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의 젊은이가 세계를 헤매다<111> 인도 - 마두라이(Madurai))
마두라이(Madurai)
2006년 3월 1일 (수) 맑음
지난밤에도 잠을 많이 설쳤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5시 30분에 간단히 체조를 하고 몸을 푼 다음 짐을 챙겨 6시30분에 여관을 나섰다.
마두라이행 버스가 7시에 있다고 하여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한 버스의 차장이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타고 다음 도시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갈아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타고 터미널(짐작컨대 Negercail)까지 갔다. 큰길에서 내려 터미널 광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마두라이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차에 타면서부터 졸음에 쫓겼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무겁고 아프기까지 했다.
깐냐꾸마리에서 마두라이까지 오는 길에 펼쳐진 풍경은 좌측에 높은 산이 처음에는 가까이 좀더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멀리 보이고, 간냐꾸마리를 떠나서부터는 대부분 야자수 나무와 바나나 밭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두어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평야지대이면서도 개간되지 않은 땅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자라는 나무나 풀들은 사막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건대 농작물이 잘 되지 않으니까 쓸모 없는 땅으로 개간도 하지 않고 그냥 팽개쳐져 진 것 같다. 그런데 풍차를 무척 많이 설치하였다. 그러니까 이곳이 인도 남쪽 끝 벵골 만과 아라비아 해 그리고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이라서 바람이 많이 부는 모양이다.
오후 2시경에 마두라이에 도착하였다. 버스가 마두라이 중심부를 지나 외곽지대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소까지 가서야 손님을 내려놓았다. 시내 중심부에서 손님을 내려주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마두라이에 내리자마자 평판대로 관광객을 귀찮게 하는 존재들이 많았다. 삐끼들이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여행객에게 달려들어 반 협박조로 자기들의 택시나 오토릭샤를 타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러려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죽 살기 힘들면 그런 일을 하겠는가? 그들이 나라의 경제가 좋다면 국가에서 국민들을 그렇게 하도록 놔두겠는가? 우리나라의 어제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은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못 살면 다툼이 많고, 의심이 많아지고, 서로 경하는 마음의 끈을 가지고 피곤하게 살아가게 마련이다. 나도 50년대 60대에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았던 시대가 기억이 난다. 그 때 서울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코 베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도 각박하고 삭막했다. 지금의 마두라이는 그랬던 서울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마두라이 터미널에 내리는 순간에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낯으로 대해주면서 2,3일 쉬었다 가리라 생각했다.
오토릭사를 타고 Hotel. Sri Santhanam에 들었다. 1박 100루피.
이 여관은 외국인은 없고 내국인들만 득실거렸다.
방을 정하고 짐을 대충 정리해 놓은 다음에 기차역에 가서 마말라부럼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창갈뿌뚜(Changalppattu)까지 가는 표를 예매했다.
일정이 빠듯하여 원래 계획에서 마말라뿌럼(Mamallapurum)을 빼버렸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마말라뿌럼을 놓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첸나이에서 1일 뿌리에서 1일을 줄여 마말리뿌럼을 둘러볼 수 있는 일정을 마련하였다. 마두라이에서 첸나이로 바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서 창갈빠뚜까지의 기차표를 구입한 것이다..
역에서 걸어 나오는데 사람들이 나의 몸을 툭툭 치면서 자기 가게에 들러 물건을 구경만하고 가라고 통사정이다. 아예 못들은 체 무시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딴청을 부리면서 걸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만 보면 집요하게 달라붙는 장사꾼들을 만나면 정말로 짜증이 났다.
여관에 돌아오는 길에 시내 한 중간에 우뚝 서 있는 스리 미낙시 템플(Sri Meenakshi Temple)의 고뿌럼의 화려한 자태가 보였다. 그래서 그곳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가까이 가보았더니 사원입구에서 어떤 사람이 묘기를 연출하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그 앞에 동전을 던져주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가면 스리 미낙시 사원 전체를 다 볼 수 있다면서 나의 소매를를 끌어당겼다. 싫다는데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들의 끈기란 실로 대단하였다. 겨우 그를 물리치고 템플 주위의 시장을 찾아갔으나 방향을 잘못 잡아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맥주를 사서 마셨다.
한동안 센티멘탈해져서 침대에 누워 지난 일들을 더듬느라고 잠을 설쳤다.
2006년 3월2일 (목) 맑음
오른쪽 귀에 통증이 일었다. 여행 끝자락이라는 것을 몸이 알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방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아침 일찍 스리 미낙스 템플로 갔다. 템플 안에 들어가려니까 신발을 벗으라 하여 들어가지 않고 템플을 한바퀴 돌기만 하였다.
여관 부근에 와서 환전을 하려고 하는데 머리에 꽃을 주렁주렁 매어달고 예쁘게 단장한 여인들을 가득 태운 화물트럭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차가 가는 방향으로 현란한 인도복장 차림의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호기심에 나도 따라갔다. 거적때기 같은 것으로 감싼 높은 건물이 보였고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꽃다발로 뒷머리를 예쁘게 치장한 여자들이 많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못 들어가게 막았다. 거적때기 같은 것으로 건물을 둘렀고 내부도 보이지 않고 궁금하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규모가 스리 미낙스 템플보다는 작아 보이지만 안을 끊임없이 드나드는 사람들의 수효로 보아 그리 작은 사원은 아닌 것 같았다.
여관으로 되돌아오다가 환전하였다. ($100=5200Rs)
마두라이는 다른 도시에 비해서 거지가 많은 것 같다. 거리에 나서자마자 거지가 앞을 막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차마 외면하기에는 딱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멀쩡한 젊은 놈이 구걸을 하기도 한다.
집에 전화를 했다. 아내가 받으면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면서 맛있는 것 많이 사먹으라고 했다. 집에 별일 없으니 걱정 말고 하였다. 손녀들이 보고 싶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의 귀여운 지은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낱선 외국에서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맞이하는 생일이다. 맥주를 사서 마시면서 지난날의 내 삶을 돌이켜보고 또 앞으로의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맥주만 마시면서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고 잡념을 잠재웠다.
여관에 돌아와서 낮잠을 달게 잤다.
오후에는 스리 미낙스 템플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원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서 맡기고.(2Rs) 들어갔다. 오전에 왔을 때는 무척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려고 줄을 길게 늘어서고 붐볐었는데 오후 3시가 되어서는 한가하였다. 관람객들이 한낮 뜨거운 햇볕은 피해서 오전에 몰리는 것 같다. 들어가는 입구의 시원한 그늘은 오수(午睡)를 즐기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편안하게 아무렇게나 맨땅바닥에 누웠다. 누워있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그늘을 지나 햇볕에 달궈진 돌을 밟고 걸어가기가 고역이었다.
사원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이 사원의 출입구가 동서남북으로 나 있지만 가장 활기찬 부분은 동문이 있는 곳인 것 같다. 동문으로 들어가면 신성한 힌두교 성전과 더불어 사원 내에 눈요기 거리가 되는 상점들도 많다.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사원을 찾아 온 것 같은데, 내 느낌에는 성지(聖地)로서의 신성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관람객을 상대로 하는 거지와 장사꾼들만 득실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직 이곳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문화와 중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사원을 나와서 동쪽 입구 앞 시장으로 갔다. 거기에도 이 사원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 같은 건물인데 중앙은 힌두고 신들이 모셔졌거나 제사를 드리는 곳 같기도 하였다. 그 외 대부분은 상점들이 차지했다. 서점과 장신구 용품점, 옷가게, 재봉사들이 직접 주문을 받아 옷을 만들어 파는 가게 그리고 힌두교에서 사용하는 온갖 그릇 및 유기 장식품 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 특이한 건축물 뒤편에도 옷가게가 이어지고, 이어서 채소와 과일 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좀 더 시내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강한 햇살과 더위 그리고 거리의 분진 때문에 걷기가 거북하여 여관으로 돌아와서 쉬었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