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맸다<4>사프란볼루
<사프란볼루>
2005년 10월 4일(화) 맑음
삼순 예약 26TL, 하맘11TL, 점심7.5TL---오늘은 헛돈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
여관 주인 - 직업은 목수인데 마누라가 두명이다
어제 초저녁부터 잠을 자서 그런지 새벽 3시에 깼다. 내 옆에 자고 있던 일본 학생이 앙카라로 가기 위해서 새벽 3시경에 일어나야 한다고 했는데 계속 자고 있어서 내가 그를 깨웠더니 잠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위층에 투속한 일본사람과 동행하기로 했다니까 그가 내려오면 일어나겠지 하고 더 이상 깨우지 않았다. 3시 30분이 되었는데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방에 불을 켜고 다시 깨웠다. 마침 위층의 일본인도 내려오고 있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현관의 불을 켜서 그들이 안전하게 집을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더니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총총히 여관을 떠났다.
그들을 보내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방안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벗어놓았던 옷을 다 꿰어 입고 이불속에 들어 눈을 감은 채 비몽사몽간에 4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밤차로 삼순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낮에 하맘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사푸란볼루 시가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집 뒤쪽에 있는 언덕(공원)에 올라 체조를 마치고, 아침식사 후에 마사지도 받을 겸해서 하맘으로 갔다.
하맘 내부가 익숙한 곳이 아니라 다른 이용객이 있으면 그를 따라서 흉내를 내기라도 하겠는데 도무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옷을 벗어놓은 곳에 복대를 비롯한 여권 등 중요한 것들을 넣은 가방을 걸어놓은 것이 불안하였다. 그래서 대강 몸을 씻은 다음 하맘을 총총히 빠져나왔다.
하맘을 나와서 오토갈(버스터미널)을 향하여 갔다.
오늘 오후에 버스 탈 장소를 미리 알아두기 위해서였다
길에서 만난 여행생들.
오토갈로 가다가 도중에 어떤 건물 앞을 지나는데 젊은 사람들이 내가 낯선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큰 길로 통하는 정문으로 우르르 몰려 나와 나를 희롱하는 건지 신기해서 그런지 야단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피해 가면 더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아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쳐 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모여 있는 그 건물 정문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에워싸다시피 했다.
사프란볼루의 구시가지
그곳은 제화(製靴) 봉재(封齋) 등의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계통 학교 같았다. 선생인 듯한 사람이 나와서 나를 둘러싼 학생들을 교실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선생들도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면서 사무실로 안내하였다. 차이를 대접 받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사무실에 있는 선생들도 나를 주목하면서 나의 국적 직업 여행 목적 등에 대해서 궁금해 하였다. 나도 영어를 못하지만 선생님들도 영어를 잘 구사할 줄 아는 분이 없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서도 나에게 계속 질문하던 선생 한 분이 나를 어느 교실로 인도하면서 벽에 걸어놓은 그림과 사진들을 가리키면서 터키어에 영어를 섞어서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지만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여서 응대해 주었다.
기술학교 책임자
이어서 구두와 가죽제품 그리고 여러 가지 봉제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안내를 했다. 아마 이 학교에서 만든 제품을 전시해놓고 판매하는 것 같았다. 제품에 대해서 선전을 하는 것인지 사라고 권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건도 사지 않으면서 그들이 베푸는 친절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학교에서 나와 한 굽이를 돌아 언덕으로 난 길을 올랐다. 거기가 신시가지였다. 신시가지는 구시가지보다 훨씬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길도 곧고 넓으며 건물들도 산뜻한 현대식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도 태깔이 나 보였다.
꽃 '사브란'의 모형
어디에서나 어린 녀석들은 호기심이 많다. 공부를 마치고 학교로부터 귀가하던 녀석들이 나를 보자 가던 발길을 멈추고 모두 내게로 모여든다. 예쁘고 귀엽다. 어린 녀석들이 내게 던진 첫마디가 “What's your name?"이다. <‘이린 녀석들이 버르장머리 없게 영감 이름을 물어? 고얀 놈들....’> 그들은 내 모습이 신기해서 내 옷과 가방을 만져보거나, 얼굴을 쳐다보면서 시선을 잠시도 내게서 때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입구에서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를 향하여 서 있었다.
쬐그만 녀석들이 영감인 나에게 "What's your name? "
여관 부근에서 꾀 비싼 점심을 사먹고 구시가지를 한바퀴 돌았다.
어떤 가게 안에서 허리가 몹시 휜 영감이 무엇을 만드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영감이 만드는 것은 말이나 당나귀 등받이였다. 이곳 사프란볼루에서는 말과 당나귀가 더러 보였다. 언제까지 말이나 당나귀가 화물 운반이나 인간의 발이 되어 줄 것인지 모르지만 자동차가 계속 늘어나면 앞으로는 짐승의 힘을 더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저 노인이 전수받아서 해오던 일(말 등받이 만드는 일)이 그의 손에서 끝이 날 것 같다. 실제로 좁은 가게 안에서 일을 같이 하는 사람도 조수도 없이 노인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노인이 하는 일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스란히 이어왔는데 더 이상 그 일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노인의 마음이 허전해질 것 같다.
말 장신구를 만드는 영감님
오후 5시경에 오늘 이스탄불로 가는 대만 여행자와 나를 여관주인 Yapici씨가 자가용으로 버스회사까지 데려다 주었다. 대만 사람은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짐을 버스회사에 맡기고 신시가지를 구경하겠다면서 나가고, 나는 대기하고 있던 세르비스를 타고 오토갈로 갔다.
6시에 삼순행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중년의 터키인이 타고 있었다. 나와 말을 나누고 싶어 하는데 그나 나나 영어가 부족하여 의사가 제대로 교환되지 않았다. 어느 버스 정거장에서 바깥바람을 쐬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옆자리의 사람이 내 화장실 이용료와 차이 값을 대신 지불하였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경계하는 마음이 일었다. 호감이 가는 인상도 아닌데 생긴 것도 좀 쉽게 접근하고 싶지 않은 타입이었다.
삼순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도 함께 내렸는데, 함께 내린 것이 혹시 무슨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바짝 일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갈 길을 갔고, 버스정거장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 나만 달랑 남아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자기가 갈 길을 가지 않고 내 거둥만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더욱 긴장되고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도 빨리 자기 갈 길을 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필시 나에게 무엇을 노리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여관이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하여 주위를 살피는데, 그는 내게 다가와서 찾는 여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할 수 없이 쪽지에 적은 여관이름을 보여주었다. 그는 내게서 받든 쪽지를 가지고 어느 가게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그 가게 주인이 가리키는 쪽을 향하여 자기와 함께 가자고 하였다. 가게주인이 가리킨 쪽에는 전기불이 많이 밝혀져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어 따라갔다. 그는 내게서 받아든 쪽지를 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쪽지를 보여주면서 여관이 있는 곳을 묻는 게 아닌가! 그제야 그에 대한 믿음이 가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cem otel을 찾았다. 틀림없이 사푸란볼루에서 예약을 했는데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예약금을 미리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옆의 여관 Kaya otel로 가서 싱글 룸을 얻을 수 있었다.
나를 데리고 왔던 터키인은 자기의 갈 길을 제쳐두고 한 밤중에 이방인인 나를 위하여 이렇게 애를 써 주었다. 그런 그를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끝까지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았으니 참으로 미안하였다.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내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작별인사를 하면서 그의 갈길을 갔다. 이렇게 착한 사람을 의심을 하다니.... 나는 사람을 너무나 볼 줄 모른다는 자괴감에 한참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