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다질링
28. 다질링
다질링(Darjeeling)(1)
2005년 2월 18일(금) 맑음
눈을 뜨니 4시가 조금 못되었다. 차안은 소등된 채 모두가 곤하게 잠자고 있어서 눈만 감고 시간을 보냈다. 옆의 어린아이가 차멀미로 칭얼댄다. 엄마와 함께 차창을 열어놓고 찬바람을 쐬고 있는데 새벽 찬 공기가 내가 누워 있는 곳까지 스며들었다.
6시가 되어서야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 좌측 전면에 높은 산이 보였다. 아! 저기가 히말라야 산맥의 한 자락인가? 길고 높은 산이다. 그러나 우리가 타고 있는 이 기차는 대평원을 달리고 있다.
어제 저녁 7시 40분에 꼴까따 시알다 역을 출발해서 12시간을 달려 오늘 아침 7시 40분에 뉴 잘페구리(New Jalpaiguri)에 도착하였다. 기차에서 내려 다질링을 가는 지프를 탔는데 1인당 90루피씩 지불하였다. 손님이 열 사람이 찰 때까지 1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출발하였다. 앞에 나타나는 산에는 산비탈 여기저기에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차가 산자락으로 들어서서 산굽이를 돌아서 올라가는데 차의 요동이 심하였다.
차도 옆으로 협궤열차길이 나 있다. 이 협궤를 다니는 열차가 토이 트레인(Toy Train)인데 이 토이 트레인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산길을 갈지(之)자 형으로 오르고 오르는데, 경사가 급한 높은 산자락에 많은 마을이 여기저기에 형성되었다. 이렇게 가파르고 높고 험한 산에서 무엇을 하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하는지 궁금하였다. 산길을 오르고 내려가는 차량의 수효도 많다. 도로의 폭이 좁아서 마주 오는 차량과 교대하는 곳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도로의 아래쪽으로 내려 보면 아득한 절벽이다. 길 아래 절벽을 내려다보았더니 현기증이 났다. 그런데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올라가는 맞은편 산자락에도 길이 이리저리 나있고 촌락들이 형성되어 있다.
9시 30분경에 산 중턱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산길을 오르는데 길을 따라 촌락이 계속되곤 한다. 오르고 오르던 길이 12시가 가까워지자 내리막길로 변한다. 산비탈에 많은 인가가 들어있다. 건너다보이는 산에도 역시 많은 인가가 들어있다. 12시10분 경에 드디어 다질링에 도착하였다.
다질링은 해발 2,150m지대라고 한다. 경사가 급하여 마을의 아래쪽과 위쪽의 고도 차이는 상당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다질링이라는 도시의 고도 2,150m라는 것을 시 전체에 똑 같이 적용하는 것은 모순이 될 것 같다. 우리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돌고 돌면서 오르고 또 올라서 Dekelling Hotel을 찾아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여관비가 비싸다. 흥정하여 다락방을 500루피에 들었다.(로비에 있는 가격표를 보니 더블 룸의 최저가격이 1,250루피였다.) 그리고 내일 새벽에 타이거 힐, 굼 등을 Tour하는데 비용 300루피도 주었다.(그것도 450루피라고 하였는데 비싸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 하나를 붙여서 300루피에 갈 수 있도록 흥정하였다.)방을 제일 높은 곳에 정하였는데 밤에 춥지 않을지 걱정이 되지만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라는 카첸중카(Kanchenjunga)가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전망이 제일 좋은 방이다.
사방이 높은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다질링에서도 좀 높은 지대에 위치한 여관이라서 다질링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긴장도 풀리고 멀리 Kanchenjunga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더해 꼴까따에서 사 온 ‘럼’주를 칸첸중가를 한번 쳐다보고 한잔 마시고 또 마시고 하다가 다 마셨다. 술이 취해서 쓸대없는 말을 하여 아내의 화를 돋아놓았다. 아내가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더니만 몇 시간을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는 깜박 잠이 들었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쇼파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쇼파에서 기다리다가 잘 걸........ 침대로 가서 자라고 깨울까 하다가 꺼진 불 다시 살아날까봐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내일은 타이거 힐에 올라가기 위해서 새벽4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냥 자자............
2005년 2월 19일(토) 맑음
4시에 일어났다. 눈곱만 떼는 세수를 하고 타이거 힐에 갈 준비를 하였다. 4시30경에 프런트로 내려갔더니 서양 여인과 운전기사가 이미 나왔었다. 서양여인은 이탈리아 사람인데 체중이 많이 나가는지 걸음걸이가 힘들어보였다. 타이거 힐로 오르는 길에는 지프가 줄을 이었다. 다질링에 있는 지프는 모두 타이거 힐로 오르는 것 같았다. 20여분 가파른 산길을 이리저리 휘돌아 산봉우리에 오르니 동녘 하늘이 부옇게 트이기 시작하였다. 하늘에는 아직 별이 총총하다. 그런데 구름인지 안개인지, 동녘하늘 가장자리가 맑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나 일출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타이거 힐 전망대 앞 주차장에 내리니 새벽날씨가 여간 춥지 않다.
전망대 사용료로 30루피씩 지불하였다. 30루피 티켓을 가진 사람들은 위쪽전망대로 들어가게 하여 짜이를 한잔씩 나누어 주었다. 같이 차를 타고 온 이탈리아 여인에게도 한 잔을 받아서 주었다. 따뜻한 짜이를 마시니까 얼었던 몸이 조금 녹는 것 같다. 동녘하늘에 검붉은 기운이 돌 뿐 다른 곳은 깊이 드리워진 어둠 때문에 산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드디어 흰 눈을 뒤집어쓴 히말레의 셋째 번 산봉우리 Kanchenjunga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치장하여 찬란한 자태를 드러냈다. 모두 환성을 터뜨렸다.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구름한점 없다. 동녘에서 해가 우리가 서 있는 타이거 힐로도 얼굴을 조금씩 내밀기 시작하였다. 히말레의 산신령님이 타이거 힐에서 날씨를 걱정하고 있던 우리에게 일출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이탈리아 여인이 연신“Wonderful! We are lurky!!"을 외쳤다.
아름다운 일출과 함께 태양의 빛을 받아 선명한 자태를 트러낸 설산 카첸중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추위도 잊은 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려고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소녀처럼 들떠서 상기되어 있는 이탈리아 여인과 우리는 사진도 함께 찍고 서로의 집주소를 나누면서 귀국하여 서로 연락하기로 하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짜이 한잔을 더 얻어 마시고 밖을 내다보니 해는 벌써 반공에 치솟아 있고 설산 카첸중가도 저쪽으로 비켜서 있는 듯하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전망대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우리는 이탈리아 여인 마리엘라(Mariella Ferello)와 함께 타이거 힐에서 굼(Ghoom)으로 내려왔다. 굼에는 거대한 미륵불상이 안치된 곳인데 티벹 계통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너무 추위에 몸이 굳어있던 터라 굼을 싱겁게 대충 보고 사람들의 등에 밀려들어갔다가 나왔다. 나의 모든 것은 매냥 그런 식이다.
굼에서 나와 다시 지프를 타고 Batasia Loop의 War Memorial 를 들렀다. 타이거 힐에서 내려온 지프들이 모두 이리로 몰려온 것 같다. War Memorial을 들어가는 입장료(1인당 3루피)를 Mariella가 내주었다. 우리 몫은 우리가 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자기가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타이거 힐의 전망대에서 짜이를 가져다 준 것에 대한 보답인가?
우리는 여관으로 돌아와서 아침식사로 샌드위치와 토스토를 먹었다.
아침식사 후 티벹 난민센터에 가려했더니 아내가 쉬겠다고 하여 그냥 침실에서 카첸중가만 쳐다보면서 아침나절을 보냈다. 아내는 카첸중가에 마음이 빼앗겼는지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가 들어있는 여관은 다질링에서도 좀 높은 지대인데 우리의 방은 가장 꼭대기 층이라서 사방의 전망이 참으로 좋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방안에서 사방의 경계를 관망하여도 지루하지 않았다. 맑은 날씨에 선명한 설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마음을 빼앗았다.
주위도 산듯하고 멀리 가까이 보이는 산들, 그 산속에 숨바꼭질하면서 들어있는 인가(人家)들, 인가를 잇는 갈지자(之)의 도로망들이 신비스럽게 보였다. 어떻게 하여 이렇게 깊고 높은 산속에 도시가 형성되고 산의 갈피갈피에 인가들이 속속들이 박혀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신기하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여관을 나와서 티베트음식점을 찾았다. 초우면과 만두를 시켜먹었다. 음식값이 꼴까따보다 비싼 편이다. 아마 물자를 평야지대에서 가져오는 관계로 물가가 다른 지역보다 비싼가 보다. 물도 꼴까따에서 10루피면 살수 있는 것을 15루피나 주고 사서 마셨다. 음식도 2인분을 100루피 이상은 주어야 먹을 만하였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내외는 Chowraste부근을 산책하다가 상점밀집지역으로 내려와서 돌아다니면서 물건값을 알아보았더니 모든 물건값이 꼴까따보다는 비싸다.
이런 험한 산중에 이만한 도시가 형성되었다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이곳 사람들의 옷차림새나 행동이 꼴까따 사람들 못지않게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또 길거리가 깨끗하고 상점도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3시경에 다시 여관으로 들어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 7시 경에 Devekas Restaurant에 들어가니 Mariella가 먼저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큰 덩치에 애교 넘치는 인사로 우리 내외를 반겨주었다. 월요일(2월 21일) 시킴으로 간다고 하였다. 델리로 들어와서 아그라 카주라호 바라나시를 들러 꼴까따에서 다질링에 왔는데 시킴 강독에서 꼴까따로 여행할 것이라 하였다. 그녀는 우리의 여행 일정에 바라나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라나시 강가에서의 뱃놀이와 화장하는 장면과 좁고 복잡한 구시가지에 대하여 말하다가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으면 그림을 그리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하였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낯섦으로 인하여 긴장의 연속이다. 거기에는 낯선 사람 낯선 거리 낯선 문화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꼭 잡고 여행은 이루어진다. 때론 낯섦에 대한 긴장의 끈이 풀리는 쾌감도 있다. 오늘 저녁에는 긴장의 끈을 풀고 마리엘라는 이탈리아 여인과 함께 아주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 아내도 자기보다 덩치가 배나 되는 이 여인의 친절에 기분이 좋은지 보딩 랭귀즈를 원없이 구사하는 것 같았다. 식당 주인 마담도 합세하여 온갖 손짓몸짓으로 배꼽을 잡는 웃음을 만들었다. 인도에 와서 가장 즐거운 밤 한때를 보냈다.
저녁 늦게 우리 방으로 돌아왔다. 거리는 모두 철시하고 왕래가 끊긴 거리에 한 무리가 북을 치면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낮에도 보이더니 밤에도 계속 북을 치면서 마을을 도는 것이다. 무슨 시위를 하는 것인지, 무슨 축제행사인지, 아니면 종교행사인지 궁금하다.
맑은 공기 아름다운 산이 있는 다질링에서 며칠을 더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