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의 근대 건물

어르신네 2016. 7. 3. 11:44

인천의 근대 건물


오늘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타박타박 인천 이란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인천은 개항과 함께 항구를 통해 많은 외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한가한 어촌이 근대 도시로 변모하면서 성장하였다. 인천은 우리 인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발전시켜나간 도시가 아니라 외압에 의해 개항되면서 외국인들에 의해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인천의 주인이 아니라 주변인들로 전락했고 인천을 발전시켜 나간 주체는 외국인들, 특히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득세한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식민지 정책에 의하여 조선의 물자들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한 전초기지가 된 인천은 많은 물화의 집산지였고, 따라서 일거리가 많아진 인천으로 전국에서 값싼 많은 노동인구가 자연적으로  유입되어 한가했던 어촌이 급격히 도시로 바뀌에 되었던 것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값싼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빈민촌에서 생활하였으면 근대 문명의 중심지에는 외국인들의 몫이었다.

그 외국인들에 의해 건축된 근대건축물이 인천에는 많이 남아있다. 비록 외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근대화한 인천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런 건축물을 통하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민족의 자존심과 아픔을 함께 헤아려 보는 것이 우리들이 바르게 설 자리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전쟁 도시개발과 맞물려 근대기 인천에 지어진 건축물 대다수가 파괴되었고 이런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일부 건축물의 경우에는 비교적 일찍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근대건축물은 문화재 당국이나 행정기관의 시야에서 벗어난 채 근근히 생명을 유지해가고 있다. .... 1990년대 이후 근대건축물의 활동이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성공적인 활용사례가 늘어나면서 인천지역에서도 보수 및 리모델링을 통하여 공공시설로 활동되는 근대건물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890년 건축된 일본18은행 인천지점 건물을 보수하여 '인천근대건축사전시관'으로 활용했던 것을 시작으로 인천지역의 근대 건축물은 대부분 '전시관' 또는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카페, 게스트하우스, 인포메이션 센터 등 근대건축물의 다양한 활용방안이 모색되고 있으며, 그 주체도 공공기관에서 민간으로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출처 :제공받은 자료>

인천에는 일본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근대건축물이 많지만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특히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중국인들이 만들어놓은 기념될 만한 건축물도 몇 개가 있다고 한다. 오늘은 일본인들에 의하여 건축된 근대 건축물로 공공기관의 건물보다는 주로 민간인에 의해 운영되는 건축물을  중심으로 타박타박 인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인천부청(仁川府廳) : 인천광역시 중구청 /등록문화재 제249호

1933년 신축된 건물. 신축인천부청 건물은 건축면적 198평, 연면적 412평의 벽돌조 2층. 외벽재료는 밝은 갈색 스크래치타일 사용. 바닥과 층계및 난간에는 화강암석재 사용. 내부는 50개의 방으로 구성. 스팀난방에 수세식 화장실." <출처 :제공받은 자료>




2층 거실

야마토쿠미(大和組) 사무소 : Cafe pot-R / 등록문화재567

1890년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 근대 일본의 점포주택인 마치야( 町家)의 전형적인 형태인 1층 사무공간, 2~3층은 주거공간. 목조로 뼈대를 세운 뒤 벽체를 황토로 채워넣은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물. 최근까지 개인주택으로 사용되다가 2012년 보수공사를 마치고 2013년 8월 29일 동록문화 제567호로 지정되었다.<출처 :제공받은 자료>



군회조점(郡廻漕店) : 인천 아트플랫폼

1902년 건축. 코오리 킨자부로(군김삼랑)라는 해운업자가 건립한 회조점 사무소. 맞배지붕에 일식기아를 올린 벽돌조 2층 건물로 1900년대 초기의 사무소 건물. 이중창문의 상부 아치장식.<출처 :제공받은 자료>



하야시 상점(林商店) 및 아사히쿠미(朝日組) 사무소 : 한국 근대문학관(현재)

1892년 해안선 끝자락에 지어진 하야시 상점의 사무소 및 창고건물과 1941년에 지어진 아사히쿠미의 창고 건물로 2011년에 리모델링. 현재 기획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1892년에 건축된 건물이고 가장 오른 쪽의 건물은 1941년에 신축된 건물로 창고건물이었다. <출처 :제공받은 자료>




관동 나가야(長屋) 주택 : 관동 갤러리

하나의 지붕을 이고 있는 일본식 연립주택으로 '나가야(長屋)' 또는 '무네와리(棟割 ~) 라고 한다. 중구 관동2가 4-10에 위치한 이 주택은 하나의 건물을 세집이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나가야 주택이다. 천정 보에 붙은 1924년 1월 19일자 경성일보가 확인되어 그 이전에 건축된 건축물로 추정된다.<출처 :제공받은 자료>




경동 마치야(町屋) 건물 : Cafe 싸리제

한옥에 일본식 건물을 접합한 특이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원래의 형태는 1900년대 초 래량 한옥이 보급될 당시 지어진 "ㅁ'자 형식의 한옥 건물이었으나, 싸리재가 번화해지면서 1930년대 도로쪽 건물을 헐어내고 점포를 만들면서 일본식 건축물로 이어붙었다. 한옥 2층에 별도의 건물을 올려 이질감을 주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출처 :제공받은 자료>



배다리 조흥상회 :

중앙시장 인근 배다리 입구에 위치한 조흥상회는 잡화를 팔던 가게로써 해방 이전 개업했던 것으로 여겨지며 1950년 시장의 건축형태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당시에는 건축물 외벽ㅇ 흰색 띠를 두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재 1층은 배다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포메이션 ㅔㄴ터 밑 휴게소'배다리 안내소'가 2층 '생활사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출처 :제공받은 자료>





인천양조주식회사: 스페이스 빔

1923년 최병두 선생이 설립한 인천양조주식회사 건물로 1995년까지 인천의 대표 막걸리 "소성주"를 생산하다가 지금은 부평으로 공장을 옮겨 생산하고 있다. 2000년대 배다리 일대에 쇠뿔고개를 관통하는 산업도로가 건설되면서 이를 지키기 위해 2007년 공공미술 프로잭트 스페이스빔이 입주했고, 배다리 문화거리의 상징물이 되었다.<출처 :제공받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