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고아에서 함삐로 가는 길
08.고아에서 함삐로 가는 길
이동인구가 많다는 일요일을 피해서 월요일에 함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원래 계획은 밤에 이동하는 침대차를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Comfort G.H 주인이
“함삐로 가는 길이 험하여 침대차를 타고 가면 고생한다. 여행은 듣고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냐? 고아에서 함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밤에 이동하면 그 아름다운 경치를 못 보게 된다.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밤에 이동하느라고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 하였다.
게다가 함삐에서 밤에 침대차를 타고 고아로 왔다는 미국인 젊은이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고생되었던 일을 온 몸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뭄바이에서 침대차를 타고 고아로 올 때 고생을 하였기 때문에, 길이 험하다는 함삐행 침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무모할 것 같아서 낮에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였던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하지 말고 현재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즐기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자고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동감한다고 하였다.
빤짐에서 낮에 출발하는 버스는 함삐로 가는 것은 없고 함삐 가까운 호스펫까지만 간다.
우리는 일단 호스펫에 가서 자고 그 이튿날 함삐로 가기로 하였다.
호스펫으로 가는 버스는 9시 30분 정각에 빤짐의 까담바 버스스탠드를 출발하였다.
우리는 맨 앞좌석에 앉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모두 까만 얼굴에 커다란 흰눈동자만 희번덕거리는 것이었다. 이 차에서의 유색인종은 우리 부부뿐이었다.
좌석이 없는 사람들은 통로에 주저앉았거나 의자 등받이 모퉁이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이 차는 우리나라50~70년대에 지방도시를 연결해 주던 버스와 비슷하였다. 서민과 동고동락하는 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빤지를 벗어나 만도비 강변 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올드 고아를 지나 계속 동진한다. 10시 15분경 Ponda라는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탔다. Darblandora라는 도시를 지나면서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험한 산길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앉은 좌석은 삼인 석이었는데 내 옆자리에 뭄바이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는 얌전한 젊은이가 앉았다. 그는 무척 친절하고 우리 부부에 대하여 아주 호의적이었다. 고향인 후불리로 가는 길이라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산은 Anmond Ghat라고 하였다(고등학교 지리부도를 보니 Western Ghat라는 것이 보였음).
산림이 울창하며 점점 높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 맑은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아내도 산속 공기가 너무나 좋다면서 펼쳐지는 풍치에 마음이 빼앗겼는지 표정이 밝다.
한 시간 이상을 산속을 헤집고 올라가는 길목에 Karnataca 주의 선전 간판이 보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올라갔다.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이리저리 휘감고 돌고 돌아 올라왔는데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 길은 아주 완만하거나 거의 평지에 가까웠다. 아마 함삐로 가는 지역은 고원지대(高原地帶)인 것 같았다.
시원하게 뚫린 길을 달리는 차안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풍경들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동안 어느덧 차는 Londa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옆의 젊은 친구가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은 Ponda와 Banglore를 잇는 Nation High Road 4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탄 이 버스는 후불리(Hubli)까지는 고속도로로 가고 후불리에서부터는 일반국도를 타고 호스펫으로 가게 된다고 하였다.
Londa를 지나면서 숲 속의 가옥 群이 아주 이색적으로 보였다. 야자수를 비롯한 각종 수목들이 어우러진 그 속에 가옥이 비집고 들어가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Dharwad라는 지역에서부터는 대평원이 전개된다. 꼬펄(Koppal)에 도착할 때까지 야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옆자리의 젊은 친구는 후불리에서 내렸다. 우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이 몇 번 씩이나 손을 흔들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버스정류소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리고 정거장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부부에게로 쏠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들에게는 대단한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차창가까이 와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무언가 얘기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Anmond Ghat의 자연림과 Londa에서부터 펼쳐지는 광활한 대평원,
야자수가 빚어내는 운치를 밤 버스를 이용했더라면 모두 놓칠 뻔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소박한 남인도인들의 일상 중 일부일 수 있는 버스 이용 모습도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버스를 오르내리는 모습, 차에 오른 노인에게 자리를 만들어 앉히는 미덕, 그리고 절제되지는 않았지만 꾸밈없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언동(言動)이 너무나 생생하였다.
그리고 큰 보따리를 버스 지붕에 올려놓은 일, 버스 정류장에 들렸을 때 장사꾼들이 차내로 들어와서 물건 파는 모습, 또 그것을 사서 먹는 승객들의 모습, 장거리 여행 중 용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적당한 곳에 정차하여 노천에서 일을 치르는 모습 등등은 낮에 장거리를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했을 때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후불리는 꽤 큰 도시 같았다. 그러나 시내 차량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서 정류장을 출발한 버스가 시내를 빠져나오는 시간이 무척 더디었다. 후불리 버스정거장을 도착했던 시각이 14:40이었다. 지도를 펴서 보니 후불리는 고아와 호스펫의 중간지점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7시간을 달려왔는데 앞으로 더 가야할 시간이 7시간이라면 저녁 10시경에 호스펫에 도착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늦은 시각에 낮선 도시에 도착하여 여관을 찾아 들어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도착한 다음의 일은 그때가서 대처하면 되지, 지금부터 걱정한다고 해결이 될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면서 아내가 오히려 여유만만하게 말한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지만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함삐로 가는 길은 중간중간에서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많은 부분의 노면상태가 좋지 않아 버스가 많이 요동을 쳤다. 아내가 요동치는 차안에서 잘 견뎌내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18:20경 꼬뻘(Koppal)이란 도시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지평선에 걸렸다. 옆사람에게 호스펫까지의 거리를 물었더니 1시간 거리라고 한다. 아주 늦지는 않을 것 같아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지금까지 대평원을 질주해왔는데 꼬뻘에 들어서기 직전에 오른 쪽에 아주 작은 돌산이 나타났다. 이 대평원에 기묘하게도 아주 작고 예쁜 돌산이 거기 그렇게 놓여있었다.
저녁 7시 40분에 호스펫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릭샤왈라와 삐끼들이 달라붙는다. 나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버스 스탠드에서 기차역쪽으로 300m정도 걸어서
Hotel Priyadarshini를 바로 찾아갔다.
낮선 곳에 대한 긴장과 마음을 압박했던 근심들을 여관에 들어서면서 다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