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매다<93>카이로 이슬람지구

어르신네 2007. 3. 8. 22:36

카이로 이슬람 지구

 

2006년1월29일 (일) 맑음

오늘은 설날이다.

오후 늦게 서울 선생들을 따라 이슬람 지구의 한 하릴리 푸스키 거리에 갔다. 한 하릴리의 푸스키 거리의 골목골목은 기념품상점들로 꽉 들어찼다. 그리고 기념품을 사려는 관광객이 북새통을 이룬다. 여기서 파피루스에 그린 그림 두장과 손녀들의 목걸이를 샀다. 250F를 썼다. 아이들이 받아보고 기뻐하였으면 좋겠다. 오늘이 설날이이라서. 손자 손녀들에게 세배 돈도 주지 못하는데 기념품이라도 장만하였다가 돌아가서 설에 장만했던 선물이라면서 주어야겠다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달랬다. 좀 값지고 좋은 것을 사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지만 현재의 내 처지를  생각해서 약소하게 그것이라도 마련한 것으로 자위할 수밖에.....,


기념품 가게에서 또 정 선생을 만났다. 다합에 갔다가 돌아와서 술탄여관에 묵고 있다고 하였다. 31일에 귀국한다고 하였다. 시장을 조금 돌아다니다가 일행들과 함께 이집트 전통음식을 시켜서 먹고 저녁 7시경에 기념품 가게에 들려 가공이 끝난 기념품을 받아들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설날인네 2년 연속 다른나라에서 설을 보냈다.



2006년 1월 30일 (월) 아침에 구름  오후에는 대체로 맑음

지난밤에 깊은 잠을 못 잤다. 게다가 감기 증세가 또 나타나면서 머리가 맑지 않고 몸이 무거웠다. 그래서 오늘의 관광 계획을 내일로 미루고 꼼짝하지 않고 여관에서 쉬었다.


낮에 정선생이 귀국한다고 작별 인사하려 왔었다. 카이로에서부터 바하리아 사막, 아스완 아부심벨 룩소르를 함께 여행하였던 인연을 생각해서 내가 나이 좀 들었다고 대접하여 인사하러 온 모습이 고맙고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다. 어떤 녀석들은 2,3일 간 같은 방에서 기거했는데도 떠날 때는 말 한마디 없이 훌쩍 가버린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정 선생은 나에게 대선배라면서 극진히 대해 주었다. 인정미가 느껴지고 붙임성도 있어서 정감이 도는 사람이다.  

저녁에는 아스완에서 돌아온 정현 군과 함께 코사리를 사서 먹고 헤어졌다.


가만히 앉아 쉬는 것보다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오늘 하루 여관방에서 맥이 풀어진 상태로 쉬고 있으니까 오히려 나른해지고 피로감이 더한 것 같다.  그리고 뭔가를 빠뜨린 것 같고 게으름이 늘어나는 것 같다. 가능하면 움직이는 게 좋은 것 같다.



2006년 1월 31일(화) 맑음

오늘 정현 군은  인도로 떠났다. 그간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 여행기간에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나머지 인도 여행 잘 하기를 기원하였다.

정현 군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이슬람 지구로 갔다.

북 가이드에 표시된 길을 따라 후세인 광장, 하즈하리 거리 푸스키 거리에 있는 유적지를 기웃거리다가 즈웰라 문을 만났다.


즈웰라 문 입구에서 타워에 들어가는 입장료를 내고 계단을 타고 타워로 올랐다.

타워 꼭대기에서 주위를 조망했다. 내가 지금 즈웰라 문의 타워에 올라서 바라보이는 사방이 이슬람 지구이다.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지역이라 한다. 사방으로 모스크의 미나레가 신비로운 기운을 가지고 하늘로 솟아올라 있다. 이 지역에 등록된 유산들이 300개 이상이라 하니 인류문화의 중심이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모스크들이 보수가 진행 중이라 들어가 볼 수도 없고 공사로 인하여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문화유산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가 어렵다. 어떤 유적지에서는 유적지건물을 이용해서 현재 장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즈웰라 문을 내려와서 볼만한 문화유산이 가장 많다는 다르브 일 아흐마르 거리로 들어섰다. 즈웰라 문 바로 앞에 ‘가마 사리흐 탈라아이’가 보인다. 파티마 말기의 걸작이라고 하는데 건물장식과 전면의 아치가 운치가 있다.

거리를 더 내려가면 가마 이스하키가 왼편 길에 붙었고 그 외에 가마 미흐만다. 불류 모스크 등 크고 작은 유적들이 보수공사로 어수선하였다. 공사로 인하여 어수선한 모스크를 기웃거리면서 시타델 아자브 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갔다

 

시타델의 아자브 문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5시가 거의 되었었다. .

아자브 문이 있는 곳에서 한 하릴리까지 되돌아갔다. 

아자브 문 앞의 무하마드 알리 거리를 걷다가 스루키야 거리에 들어서면 재래시장이 시작된다, 시장은 히야미야 거리를 지나 한 하릴리까지 이어진다. 재래시장은 이슬람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다. 각종 식료품을 비롯하여 옷가게 찻집 이발소 음식점 각종 잡화점 등 잡다한 서민 생활의 필수품들이 이 복잡하게 들어서 있다. 시장에 나와 다니는 사람들의 행색도 각양각색이며 그 표정도 다채롭다.

그들은 시장에 나타난 조그마한 동양인인 내가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팠다. 그래서 노천 찻집에서  물담배를 빨고 있는 영감들 곁에 가서 의자에 앉았더니 의자를 자기 곁으로 당기면서 다가와 앉으라 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차이를 권하면서 이방인이 자기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싱글벙글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빨고 있는 물담배를 권하기에 내가 고개를 저었더니 웃었다. 웃는 눈이 참으로 순박하고 정이 넘쳤다.  


초저녁이라 택시를 잡기가 어려워서 여관에 걸어서 왔다. 한 하릴리에서 타흐라르 광장까지 걸어오는 거리는 4km는 잘 될 것 같았다.



2006년 2월1일(수) 구름

오후에 시타델을 향하여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가마 술탄 하산 부근에서 내렸다. 가마 술탄 하산과 가마 리파이(입장료가 각각 6F)는 같은 경내에 들어 있는데 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따로 받았다.

가마 술탄 하산은 마무르크 왕조의 건축물로 미나레가 90m로 높이 치솟았고 건물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그 위용에 압도될 정도이다. 내부는 넓은 장방형의 안뜰과 그 중앙에 돔형의 기념 장식물이 있고 깨끗하게 관리해 두었으나 특별한 자료는 보이지 않았다.

가마술탄하산에서 나와서, 옆 건물인 가마 리파이로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따로 받았다. 가마 리파이는 20세기 초에 들어와서 지은 비교적 새 건물인데 가마술탄하산에 못지않은 규모다. 여기에는 리파이 교단의 창시자 샤이프 리파이의 무덤과 알리 왕조의 리파드 1세 그리고 이란혁명 직후의 마지막 샤(이란 국왕의 칭호)의 무덤이 있다. 실내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많은 가족 단위 참배객들이 와서 기도드리고 모여 앉아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우미야드(Umyyad) 모스크에서 가족들이 함께 와서 기도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 모습과 흡사하였다.

가마 리파이에서 나와서 시타델로 향하였다. 가마 리파이에서 시타델 정문까지 걸어가기에는 멀다면서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모퉁이를 돌아가면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걸었다. 엄청 먼 거리였다.

시타델은 십자군을 타파한 아랍세계의 영웅 살라딘이 1176년 십자군에 대항하기 위한 거점으로 건설한 요새이다. 살라딘이 죽은 후에도 마무르크 왕조, 오스만 왕조 19세기의 무하마드 알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시타델이 정치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처음 들어간 곳은 군사박물관이었는데 김일성 코너도 있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폐쇄한 코너가 많이 보였는데 그 가운데 끼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덕으로 올라와 성벽에 이르니, 카이로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성벽 바로 아래에 보이는 가마 술탄 하산, 가마 리파이 그 외의 많은 모스크의 미나레가 하늘을 향하여 치솟아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러나 매연인지 사막에서 날아오는 먼지인지 무엇 때문인지 카이로 시내를 바라보는 시야가 멀리 미치지 못하였다.

가마 무하마드 알리는 이스탄불의 블류 모스크를 모방한 것이라 한다. 거대한 돔과 연필모양의 높은 미나렛을 지닌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내부도 화려하게 장식해 놓았다. 특히 중앙에 거대한 샹들리에와 램프에서 풍겨 나오는 빛은 환상적이다. 이 가마 안에는 이집트의 근대화의 기초를 쌓은 마하마드 알리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가마 무하마드 알리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가우하라 궁전이 있다. 궁전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규모도 큰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 궁전은 이집트적인 냄새가 나지 않고 서구적인 냄새가 많이 풍겼다. 많은 관람객들의 등에 밀려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관람시간이 끝날 무렵이라서 쫓기다시피 보아야 했다.


시타델을 나와서 오늘도 한 하릴리를 향하여 걸었다.

저녁 7시에 한 하릴리에서 이집트 고유의 노래와 춤 공연이 있다고 하여 그것을 관람하기로 했던 것이다. 공연시간이 많이 남아서 시타델에서 한 하릴리까지 먼 거리이지만 걸어서 갔다. 오늘도 재래시장이 있는 곳을 지나갔다. 재래시장에는 볼거리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들어갔더니 맨 뒷자리만 남아 있었다. 

창작 민속 공연이라 했다. 예술에 무딘 나는 내용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냥 이집트에서 이집트 민속공연을 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무언가 내 마음에 진한 감동이 남아 있어야 관람한 보람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공연이 시작되면서 각종 악기 연주와 노래가 장내의 흥을 돋웠다.

그들 고유의 가락과 춤이 차례차례 속도를 내면서 관람객을 압도해나가기 시작했다.

군무(群舞)와 독무(獨舞)가 하이라이트였다.

독무를 하는 사람은 아마 혼자서 한 시간 정도는 원무를 계속하는데 그 돌아가는 속도와 내용의 다양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러다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인간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각종 전통악기의 연주와 전통노래 그리고 다양한 춤에 심취되어 절로 박수가 나오고 몸이 함께 움직여지는 실로 무아지경에 이끌렸었다.

공연이 끝나고 이즈마일여관에 함께 투속한 한국사람들과 같이 돌아왔다.


이탈리아로 가는 일정을 뒤로 미루고 시와 사막 투어를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내일 아침 일찍 시와 사막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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