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매다<87>바하리아 사막

어르신네 2007. 2. 25. 20:33

 바하리아 사막


2006년1월 21일(토) 맑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막으로 갈 준비를 하고, 귀국하는 자매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김 선생이 카이로에서 바로 인천으로 간다면서, 여행하는데 필요 없는 나의 짐을 인천 집까지 가져다가 주겠다고 하여 부탁하였다.

7시 40분 경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갔더니 벌써 남 군과 최 군이 나와 있었다.

8시에 버스가 출발하였다. 8시 30분경에 카이로 외곽지대에서 더 많은 손님과 짐들을 싣느라고 30분 이상 정차하였다. 버스는 기자 지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측으로 꺾어져 10여분을 지나면서부터는 완전한 사막지대로 들어섰다.


버스승객들 중에는 사막의 오아시스에 사는 베두인들과 사막지역에 볼일을 보려가는 베두인과 이집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일행 이외에 사막투어를 가는 여행객들도 몇 명이 보였다.

버스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통로에 서 있는 어린이가 보기 안쓰러워서 그를 내 무릎에 앉혀 놓았는데 머리에서 수십 마리의 이[虱]가 득실거렸다. 나도 모르게 어린이를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정 선생이 그 어린이를 덥석 안아서 자기 무릎에 앉히는 게 아닌가! 내가 얼른 그의 머리에 있는 이를 가리키면서 보라고 하였더니, 알았다면서 상관하지 않고 그냥 그를 무릎에 앉혀서 안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되는 듯한 사람이 내가 어린이를 내려놓을 때 눈치를 차렸는지 정선생 무릎에 앉은 어린이를 잡아서 통로로 내려오라고 하였으나 정선생이 상관없다면서 계속 안고 갔다. 내게 부족한 것을 정선생이 채워주었다는 고마움에 앞서 부끄러웠다. 나이를 헛먹었구나 하는...........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을 뚫고 달리는 길, 인간들이 그 사막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많은 작업을 하고 있었다.--사막에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쳐 놓은 것들이 많이 보였다.--

40여분 달려온 버스길의 우측에 유전지대가 보였고, 망망한 사막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기찻길과 도로변에 드문드문 집을 짓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다.


사막 도로를 4시간 이상 달려갔을 때 오아시스와 마을들이 나타났고, 종착역에 오후 1시가 조금 지나서 도착하였다. 거기서 서울의 초등학교 선생 두 분을 만났다. 우리는 그들과 사막 투어를 함께 하기로 하였다. 사막 투어의 일인당 비용은 70EF(1$=5.7EF)로 계약하고, 또 카이로로 돌아갈 때는 7인용 승용차로 1인당 20EF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바하리아 오아시스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2시30분경에 사막 캠프장을 향하여 지프차를 타고 달렸다. 역시 사막 한가운데로 포장된 도로가 길게 벋었다. 2시간 이상을 달렸다. 망망한 사막 한 가운데를 달리고 달려도 계속 이어지는 사막...............캠프에 4시30분경 도착하였다. 여기가 백사막(白砂漠) 지대라고 하였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모래언덕을 의지하여 캠프를 설치하였다. 해가 구름에 가려서 사막에서의 일몰광경(sun set)을 볼 수 없어서 서운했다.

어둠이 내리고 베두인인 카를리(투어 안내, 운전기사 겸 쿠커)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선생과 정현이 그리고 나만 말을 하고 다른 네 사람은 듣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좀처럼 틀이 깨지지 않았다. 나이 많은 내가 끼여서 이야기할 재미를 못 느꼈던 것일까?


카를리가 만든 저녁식사가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차이를 마시고 또 누군가가 가져온 소주가 한 순배 돌아간 다음부터 네 명의 젊은이들도 말문이 트였다. 끝없이 이야기는 이어지고.......

내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앉아 있는 것보다 그들이 나를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자기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졸음도 쏟아졌다. 일행에게 양혜를 구하고 지프차 안으로 들어가서 뒤 의자에 쪼그리고 누워서 모래투성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잤다.

지프차 유리창 밖에는 그믐달과 별들이 어울려져 사막 밤하늘 특유의 정취를 풍겼다. 그런데 다른 일행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서 밤샘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막으면서 잠을 청하였으나 지프의 문 틈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깥바람 때문에 쉽게 잠들지 않았다. 눈만 감았지 잠을 잔 것 같지 않았다.  



2006년1월22일(일) 맑음

새벽에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켜 지프차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일행은 모두 모닥불을 에워싸고 밤샘을 하였다. 장작도 다 태우고 남은 불씨도 꺼져가고 있었으며 일행은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남군과 최군을 데리고 주위를 다니면서 땔감이 될만한 가시투성이 나무들을 주워 캠프로 가져가서 일행이 밤샘을 하면서 추위에 떨었던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불을 지폈다.


베두인 안내원 카를리가 만들어준 로띠로 수프를 묻혀 먹으면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짐을 챙겨 8시 30분에 캠프를 떠났다.

우리가 하룻밤을 지낸 캠프 지역은 석회층이 지표면을 이루고 거기에 모래가 날아와서 그 위를 덮은 곳이었다. 최군과 함께 땔감을 구하려고 돌아다녔던 곳은 석회층 위로 모래가 날아와서 두터운 모래사막을 이루었는데, 여기저기에 돌출한 석회암들이 기묘한 형상으로 사막의 특이한 풍치를 이뤘다.


우리는 캠프를 출발하여 9시 3분경에 크리스탈 마운틴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지층에 크리스탈이 형성된 곳을 구경하였다. 우리 일행은 크리스탈 층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크리스탈이 박혀 있는 지층을 마구 파헤쳐서 주위에는 크리스탈 파편이 질펀하게 흩어져 있었다. 특이하고 귀한 것에 대한 욕심이 빚어놓은 광경이라고 생각하니 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곧 값지고 귀한 크리스탈 하나가 내 눈에 띄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주위를 살피는 나........

10시20분경에는 엔마티 사막(?) 지역에 도착하여 부드럽고 미세한 모래 알갱이 위에서 어린이들처럼 뒹굴고 놀다가 다시 출발하였다. 에마티(?) 사막 앞에는 오아시스 지역이었다. 지프는 어저께 오던 길로 되돌아 가다가 검은 모래사막 지역에 들어섰다. 나는 운전사에게 흑사막 지역으로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 나오자고 하였더니 시간을 가리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생명체라고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광활한 사막에서 얼마나 내가 왜소한가를 다시 한번 느꼈다. 늘 위대한 자연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11시30분경에는 화석이 떨어졌다는 검은 산을 올랐다. 검은 돌들이 온 산을 덮어씌웠다. 그 검은 돌들이 유성에서 떨어진 화석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그 돌들을 서로 부딪쳐보았더니 쇠끼리 부딪는 소리가 났다. 산이 가파르고 길이 고르지 않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산 정상에서 돌아보는 주위 풍경이 장관이었다. 광활한 검은 사막에는 크고 작은 많은 산봉우리들이 검은 재를 뒤집어쓴 것처럼 거뭇거뭇 봉긋봉긋 솟아오른 아름다운 정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전후좌우의 풍치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검은 사막은 온천지를 산불이 휩쓸고 간 다음 검은 재만 남은 것 같았다. 이 특이한 광경을 좀더 오래 보지 못하고 하산해야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산을 내려와서 다시 지프차로 30여분을 달려 바하리아 오아시스 마을로 돌아왔다. 오아시스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8인승 승용차로 13시에 출발하여 18시경에 카이로에 도착하였다. 4시간 이상 사막 길을 지나오는 동안 날씨가 맑았다가 갑자기 흐려지고 빗방울마저 듣더니 카이로 시내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다시 하늘이 갰다. 


지하철 역 사다(Sadah) 부근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최군과 남군 그리고 두 분 선생님과 헤어졌다. 정 선생과 나는 이즈마일 여관에 와서 일부의 짐은 여관에 맡기고 아스완여행에서 필요한 짐만 가지고 람세스 역으로 향하였다. 김 군은 좀더 값싼 여관을 찾아 갔다.


22시에 카이로 람세스 역에서 아스완행 열차에 올랐더니 6인승 칸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넷은 그룹으로 온 서양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술을 마시면서 술기운으로 큰소리를 치고 장난을 치는 것이 그 정도가 좀 심하였다. 정 선생이 옆 사람을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한 여인이 화를 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우리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12시가 넘었으니 잠을 자야 할 시간이 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아직 잠잘 시간이 아니라 얘기하면서 즐길 시간이라면서 큰 소리를 쳤다. 그러더니 가장 말이 많고 시끄럽게 굴던 여인이 다른 칸으로 갔고 나머지 녀석들은 우리의 눈치를 보면서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행 중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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