 인하여 움츠려 들었던 몸을 간단한 체조로 풀었다.

6시에 딱딱한 빵 한 조각을 따뜻한 차이 한잔과 곁들어서 먹고, 바로 캠프를 출발하여 와디럼 사막 입구인 베두인 마을에 와서 아카바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호주인 부부와 다른 한국인 한명은 암만으로 간다고 하였다.

버스가 출발하더니 베두인 마을을 빙글빙글 돌면서 손님을 태웠다.

마을을 출발하여 7시30분경에는 와디럼 기차역을 지났다.

옆에 앉은 사람이 연신 손짓을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서 “왜 그러느냐?”하고 물었더니 앞 사람이 그는 벙어리인데 반갑다는 뜻이라 하였다. 그는 그 후 산을 가리키기도 하고 끝없이 벋어나간 사막을 가리키기도 하면서 손짓을 하는데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버스가 지나고 있는 주변은 와디럼 사막처럼 여전히 사막과 바위산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곤 하였다. 그리고 사막에는 흰 서리가 깔려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이 고도가 높고 추운 지역이었다.

7시 45분경에 암만(Amman)과 아카바(Aqaba)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도착하여 아카바로 방향을 꺾어 틀었다. 길바닥에 말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어있었다. 그 부근에 어미로 보이는 말 한 마리가 잔뜩 화가 나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차량들도 길을 지나갈 수가 없었다. 경찰관들이 나와 있었으나 감히 접근하여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10분 이상을 기다린 후 제일 앞에 있던 차가 말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가 그 앞을 날세게 빠져나가면서 길이 트였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 원망의 눈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말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8시 05분에 Aqaba Zone에 들었었다. 버스가 달리는 주위가 온통 삭막한 바위산들로 둘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위산들이 검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 돌들이 산을 가로지르는 띠를 형성하여 길게 줄을 이은 것이 마치 사람들이 붓으로 칠해놓은 것 같았다.


8시25분에 드디어 아카바에 도착하였다. 지금까지 같이 왔던 젊은 친구들은 아카바에서 하루 묵으면서 이곳 유적지를 둘러보고 다합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동안 젊은이들이 고마웠고 또 그들에게 신세를 많이 진 것 같다.

우리는 다합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해어졌다. 항구로 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싱가폴 청년 Raymond를 또 만났다. 그는 이스라엘로 떠나는 중이라 하였다. 레이몽과 언제인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또 한 한국 청년을 만났다. 그도 다합으로 가는 길이라 하여 같이 택시를 잡아타고 아카바항구로 갔다. 아카바항구에서 11시에 떠나는 빠른 배를 타고 누에바항구에 도착하였다. 아카바에서 출국 세 5dj, 이집트 입국비자피15$이었다. 배에 탔을 때 다마스커스와 암만에서 만났던 한국인 자매를 또 만났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다녀오는 길이라 하였다.


이집트의 누에바에 12시10분경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받고 항구를 빠져 나왔다. 이집트 돈을 미리 장만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누에바의 은행을 찾아 가서 ATM에서 480이집트 파운드를 뽑았다. 마침 배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함께 미니버스를 교섭하여 1인당 10EF를 내고 다합까지 왔다. 누에바에서 다합까지의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그리고 지나온 지역은 삭막한 사막지대였다.


다합은 바닷가라 바람이 불기는 하는데 차갑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닷가 풍치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숙소를 정하고 점심을 오랜만에 밥으로 먹었다. 주변 경관이 좀 단조롭기는 하지만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여 며칠 간 쉬었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생겨난 도시 같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집에 인터넷으로 소식을 전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시나이 산 투어가 있다는 애기가 들렸다. 그래서 리셉션에 가서 투어신청을 하고 11시경에 시나이 행 미니버스를 탔다. 한국 사람이 18명이나 되었다. 차가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하여 매표소에서 3$(17EF)을 주고 입장권을 샀다. 투어 비용은 50EF(이집트 파운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달빛(보름달)이 밝혀주었다. 모래와 돌들이 깔린 길을 따라  달빛 속을 걷는 느낌이 색달랐다. 우리와 함께 한 한국인 일행은 6명이었다. 3시부터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여 정상에 당도한 시각은 5시가 조금 못 되었다. 우리는 거의 선발대로 올라갔다. 오를 때는 몸을 움직여서 추운 줄 몰랐다. 정상에 올라갔을 때도 바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나이 산!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인류역사와 그리스도교 전설이 깃들어 있는 산! 그 정상에 우리는 드디어 발을 올려놓았다. 세계 도처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시나이 산은 그냥 바위덩어리로 만들어졌을 뿐인데,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들이 오르는 것 같았다. 전등 불빛 행렬이 자갈과 바위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꾸역꾸역 올라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성지를 찾아가는 성스러운 행위로 보였다.


산을 오를 때 낙타몰이꾼들의 끊임없는 유혹을 뿌리치고 걷고 걸어 올라왔더니 힘들기는 해도 그 유명한 시나이 산 정상을 내발로 밟았다는 것에 마음 흐뭇하였다


정상에 올라와서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에 견디지 못한 일행은 산 아래 카페로 내려갔다. 더운 차라도 사서 마시면서 몸을 녹일 요량으로----

나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그냥 정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가지고 온 슬리핑백을 풀어 몸을 감쌌다. 그러나 산정상의 한기는 용서하지 않았다. 발끝이 시리다가 못해 아프더니 나중에는 아무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산을 오르는 입구에서부터 기를 쓰고 선발대로 올라온 것이 후회되었다. 천천히 걸었더라면 정상에 올라와서 오랜 시간을 추위에 시달리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옆 사람의 모포자락을 살짝 깔고 앉아 바위로부터 올라오는 냉기를 차단하고 슬리핑백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2006년 1월 16일(월) 맑음

시나이 산꼭대기의 새벽!

바람이 불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침낭을 뒤집어쓰고 서양인들이 덮고 자는 모포의 끝자락을 깔고 앉아서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떠 동녘 하늘을 바라보니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해가 떠오르자면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서 아직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온 몸이 굳었다. 발끝이 감각을 잃은 것 같고 몸 전체가 내 것 같지가 않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다. 모든 신경이 마비된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몸을 최대한으로 웅크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런데 장사꾼들이 옆으로 지나다니면서 몸을 건드려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옆에 앉아있는 서양 여인들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 중 한 여인의 목소리가 유별나서 한참 쳐다보았더니, 팔을 벌리고 자기 품속으로 나를 들어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 여인들 옆에 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서 얼른 바위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동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아직 대지는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동녘이 더 붉게 물들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우리 한국인 일행들이 카페에서 올라왔는지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라도 해돋이를 가장 안전하게 잘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으나 좋은 장소는 대부분 사람들이 모두 점유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약하게나마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있고, 해돋이도 잘 보일만한 곳을 겨우 찾아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동녘 하늘 아래 돌산들이 검은 그림자를 안고 육중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시나이의 거대한 산자락이 검은 주름치마를 뒤집어쓴 모양을 하고 미명의 새벽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산봉우리들이 여기저기에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엄숙하고 무겁고 기운차게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산마루 부근에는 구름이 가려 있어서 혹시나 햇빛이 가려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어느 사이 동녘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구름은 엷어지면서 순식간에 해는 산봉우리를 타고 올랐다. 여기저기서 괴성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강렬한 한 아침 햇빛이 시나이 산봉우리 위로 솟아올랐다. 아침의 차갑던 공기가 강열한 햇빛 때문에 주춤하는 것 같았다. 해가 산봉우리 위로 얼굴을 내밀 때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리고 시나이 산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물러나면서 산 전체의 모습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아침 햇살을 받아 붉은 색을 띈 시나이 산은 웅장하였다. 시나이 산의 웅장한 자태에 한참동안 마음이 빼앗겼다.


그러나 어렵게 올라온 이 시나이 산 정상에서 좀더 머물러 있다가 갔으면 좋겠는데,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에 밀려 정상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서 한국인 일행 중 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하산하였다. 그들도 산 정상에서 사람들 사이를 오가다가 다른 사람들을 놓였다고 하였다.


내려갈 때는 올라오던 길이 아니라 돌계단 길을 따라 내려갔다. 우리가 산을 올라가던 길은 낙타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지그재그의 완만한 비탈길이었는데 내려가는 돌계단 길은 가파르게 산을 질러가는 길이었다. 돌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길도 험하였다. 만약 밤에 이 길로 올라왔더라면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을 것 같았다.


시나이 산은 무척 높은 산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올라갔던 곳은 최고봉이 아니었다. 해발 2,285m의 카바르무사라는 봉우리였다. 성서에 모세가 이곳에서 10계명을 받았다고 되어있다고 하였다. 유태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들이 시나이 산 일대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와 세인트 케트리나 수도원을 그냥 지나쳐 갔다.  시나이 산을 가면 꼭 들려보리라고 계획했던 곳인데..... 관광객들이 그 부근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고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내려오고 만 것이다.


사실은 14일 밤에는 와디럼 사막에서 추위로 인하여 밤잠을 설쳤고, 어제 저녁에도 시나이 산을 오르느라고 잠을 자지 못한데다가 정상에 올라가서는 추위에 떨어야 했기 때문에, 산을 내려와서는, 빨리 차에 올라가서 자리에 앉아 눈을 붙여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세인트 케트리나 수도원 관람을 놓치고 말았다.


차부에 내려가서 미니버스를 탔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빨리 내려와서 출발할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아 있었다. 차에 올라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았으나 머리만 아프고 잠은 오질 않았다. 그리고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몸살이 날 것 같았다.

버스가 출발해야 할 시간에, 서양인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2시간을 더 기다리다가 그냥 다합으로 내려왔다. 그 서양인 2명은 다른 차로 갔는지? 어떻게 된 것인지....... 차가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다합에 도착해서야 깨어났다.


이곳 다합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무척 많았다.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곳 분위기가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곳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이곳에 온 젊은이들이 예정보다 더 오래 체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젊었더라면 스쿠버 다이빙도 배우고 좀더 놀다가 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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