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南美) 여행 22. - 뒷얘기 : 기우(杞憂) . 의심(疑心) -
기우(杞憂), 의심(疑心)
(1)아침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여관 사장에게 땀에 절은 옷 세탁을 부탁하였다.
사장이 내 세탁물을 받아 로비에 있는 테이블 옆에 슬쩍 던져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로비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들고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내 세탁물을 아주 무성의하게 함부로 던져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세탁물의 가격이 얼마인가? 고아텍스 잠바(36만원), 바지(15만원), 조끼(12만원), T샤스(7만원) 도합 78만원어치인데... 주인이 그 세탁물의 값어치를 알기나 하는지...
아침을 먹고 돌아왔더니 내 세탁물이 보이지 않았다. 주인 식구들은 모두 나가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배낭족들 몇 사람이 이 집에 들어왔으나 주인이 없어서 그냥 돌아갔다.
누가 내 옷을 몰래 가져간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써도 자꾸 그 생각에 매달리게 된다.
늦은 오후에 세탁물을 깨끗하게 잘 다려서 검은 봉지에 담아서 내 방으로 가져 왔다. 그 세탁물을 받아 들고는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마음고생하고 남을 의심하고.....
(2)Copacabana에서 라파즈 버스를 타고 오면서 또 가방 때문에 걱정을 하였다.
버스 지붕에 가방을 올려놓았는데, 가방을 버스지붕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끈으로 묶지도 않고 그냥 올려놓은 것 같았다.
혹시 차량이 덜컹거리다가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포장 된 길이니까 버스가 덜컹거리면서 튀는 일은 적겠지만 티티카카 호수 지역의 도로는 대부분 산을 끼고 돌고 도는 산굽이길이 많은데 그런 산모퉁이를 속력을 내면서 돌 때 버스 지붕에 얹어놓은 가방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또 날씨가 흐려서 비가 내리게 되면 가방이 다 젓을 텐데 비가 내리면 어쩌나, 혼자 걱정을 하면서왔다.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야 할 San Peciro de Tiquina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려서 내 가방이 무사히 놓여 있는지 확인하려고 버스지붕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버스 위에 올려놓은 짐들을 비에 맞지 않도록 천을 덮어씌우고 밧줄로 꽁꽁 묶어 둔 것을 보고나서 안심이 되었다.
(3)라파즈에서 코파카바나로 가던 날이다.
버스표를 사들고 나오는데 회사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코파카바나?”하고 묻기에 “예스!”라고 했더니, 내 가방을 빼앗다시피 받아들고 버스 뒤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할 무렵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가방을 들고 버스 뒤로 가던 사람의 뒷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왜 가방을 짐칸에 싣는 것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었다.
혹시 버스 종업원을 가장해서 가방을 싣는 척하고, 가방을 가지고 달아난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자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내내 그 생각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종착지에 내려서 짐칸으로 가보니 내 가방이 얌전히 실려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생기면 여행의 재미가 반감되기 일쑤다. 버스 차창 밖에 나타나는 경관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잠깐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젊은 친구가 가방을 도적맞았을 때도 방심이 그런 불운을 가져왔던 것이다.
철저히 확인하고. 조심조심하고, 당황하지 말고, 서둘지 말고,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4)Isla Del Sol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방에서 수첩을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깨알처럼 메모해 놓은 그 수첩은 나에게는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트레킹을 마치고 내가 배에 올라서 가방을 빈 의자에 올려놓고 한참 졸았었다.
가방이 놓인 의자 옆 의자에 한 젊은 서양인이 앉아 있었는데, 내가 졸음에서 깨어났더니 보이지 않았다. 배 안의 사방을 살펴보아도 그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코파카바나에 돌아와서 배에서 내릴 때보니 간판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혹시 그 친구가?
(참---) 사람이 남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없는 소설을 쓴다.
그 수첩을 돈지갑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미치니 틀림없이 돈지갑으로 알고 어느 친구가 슬쩍 가져갔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그렇게 생각이 엉뚱하게 비약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누가 가져 간 것으로 단정하고 속상해 했다.
속상한 마음을 누그러뜨려 보려고 여관을 나와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어느 가게에서 음료수를 시켜 마시면서 가방 뚜껑을 만졌더니 잘 사용하지 않던 가방 주머니에서 수첩이 나왔다.
내 참! 왜 신중하지 못하고 남을 의심했는지... 나이는 많아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