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세계를 헤매다<108> 인도-알라뿌자(Alappuzha, Aelleppey)

어르신네 2007. 12. 4. 21:21
 

알라뿌자(Alappuzha 혹은 Aelleppey)


2006년 2월 24일 (금) 맑음

지난밤에 더위와 모기와의 전쟁으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약간 잠들었던 모양이다. 9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1555년에 포르투갈 인들이 꼬친 국왕에게 친선의 선물로 지어 주었다는 마탄체리 궁전(Mattanchery Palace)과 1568년에 세워진 유대교 회당인 빠르데시 시나고그(Pardesi Synagogue)를 보기 위해 꼬친 남쪽으로 걸어갔다. 마탄체리 궁정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외곽만 빙빙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2천년 전 팔레스타인을 탈출한 난민들의 후손인 꼬치의 유대인들에 의해 새워진 유대교회당(Pardesi Synagogue)과 쥬타운(Jewtown)으로 갔다. 유대인들은 모두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그 자리는 남인도인들이 대신 차지하여 기념품을 파는 상가를 형성하였다. 호객행위가 짜증스러웠지만 일일이 좋은 낯으로 대해 주었다.. 물견을 팔아주지 못하는 내가 미안하였다.

유대교회당도 문이 굳게 닫혀서 관광객의 입장이 안 되었다.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없었다. 쥬타운의 거리에는 무슨 축제를 준비하는지 깃발이 나부끼고, 길 양편 일정한 간격으로 대나무를 세워 엮어나가고 있었다.

다시 포트 꼬친으로 돌아갔다. 오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수로와 나란히 나 있는 길을 택하였다. 수로에 흐르는 물이 악취를 풍겼다. 수로길을 벗어나 어떤 골목길로 들어서서 10여분을 갔더니 Police station 앞이었다. 오늘은 보려고 했던 것들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면서 땀만 많이 흘리고 더위에 지쳤다. 포트 꼬친으로  돌아와서 바닷가 시원한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 갔다.

바닷가 노점상들은 대부분 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린 생선을 요리를 해서 파는데 손님들이 많은 것 같았다. 바다는 약간의 바람이 불었고 물결도 많이 일렁이면서 파도를 일으켰다. 해변 제방을 따라 걷는데 거기서 한국인 남녀를 만났다. 그들은 여행에 어느 정도 숙달된 사람들처럼 보였고, 몇 마디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자신감에 넘치는 것 같았다.

내가 오늘 저녁에 전통댄스공연을 관람할까 한다고 했더니 ‘그럼 일찍이 가서 표를 구해야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하여 그들과 헤어져서 바로 꼬친 문화회관(Cochin Cultural Centre)으로 갔다.

표를 사면서 앞자리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셋째 줄 구석자리를 가리키면서 좋은 자리라고 하였다. ‘나는 Short하다. 앞이나 옆에 Big한 사람이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랬더니 둘째 줄 중간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양 늙은이들이 단체로 와서 그 큰 둥치들이 앞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나는 그 둥치들 속에서 샌드위치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위치가 괜찮아 공연을 잘 볼 수가 있었다.


깨롤라 주의 유명한 무대 무용극이 꺼떠껄리(Kathakali)이다. 꺼떠껄리는 이야기 놀이라는 뜻인데, 개를라 주의 무용극은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를 근간으로 한 것인데, 장엄한 서사시들 중 여러 부분을 조합하고 그것을 하나의 주제로 통일하여 드라마화한 것이라 한다.

처음 공연은 1인극인데, 해설자가 나와서 배우가 해야 할 동작 내용을 소개하면 배우는 해설자가 소개한 내용에 따라 동작과 표정을 소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표현하는 것이 훌륭하였다.

다음에는 힌두교 신들과 관련된 서사시로서 한 남성 신이 여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다가 거절 당하자 여신을 해하고 난 다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 같았다. 배우들의 분장의 독특함과 표정의 다양함 그리고 춤사위의 박진감과 긴장감 등이 돋보였다. 하여간 그 표정 연기는 끝내주었다.

배우들의 날렵하고 능숙한 몸짓과 표정 등의 표현을 통해 전형적인 인물의 성격을 드러나게 하고, 뒤에서는 가수들이 배우들의 동작과 표정들에 일치하는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그리고 공연은 먼저 해설자가 무대에 나와서 공연안내를 하면서 배우들이 전개할 다음 내용에 대하여 잠깐씩 끼어들어 공연 내용을 이끌어나갔다.

극에 대하여 공부한 사람도 남의 나라 전통 극을 완전히  이해하고 소화해내기가 어려울 터인데 문외한인 내가 무용극을 본다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여행 와서 전통 극이 어떤 것인지 그 껍데기나마 훑어본다는 것도 뜻이 있을 것 같아서 관람하였다. 생소하여 극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125루피가 아깝지 않았다.


연극 관람을 마치고 여관에 돌아와 사워를 하려고 하는데 온 몸을 긁어서 핏자국이 내배인 곳이  많았다. 피부가 엉망이었다. 앞으로 여행해야 할 곳이 모두 무더운 지방인데 걱정이 된다. 땀이 나면 더 가렵고 긁어댈 터인데.................하여간 가려워도 참고 견뎌내야 한다.


2006년 2월 25일 (토) 맑음

알라뿌자(Alappuzha : Aelleppey)로 가는 날이다. 이른 아침에 여관을 나서서 연락선을 타고 에나르꼴람으로 건너갔다. 여관을 나설 때 비가 내릴 것처럼 잔뜩 흐렸는데 알라뿌자 행  버스를 탄 후부터는 구름이 걷히기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여간에서 오토릭샤-10루피-로 port까지 가서 배를 타고 에르나꼴람으로 건너갔다.

에르나꼴람 KSRTC 버스 터미널에서 알라뿌자로 가는 버스(33루피)를 탔다.

에르나꼴람에서 알라뿌자로 가는 길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알라뿌자로 가는 길은 열대 수림들이 보기 좋게 길가에 줄지어 서있고, 간간히 바다를 가로지르는 교량을 건너기도 하고, 인가가 줄을 잇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과 여러 가지 재미를 느끼게 하는 풍치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밤 모기와의 전쟁으로 잠을  못잔 탓에 쏠리는 잠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밖에 나타나는 새로운 풍치를 빠져들다가도 어느새 졸음에 빠지곤 하였다.


11시 조금 지나서 알라뿌자에 도착하였다.

시가지 끝자락이 종착역이었다. 책자로 시가지 지도를 보고 있는데 삐끼가 나타나서 조용하고 클린하고 칩풀한 여관을 소개하겠다고 하여 얼마냐고 했더니 450이라고 하였다. 200정도하는 방을 구하여 가겠다고 했더니 이놈이 끈질기게 달라붙으면서 300에 해주겠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도 좋다고 하였다.

삐끼가 오토릭샤를 불러서 함께 탔다. 버스 정류장엣 먼 거리를 달려가서 여관 앞에서 내렸다. 정류장과 너무 먼 거리라고 불평을 했더니 no problem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no problem일지 모르지만 나는 틀림없이 문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녀석이 미안한지 점심식사까지 시중을 들고는 사라졌다. 250에 흥정했어도 되는데 그녀석이 구전을 뜯어 먹으려고 오토릭샤를 같이 타고 와서 시중을 들어준 수고를 생각해서 300에 계약하고 말았다.

그런데 여관을 정하고 객실로 들어갔더니 방이 마음에 들었다. 신경을 써서 관리하는 여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배인이 친절하였다. 일정이 촉박하지 않으면 하루 더 묵고 싶었다. 여관에서 비치까지는 400여 미터 거리였다.


바다에 대한 나의 환상에 기인한 것일까? 바다만 보면 무조건 마음이 물결처럼 일렁이면서 동경의 세계 아름다운 꿈의 세계가 거기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젖는다. 나는 내륙산간지역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니면서 자랐고, 고등학교 이후에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가까운 인천 앞바다에도 가보지 못하였다. 내가 처음 바다를 본 것은 25살 때인 1965년 여름 경북 구룡포에서였다. 거칠 것 없는 망망대해, 일렁이며 파도를 일으키는 그 장엄한 광경이 너무나도 내 마음에 깊이 그리고 장쾌하고 아름답게 각인 된 것이었다. 그래서 바다만 보면 마음이 트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일게 되는 것이다. 이번 6개월째 들어선 여행에서도 많은 부분이 바다와 연계되어 있었다. 그것은 나의 그런 취향의 한 면일 수도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뭄바이에서 아라비아 해를 끼고 남쪽 땅끝마을에 해당하는 깐야꾸마리로 갔다가 뱅골만의 바다와 면한 도시를 여행하는 것으로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여관주인이 어떤 사람을 불러서 나를 오토바이로 비치까지 태워주라고 하면서 나에게 올 때는 걸어서 오라고 하였다. 넓은 모래밭과 확 트인 망망한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 저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면서 모래밭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오랜 여행으로 피로해진 나에게 생기를 주는 것이었다.

다른 일정에 구애받지 말고 여기서 하루 더 묵었다가 갈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수로 여행(Backwater Trip) 티켓을 예약을 해놓은 것이 후회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쪽 해변 모래밭과 물가에서 즐기고 있어서 그쪽으로 향하여 걸었다. 그런데 큰길가에는 토목 공사하는 인부들이 내가 나타나니까 일은 하지 않고 나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의 작업장으로 가서 돌 나르는 일을 한 번 거들어 주었더니 그들은 박장대소하면서 악수를 청하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질문을 쏟아냈다. 내가 그들의 일을 방해하는 꼴이 되어서 더 머물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그들은 무척 아쉬워하였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또 바닷가에서 일군의 여학생들이 동양인인 내가 신기한지 우를 몰려와서 한번씩 툭툭 치면서 지나갔다. 사진기를 들여댔더니 서로 찍어달라고 달려들었다. 수녀 선생님이 웃으면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수녀는 노 프로블램이라고 했지만 내가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선생님도 학생들 통제에 곤란을 겪을 것 같아서 그 자리를 빠져 더 위쪽으로 올라갔다.

이곳 사람들은 강한 햇볕을 받고 살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흑인에 가깝다. 동양인이라서 신기한지 피부가 자기들과 달라서 그런지 자꾸 쳐다보고 말을 걸어왔다. 영어를 공용어로 택한 깨를라 주(州)의 젊은이들은 영어를 제법 잘 구사한다. 여기서 오래 머물러 있으면 영어 실력은 늘 것 같았다.

이곳 현지인들은 무척 순박한 것 같다. 외국 관광객이 득실대는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수박함이 그들이 표출하는 호기심에 잘 드러났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위로 올라갔더니 모두 현지인이고 외국인을 보이지 않았다. 모래알이 굵고 깨끗하다. 이렇게 좋은 해수욕장에 서양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였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인가? 개발이 덜 되어서인가? 바닷가 도로변정리와 공원조성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외국인 유치를 위한 기반시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여관으로 돌아왔다. 빵과 과일을 사려고 시장을 돌아보았으나 마땅한 집이 없었다. 한 젊은이가 과일 주스를 팔아달라고 하여 그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젊은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내가 어리둥절하니까, 의자를 내어주면서 앉기를 권하고 과일을 내 앞에 갔다가 놓으면 먹으라고 친절을 베풀었다. 친절과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좋았다. 외국인 특히 동양인을 보면 무슨 신기한 존재인양 구경거리로 여기는 것을 많이 느꼈는데 이곳 젊은이들은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여하 간에 알라뿌자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간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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