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열차 안- 뱅글로르 시발 씨끈드라바드행>
17. <열차 안- 뱅글로르 시발 씨끈드라바드행>
저녁 17:00 정각에 Secunderabad행 열차가 출발하였다.
우리의 좌석은 SL13호 33번과 34번이다. 33번은 LB이고 34번은MB이다.
앞좌석에는 젊은 남자 2인과 중년이 조금 넘은 여인 1인이고, 우리쪽 좌석에는 우리 부부와 이어폰을 끼고 남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젊은 청년이 앉았다.
그 청년은 일찍 UB에 올라가서 자리를 펴고 누워버렸다.
뱅글로르 시내를 벗어나서 차장으로 풍요로운 전원이 나타나기도하고, 한가로운 시골 역사도 보이고, 서쪽 평원으로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아직도 따갑게 차창에 닿았다.
멀리 동북쪽으로는 꾀 높은 산이 달리는 차창 사이로 타나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6시 30분 경 붉게 타는 커다란 해의 몸채가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급하게 내려갔다.
<차창에서 바라본 지평선의 일몰>
사위가 곧 어둠으로 드리워지고 적막을 깨는 기차소리만 요란하게 이국 나그네의 심사를 흔들어 놓았다.
이제는 차창 밖을 내다볼 거리도 사라지고 자연 차내로 시선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앞에 앉은 청년들은 동양인인 우리에 대하여 대한한 호기심을 보였다.
‘어디서 왔느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직업이 무엇이냐?’, ‘자녀가 몇이며 직업이 무엇이냐?’
‘한국의 화폐 단위는 어떻게 되느냐?’ ‘한국의 기후는 어떠하냐?’ 등등 수없는 질문에
영어를 만들어서
대답하느라고 진땀이 났다.
옆 칸의 사람들도 내가 더듬거리면서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얼굴을 디밀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열심히 내 실력을 발휘해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나의 불충분한 의사표현에 그들의 갈증을 덜어주지 못하여 미안하였다.
대답대신 웃음으로 답해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하간 이 열차 칸에서 우리부부의 인기는 괜찮았던 것 같았다.
아내는 ‘우리가 완전히 동물원 원숭이가 되었다.’ 라고 하였지만 ..............
하이데라바드 행 열차 여행은 미지의 세계에 가는 두려움과 긴장의 끈이 조여 있긴 하였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여행이 된 것 같다.
앞자리에 앉은 젊은 사람이 자기 짐을 LB 밑에 있는 고리에 철사 줄로 묶어서 자물쇠로 잠가놓았다.
나도 호스펫에서 최 군으로부터 배운 대로 고리에 철사 줄을 감아 자물쇠로 우리의 짐을 묶어두었다.
저녁 식사시간에는 열차내의 식당에서 주문을 받아 배달하였다.
그리고 수시로 음식과 빵과 음료수 등을 들고 열차 내를 오가면 판매하기도 하고, 기차가 역에 멈추면 그곳의 상인들이 열차에 올라와서 각종 먹거리를 들고 열차 내에 들어와서 판매하였다.
그 때 앞의 젊은이들이 자기들 짐에서 저녁 식사 거리를 풀어서 먹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저녁 식사를 대신하여 나는 미수가루를 물에 타서 먹고 아내는 누룽지를 물에 불려서 먹었다.
앞에서 말없이 우리들를 지켜보던 여인이 로띠와 콩으로 만든 카레 그리고 과일 등을 꺼내어 늘여놓고 우리에게도 먹기를 권하였다.
나는 인도인들이 주는 음식이나 과일 음료수를 받아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런 류의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되어 바나나를 받아서 먹었다.
인도인들은 장거리 기차 여행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를 집에서 준비하여 오는 것 같다.
우리가 호스펫에서 뱅글로르로 오던 날도 저녁에 열차 안 여기저기에서 도시락을 풀어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았는데 하이데라바드 행 열차 내에서도 똑 같은 풍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여인이 아내에게 바나나를 한 송이 꺼내어 주었다.
아내가 영어도 안 되고 인도어도 안 되니까 우리말로 사양을 하였다.
여인은 인도말로 무어라고 빠른 말을 하면서 바나나를 아내의 무릎 위에 밀어 올려놓았다.
짐작하건데 자기는 가지고 가서 먹을 것이 충분하니 무조건 받아서 먹으라는 표현 같았다.
아내가 바나나 송이를 받아들고 고마워서 초콜릿을 몇 개를 꺼내어 여인에게 주었다.
여인은 먹지 않고 Baby들에게 가져다주겠다면서 모두 가방에 넣었다.
아마 얼굴에 든 나이로 보아서 손자 손녀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내와 여인은 바나나와 초콜릿을 교환하고부터는 Body Language로 의사를 소통하는지 친구처럼 웃으면서 서로 가지고 있는 동질의 물건들(에를 들어 반지, 시계 팔찌 등등)을 보이고는 각기 자기들 언어로 좋고 나쁜 것을 인상을 써가면서 평가도 하고 , 손도 잡고 한참을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함께 서로 자기 나라말로 대화를 나누던 인도 여인>
나는 하이데라바드 역 부근에 있는 여관을 잡기 이해서는 씨끈드라바드씨까지 갈 필요없었다. 씨끈드라바드의 바로 직전 역인 Kachaguda에서 내려서 가는 편이 훨씬 가깝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 까체구다에서 내리는 사람을 알아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까체구마에서 내린다고 하였다.
옆 칸의 영감이 까체구마에서 내리니 자기를 따라 내리면 된다고 하였다.
영감을 믿고 9시 30분경에 잠자리에 들었다.
10시가 되니 열차 내에서 주고받던 담소도 끊기고 각 칸마다 소등하면서 모두 잠자리에 들어갔다.
나는 MB에 눕고 아내는 LB에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