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慶熙宮)
경희궁(慶熙宮)
2016.11.04 (금) 종일 구름이 많았던 날
오늘은 김환기 미술관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희궁을 둘러보았다.
경희궁은 조선 후기의 이궁(離宮)이었다.
15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하였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경(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권(西闕)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경희궁에 무물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변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화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수난의 역사를 맞이하였다. 1910년 일본인 학교였더 ㄴ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궁궐 건물이 헐려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어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서울특별시에서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 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경희궁지(慶熙宮地) :사적제271호 시대(1617-광해군) 이곳은 조선시대의 5대 궁궐로 꼽히는 경희궁터이다. 경희궁은 광해군 대 창건되어 조선 후기 동안 중요한 궁궐로 자리매김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하였지만 영조 때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동궐이라 부르는ㄷ 이말과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서궐이라고도 하였다. 원래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과 편전인 자정전 외에도임금의 침전으로 융복전과 회상전이라는 두 개의 침전이 있었으며, 흥전당과 장락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각들이 지형에 맞게 이루어져 있었다. 궁에는 정문인 홍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흥원문, 서쪽에는 숭의문, 남쪽에는 개양문, 북쪽에는부덕문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ㅈ선총독부에 소유가 넘어가면서 전각들이 철거하여 이전되었고 궁궐이 축소되었어 궁궐로서의 웅장한 면모를 잃었다. 지금의 경희궁은 몇몇 전작들이 복원되었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이 사라지고 궁궐터도 축소되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출처 : 궁궐 안내서>
숭정전(崇政殿): 경희궁의 정전(正殿). 경희궁 정전 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10)경에 건립되었다.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朝會)를 하거나 궁중 연희,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졌던 곳이다. 특히 경종 정도 현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숭정전 건물을 일본인 사람에 팔았는데 현제는 동국대하교 정각원(正覺院)으로 남아있다. 현 위치의 숭정원은 복원된 것이다.<출처 : 안내서>
숭정원의 어좌
숭정전의 내부도
자정전(資政殿) : 경희궁의 편전(便殿). 1617-20년(광해군9-12) 사이에 건립되었다.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숙종이 승하였을 때는 빈전(殯殿)으로 사용되었으며, 선돵들의 어진(御眞 : 초상화)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일제가 헐어 내었던 것을 서울시에서 발굴하여 확인한 자리에 <서궐도안>에 따라 현재으 건물을 복원하였다. <출처 : 안내서>
서암(瑞巖) : 태경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바위 속의 샘이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 본래는 왕암(王巖)으로 불리었는데 그 임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지역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 1708년(숙종34)에 이름을 서암으로 고치고 숙종이 지접 '瑞巖'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세겨 두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 지지 않는다. <출처 : 안내서>
태령전(泰寧殿) : 영조의 어진(御眞 : 초상화)를 보관하던 곳.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 않았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1744년(영조20)에 이곳을 중수하여 보관하였다. 일제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2000년 <서궐도안>에 따라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출처 : 안내서>
영조의 어진
현재 복원된 경희궁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