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의 젊은이가 세계를 헤매다<107> 인도 - 꼬친(Cochin)
꼬친(Cocin : 꼬치-Kochi)
2006년 2월 23일(목) 맑음
열차 안에서 잠을 깬 시간은 아침 6시경이었지만 중간 침대(MB)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일어나지 않아서 7시가 되도록 LB(제일 아래쪽 침대)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앞좌석의 일행들은 벌써 일어나서 떠들면서 발끝을 내 침상 위에 걸쳤다가 내렸다가 하였다. 일어나 앉고 싶은데...... 8시가 되어서야 MB에서 자던 녀석이 내려왔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머리가 무거워서 의자에 몸을 기대고 11시가 될 때까지 비몽사몽하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 곳인지 우리 칸에 앉았던 사람들이 거의 다 내리고 독일인과 나만 남았다.
에나꿀람(Ernakulam)에 10시 55분에 도착해야 하는데 12시가 지나서야 도착하였다. 기차를 14시간을 타고 온 것이다.
에나꿀람에 내려 역사를 나서자 마자 오토릭샤 왈라들이 달려들어 서로 자기 오토릭샤를 타라고 손을 끌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코친 들어가는 항구까지 150루피를 요구하였다. 역에서 항구까지 2km 밖에 안 되는 거리이고 15루피에 가겠느냐고 하니까 7km라고 우겼다. 하여튼 오토릭샤 왈라의 말은 모두 거짓말투성이다. 독일인이 나서서 2인 40루피에 흥정하여 타긴 했지만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포트 꼬친 가는 연락선은 연달아 있었다. 오토릭샤 값을 독일인이 지불하였기 때문에 승선표(25루피)는 내가 사려고 했더니 독일인이 먼저 자기 표를 사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표를 사는 곳으로 길을 터주었다. 배에서 내려 독일인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는 오토릭샤(10루피)를 타고 Park Residency(1박 250루피)로 가서 짐을 풀었다.
사워를 하고 침상에서 두어 시간 잠을 잤다.
오후에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여관에서 50여 미터 밖에 안 되는 비치(beach)로 나갔다. 비치에는 중국식 어망인 왈라(Cheena vala)라는 것이 보였다. 어망을 물에 잠갔다가 들어올리는 장치인데 아주 원시적인 조어(釣魚) 방법이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를 보라고 하였다. 작은 고기가 두어 마리 걸려들었다. 반복 작업을 하기에 나도 같이 줄을 끌어 당겼다. 고기가 시원찮게 낚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물을 당긴 값을 달라고 하였다. 어이가 없어서 웃고는 그냥 나왔다. 한 녀석이 끈질기게 따라오면서 손을 벌리는 게 아닌가. 할 수 없이 1루피를 주었다.
유럽인이 지은 교회로서는 인도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성 프란시스 교회(St. Francis church)에 가보았다. 서양 관광객들이 북적거렸다. 1524년 꼬친에서 사망한 바스코 다 가마의 유골이 리스본으로 옮겨지기 전에 이 교회에서 14년간 묻혀 있었다고 한다. 교회 앞 마당에 그이 묘비가 있다.
이어서 그 뒤쪽에 있는 1902년 세워졌다는 쌘터 크루즈 바씰리까(Santa Cruz Basilica - 천주교)로 가보았다. 교회의 내부가 파스텔 색조였으며 그 부지가 넓다. 그런데 웅장한 교회 건물에 비해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internet cafe가 보이기에 들어가 보았더니 한국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반갑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닷가로 나왔다. 노천카페에서 역시 한국 젊은 여행객들을 만났다. 40여일 째 인도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밤에는 맥주를 80루피나 주고 한병 사서 마셨다. 왜 이리 비싸냐고 하니까 깨를라 주에서는 주세(酒稅)가 다른 주에 비해서 높기 때문이라 하였다.
밤에는 모기 때문에 잠자는데 애를 먹었다. 모기향을 피웠는데도 소용없었다.
2006년 2월 24일 (금) 맑음
지난밤에 더위와 모기와의 전쟁으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약간 잠들었던 모양이다. 9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1555년에 포르투갈 인들이 꼬친 국왕에게 친선의 선물로 지어 주었다는 마탄체리 궁전(Mattanchery Palace)과 1568년에 세워진 유대교 회당인 빠르데시 시나고그(Pardesi Synagogue)를 보기 위해 꼬친 남쪽으로 걸어갔다. 마탄체리 궁정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외곽만 빙빙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2천년 전 팔레스타인을 탈출한 난민들의 후손인 꼬치의 유대인들에 의해 새워진 유대교회당(Pardesi Synagogue)과 쥬타운(Jewtown)으로 갔다. 유대인들은 모두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그 자리는 남인도인들이 대신 차지하여 기념품을 파는 상가를 형성하였다. 호객행위가 짜증스러웠지만 일일이 좋은 낯으로 대해 주었다.. 물견을 팔아주지 못하는 내가 미안하였다.
유대교회당도 문이 굳게 닫혀서 관광객의 입장이 안 되었다.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없었다. 쥬타운의 거리에는 무슨 축제를 준비하는지 깃발이 나부끼고, 길 양편 일정한 간격으로 대나무를 세워 엮어나가고 있었다.
다시 포트 꼬친으로 돌아갔다. 오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수로와 나란히 나 있는 길을 택하였다. 수로에 흐르는 물이 악취를 풍겼다. 수로길을 벗어나 어떤 골목길로 들어서서 10여분을 갔더니 Police station 앞이었다. 오늘은 보려고 했던 것들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면서 땀만 많이 흘리고 더위에 지쳤다. 포트 꼬친으로 돌아와서 바닷가 시원한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 갔다.
바닷가 노점상들은 대부분 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린 생선을 요리를 해서 파는데 손님들이 많은 것 같았다. 바다는 약간의 바람이 불었고 물결도 많이 일렁이면서 파도를 일으켰다. 해변 제방을 따라 걷는데 거기서 한국인 남녀를 만났다. 그들은 여행에 어느 정도 숙달된 사람들처럼 보였고, 몇 마디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자신감에 넘치는 것 같았다.
내가 오늘 저녁에 전통댄스공연을 관람할까 한다고 했더니 ‘그럼 일찍이 가서 표를 구해야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하여 그들과 헤어져서 바로 꼬친 문화회관(Cochin Cultural Centre)으로 갔다.
표를 사면서 앞자리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셋째 줄 구석자리를 가리키면서 좋은 자리라고 하였다. ‘나는 Short하다. 앞이나 옆에 Big한 사람이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랬더니 둘째 줄 중간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양 늙은이들이 단체로 와서 그 큰 둥치들이 앞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나는 그 둥치들 속에서 샌드위치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위치가 괜찮아 공연을 잘 볼 수가 있었다.
깨롤라 주의 유명한 무대 무용극이 꺼떠껄리(Kathakali)이다. 꺼떠껄리는 이아기 놀이라는 뜻인데, 개를라 주의 무용극은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를 근간으로 한 것인데, 장엄한 서사시들 중 여러 부분을 조합하고 그것을 하나의 주제로 통일하여 드라마화한 것이라 한다.
처음 공연은 1인극인데, 해설자가 나와서 배우가 해야 할 동작 내용을 소개하면 배우는 해설자가 소개한 내용에 따라 동작과 표정을 소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표현하는 것이 훌륭하였다.
다음에는 힌두교 신들과 관련된 서사시로서 한 남성 신이 여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다가 거절 당하자 여신을 해하고 난 다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 같았다. 배우들의 분장의 독특함과 표정의 다양함 그리고 춤사위의 박진감과 긴장감 등이 돋보였다. 하여간 그 표정 연기는 끝내주었다.
배우들의 날렵하고 능숙한 몸짓과 표정 등의 표현을 통해 전형적인 인물의 성격을 드러나게 하고, 뒤에서는 가수들이 배우들의 동작과 표정들에 일치하는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그리고 공연은 먼저 해설자가 무대에 나와서 공연안내를 하면서 배우들이 전개할 다음 내용에 대하여 잠깐씩 끼어들어 공연 내용을 이끌어나갔다.
극에 대하여 공부한 사람도 남의 나라 전통 극을 완전히 이해하고 소화해내기가 어려울 터인데 문외한인 내가 무용극을 본다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여행 와서 전통 극이 어떤 것인지 그 껍데기나마 훑어본다는 것도 뜻이 있을 것 같아서 관람하였다. 생소하여 극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125루피가 아깝지 않았다.
연극 관람을 마치고 여관에 돌아와 사워를 하려고 하는데 온 몸을 긁어서 핏자국이 내배인 곳이 많았다. 피부가 엉망이었다. 앞으로 여행해야 할 곳이 모두 무더운 지방인데 걱정이 된다. 땀이 나면 더 가렵고 긁어댈 터인데.................하여간 가려워도 참고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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