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키(6) - 그랜드 캐니언과 세도나
여섯째 날,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그리고 세도나(Sedona)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오늘은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 사회 교과서에서 처음 듣고 지금까지 기억해온 그랜드 캐니언으로 출발하였다. 그랜드 캐니언을 다녀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언제 한번 가볼 수 있을까’하고 부러워하였는데, 드디어 나도 그랜드 캐니언을 보게 되었다.
페이지에서 7시에 출발하여 10분간 그랜드 캐니언 댐(Grand Canyon Dam)을 둘러보았다. 댐 부근은 적토층으로 온통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했다. 댐 옆에 “고도(elevation) 3728”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페이지에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이동하면서 지나온 지역은 대부분 땅이 메말라서 사막성 식물이 고원을 매웠고 군데군데 석회성분의 흰 띠를 두른 적토층 산들이 기괴한 모양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이곳은 대부분 인디언들의 거주지역이라고 하는데 땅이 척박하여 농경지로서는 이용될 것 같지 않았다. 화산 지역은 풀은 아예 나지 않았고 회색이거나 자줏빛이었다. 인디언들이 길가에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그들의 토속제품을 팔기 위하여 가판대를 설치해 놓은 것이 더러 보였다.
인디언 토속제품 매장이 있는 곳을 잠시 들려서 휴식을 취하고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 림(South Rim)으로 들어갔다. 화산지역을 벗어난 고원지대는 사막성 식물이 대지를 겨우 덮고 있었으나 그랜드 캐니언이 가까워지자 숲이 무성하였다. 그러나 고지대라서 그런지 나무의 키가 높지 않았다.
사우스 림으로 들어가기 전 우측에 그랜드 캐니언의 한 부분인 협곡이 보였다. 그곳도 아주 장대하게 보여서 감탄하였더니 일행 중 한 분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랜드 캐니언에 가면 저절로 입이 벌어질 것이라 하였다.
그랜드 캐니언의 협곡은 그 길이가 360km에 폭이 6~30km 평균 10km, 깊이 1600m나 되며, 계곡 저지(低地)에는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 질러 콜로라도 강이 곡류(曲流)한다. 계곡의 벽에 계단 모양의 단구(段丘)드이 많이 형성되었는데, 이 단구에서 소규모의 농경지를 일구어 사는 인디언 보호지구가 있다고 한다. 계곡의 벽에는 석회석이 포함된 적색과 황색이 지층을 이루며 수목이 거의 없거나 듬성듬성 보이지만 고원에는 수목이 무성하다.
가물가물하게 내려다보이는 계곡 바닥에 골로라도 강물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는데 고원에서 저지까지 내려가려면 아무리 빨리 걸어도 14시간을 걸어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협곡 내부와 주변에서의 트레일(trail)을 하이킹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10시 조금 지나서 드디어 그리고 그리던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하였다.
데저트 비유(Desert View)에서 저 멀리 그리고 아래로 펼쳐져 있는 헤아리기 어려운 광대한 캐니언, 한 눈에 모두를 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광경에 압도되었다. 브라이스 캐니언에서는 바로 눈 아래 펼쳐진 아기자기함과 선명한 모습과 색상들에 놀랐고 자이언 캐니언에서는 우뚝우뚝 서있는 거대한 석상에 경탄했는데, 그랜드 캐니언은 내 시야가 못 미치고, 내 생각이 닿지 못할 그 광막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랜드 캐니언은 너무나 광대하고 광대하다. 어찌하여 저런 광막함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창세기의 하늘과 땅이 열리는 이야기가 지금 막 여기 그랜드 캐니언에서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었다.
데저트 비유에서 마더 포인트(Mather Point)로 이동하여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함을 다시 확인하고 이 구석 저 구석을 놓치지 않고 보려했지만 오히려 마음만 바빴다. 고물고물거리며 멀어져가는 산줄기, 보일 듯 보일 듯하다가는 사라져버리는 계곡들, 요리조리 물결치면서 다가오던 봉우리들이 어디론가 꼬리를 감추는 것 같았다.
꿈에라도 와 보고 싶었던 그랜드 캐니언! 드디어 내가 여기에 와서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신비의 땅, 아름답고 웅장한 계곡, 눈이 닿지 않게 뻗어나간 계곡 저 너머의 고원으로 내 마음도 함께 뻗어갔다.
그랜드 캐니언은 대부분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이고 산악이다. 그리고 이 혹독한 환경에서도 역사의 격랑이 있었다. 스페인 탐험가와 선교사, 뜨내기 광부, 카우보이, 무법자와 사냥꾼 등이 밀려들면서 인디언들에 대한 백인들의 무자비한 학살, 겨우 살아남은 인디언들이 잔명을 보존하기 위해 이 척박한 오지를 선택해야했던 아픈 역사가 이곳에 묻혀 있다.
2시30분 50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레스트 애리아(Rest Area)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나무그늘이 없는 지역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구름이 몰려와 햇볕을 가려서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IMX로 이동하여 그랜드 캐니언에 관련된 영화를 관람하였다. 우리가 체험할 수 없었던 부분들에 대한 부연 설명 비슷한 것들이 그 영화에 담겨 있는 것 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을 드라마 화하여 내놓은 상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랜드 캐니언 계곡 내부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은 풀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원시 인디안들의 생활상과 백인들의 초기 탐험 모습을 소개하고, 중심 내용은 1869년 미국의 남북전쟁의 영웅 존 웨슬리 파웰이 탐사단을 조직하여 70여 일간 콜로라도 강을 탐험하였던 것을 재현 것이다.
극장에 들어가는 입구에 탐험대가 사용하였던 배의 복제품을 전시하고 그 내역을 기록해 놓았다.
세도나(Sedona)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감동을 안고 다시 버스에 올라 애리조나 주의 중심지역에 있는 신비의 땅 세도나(Sedona)로 향하였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플라그스태프(Flagstaff)까지는 평원지대로 목장과 농장들이 많이 보였지만 대부분 내리막길이었고 좌우로 전나무가 욱어진 숲길이 많았으며 멀리 혹은 가까이 높은 산들도 보였다. 플라그스태프에 도착하기 전 푸른 숲과 넓은 초원지대는 영화 “초원의 집” 촬영지였다고 한다. 거기서부터 플라그스태프까지는 울창한 숲길이다.
플라그스태프는 숲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도시에 들어서니 여관들이 많이 보였다. 그랜드 캐니언과 세도나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이곳을 거점 도시[출발도시]로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라 한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였는데 높은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숲길을 30여분 달리는 동안 좌우 산의 뛰어난 경관과 숲 위로 언뜻언뜻 나타나는 붉은 산봉우리의 기묘한 형상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도나는 ‘지구상에 흐르는 강력한 에너지 장인 21개의 보텍스(Vortex) 중 5개가 모여 잇어 인간의 정신 수양에 가장 좋은 곳’이라 한다. 시인 김지하의 “예감”이라는 기행문에도 세도나에서 기(氣)를 받기 위해 보캑스를 찾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또 야구선수 박찬호도 기(氣)를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얘기도 있다.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기후도 온화하며 종교 단체들이 있고 휴양과 골프, 예술가들의 이벤트를 즐기기 위하여 연간 400만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가 지났기 때문에 종 바위 한 곳만 들렸다가 오라는 아내원의 당부에 바삐 종 바위를 찾아갔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기를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바위가 험하기도 하지만 시간상 도저히 올라갈 수 없어서 종 바위 주변만 맴돌다가 되돌아왔다. 내려오면서 팔과 손등을 보니 온통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옆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였다. 우리는 그것이 ‘기(氣)’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신기로워하면서 산을 내려와 버스에 올랐다. 기를 받아 몸의 질환을 치유하기 위하여 세도나에 와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세도나에 와서 기를 받아 간다고도 한다.
석양을 받아 더욱 붉게 물들어 있는 세도나는 꿈속의 나라 같다. 어쩌면 산봉우리들이 저렇게 독특한 형상으로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 나 있을까? 세도나를 잠깐 들렸다가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세도나 시가지를 지나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플라그스태프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밤12시가 되어서야 오늘의 숙소인 홀브룩크(Holbrook)에 도착하였다.
그랜드 캐니언
세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