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북악산과 인왕산

어르신네 2015. 7. 18. 22:07

북악산과 인왕산 

 

오늘은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을 다녀왔다. 1958,9년 고등학교 시절 인왕산을 오르면서 늘 바라보았던 백악산이다. 효자동 전철 종점에서 우측으로 가면 청와대(그 당시에는 ‘경무대’)가 있고, 청와대 서쪽 북악산 기슭을 따라 올라가는 도로가 있었다. 그 도로 좌편 아래에는 경복중고등학교와 경기상업고등학교가 내려다 보였다. 당시 어느 날 그 길을 따라 창의문으로 올라가다가 우측 북악산 기슭을 쳐다보았었다. 거기에 “이곳에 접근하면 발포함”이라는 경고판이 보였다. 그 경고판을 보고 놀라서 긴장하여 정신없이 창의문이 있는 고개를 넘어갔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오늘 그 북악산을 올라갔었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내려와서 다시 인왕산을 탔다. 인왕산은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 거의 매일 새벽마다 올라갔던 아주 친숙한 산이다.

북악산 등산을 위하여 종각전철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왔다. 화신 백화점 옆 안국동 방향 버스 정거장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탔다. 그리고 오늘 백악산 등정 코스의 시발점인 성균관대학교 뒤편에 있는 와룡공원에서 내렸다.

 

우리 일행은 와룡공원을 시발점으로 좌측 성벽을 따라서 백악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갔다. 이 성벽은 서울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북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의 능선을 이어나가면서 축성한 성곽으로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비교적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안내소로 가는 중간 성벽에 문제가 생겨 우회로를 이용하였다.

우회로

 

말바위 안내소 위에서 잠시 성북동 쪽을 바라보았다. 동쪽 저편에 수락산과 불암산, 성북동의 삼청각과 간송미술관 등을 표시해 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성북동 일대를 조망하고 다시 숙정문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성북동 너머로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삼청각

간송미술관(우측하단)

 

말바위 안내소에서 입산허가를 받고, 성 내벽을 따라 200여m 올라가면 숙정문에 이르게 된다. 숙정문은 본래 북대문(北大門)리라고도 하였는데 1395년(태조4년)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언제 무슨 이유로 숙정문(肅靖門)으로 개칭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이 문은 1504년(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76년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시에서 백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하고 ‘肅靖門(숙정문)’이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숙정문

 

숙정문에서 성 내벽을 따라 촛대바위, 청운대를 숨차게 올랐다.

청운대에서 바라보이는 서울의 경관은 참으로 장관이다. 남산에 우뚝 선 송신탑과 시내 중심가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들의 수도 서울, 서울 중심가의 건물들과 도심 속으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들만 보아도 서울이 얼마나 활기찬 도시인가를 느낄 수 있다.  

북악산 곡장에서 바라본 남산 타워

 

곡장에서 바라본 인왕산

청운대로 가는 길

 

청운대에서 바라본 세검정

 

청운대 주변 성벽

 

청운대를 내려서 북악산에서 제일 높은 백악마루를 향하였다. 백악마루에 오르기 전에 “1.21사태 소나무”가 보였다. 1.21사태란 1968년 1월 21일 특수 훈련을 받은 북한 무장공작원들이 김일성의 명령을 받고,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려 했던 사건이다. “1.21사태 소나무”를 보니 당시의 살얼음 위를 걷는 것같이 긴장했던 우리사회분위기가 떠올랐다.

 

1.21사태 소나무

10시20분에 와룡공원을 출발하여 11시 50분에 해발 342m의 북악산의 최고봉 백악마루에 올랐다. 서울 중심부가 눈 아래 다가섰고, 자하문 밖 세검정과 아름다운 북한산, 평창동과 성북동, 정릉 일대가 한눈에 잡혔다.

북악산[백악산] 마루 정상비

박악산 옛 모습 복원비

 

북한산

북악산의 정상 백악마루에서 창의문까지는 가파른 나무계단길이다.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길이 지루하였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잠깐씩 멈춰 서서 주위를 바라보노라면 그 지루함도 잠시 덜어질 수 있다. 계단의 중간에서 잠시 멈춰 서면, 멈춰 서는 지점마다 주변경관의 모습이 달라져 보이는 것 같았다.

북악산 마루에서 창의문으로 하산하는 계단

 

 

드디어 북악산의 마지막 지점인 창의문에 도착하였다.

창의문은 1396년(태조5)에 도성 8문의 하나로 창건되었다. 현재의 문루(門樓)는 1741년(영조17)에 세운 것이다. 창의문은 서울 성곽의 4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한다.

12시 20분에 와룡공원을 출발하여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합쳐서 2시간 만에 북악산 등정을 마쳤다.

창의문

 

 

창의문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인왕산을 향하여 발을 옮겼다.

“윤동주시인의언덕”에서 잠시 멈춰서 입석에 새겨놓은 “서시”를 읽으면서 시인 윤동주의 시 세계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일제침략의 현실과 이상과의 사이의 괴리에 대한 시인의 치열한 고뇌를 생동감 있는 언어로 형상화하여 ‘서시’를 접하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시인의언덕’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길이 숨이 찼다. 북악산에서 기운을 소진한 탓도 있었겠지만 오늘이 이번 여름 들어서 최고로 무더운 날씨였던 것이다. ‘기차바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면서 계단 중간에서 수차례 쉬었다가 올라가기를 반복하였다.

기차바위

인왕산 정상

인왕산 정상

인왕산 정상

인왕산 정상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와 남산 타워

사직공원쪽으로 내려가는 길

 

북악산과 인왕산은 암산으로 서울 중심지를 품어 안은 것 같다. 인왕산 정상에서는 서울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서울의 명산 인왕산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고 사직동으로 하산하였다. 3시 조금 지나서 단군성전이 있는 곳에 내려왔다.

오늘은 그렇게 어려운 코스가 아닌 데도 날씨가 더워서 무척 힘들었던 등산이었다. 그러나 한번은 꼭 와야 할 산행이라서 무척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