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및 기념관

종묘 재례

어르신네 2016. 11. 6. 00:48

종묘 제




2016.11.05 (토) 구름이 많은 하루였다.

오늘은 세계무형문화제의 하나인 '종묘추향대제(宗廟秋享大祭)'가 거행되는 종묘(宗廟)에 갔었다.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주관하는 이 의식은 특정 종가(宗家)의 고유한 것이라기 보다 우리 나라 모든 종가들이 공유하는 제례의식(祭禮儀式)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묘제례의식'은 우리나라 모든 종문(宗門)들의 제례의식을 대표하는 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종묘 졔례 의식은 국가의 지원을 받고 또 조선왕조의 전통을 이어받은 의식이라서 다른 종가의 제례의식보다 규모가 크고, 일반 종가제례의식에서는 볼수 없는 특별한 내용과 절차들이 가미되어 진행하는 것 같았다. '종묘추향대제'는 우리가 일반 종가의 제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음악(樂), 노래(歌), 춤(舞) 등  많은 볼거리를 담은 장엄한 제례의식이라서 더욱 좋았다. 종묘추향대제는 10:00부터 12:00까지는 영녕전 제향을, 13시:00부터 16:00까지는 정전 제향이 거행된다. 우리는 오전 영녕전 제향만을 관람하였다.


종묘 역대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조선이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정하고 나서 바로 짓기 시작하여 1395년 에 경복궁보다 먼저 완공했다. '궁궐의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 쪽인 서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도성 계획 원칙을 따라 경복궁의 왼쪽인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왕조가 이어져 봉인해야 할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몇 차례 건물의 규모가 커져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존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 영녕전의 신실 16칸에는 신위 34위를 모셔두었다. 왕위에서 쫒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모시지 않았다.

종묘제례는 국가의 가장 큰 제사로서 정전에서 1년에 5번, 영녕전에서는 1년에 2번 열렸으며, 왕이 친히 주관했다. 종묘제례에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여하였으며, 음악(樂), 노래(歌), 춤(舞)이 일체화한 종묘 제례악에 맞추어 진행했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있다. 제사 외에도 종묘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배제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축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실현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 안내 입간판>

종묘 입구 -- 외대문


종묘 안내 지도


향대청(香大廳) : 제래에 바칠 향, 축문 폐백(香祝幣)을 보관하고 제례를 주관하는 재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또한 제례에 종사하는 집사들의 집사청(執事廳)도 딸려 있다. 정면 9.5칸의 긴 건물이며 앞에는 행각이 놓여 있어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졌다. 남쪽의 망묘루(望廟樓)는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곳이다. 망묘루 앞쪽에 연못을 만들었고 뒤쪽에 공민왕 신당을 두었다.<출처 : 안내 입간판>


종묘 입구에 있는 연못


제궁(齊宮) 일원 : 제궁은 임금이 세자와 함께 제사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御齋室)또는 어숙실(御肅室)이라고 불린다. 북쪽에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무는 세자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다. 임금과 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서문으로 나와서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출처 : 안내 입간판>


정전(正殿) 일원 : 종묘의 중심부분으로 길게 지은 정전의 앞에는 넓은 원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다. 남쪽 신문으로 혼령이, 동문으로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들이 출입했다. 1395년에 신실 7칸의 규모로 창건 했고 여러 차례 증축을 걸쳐 현재는 19칸에 이르러 매우 긴 목조 건물이 되었다.  몸체인 신실의 양쪽에는 창고와 부속실들을 마련했다. 거친 월대바닥과 그 위로 육중한 지붕이 떠 있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이룬다. 남쪽 담장 아래는 공신당(功臣堂)과 칠사당(七祀堂)을 각각 동쪽와 서쪽에 세웠으며 서문 밖에 제례악을 준비하는 악공청(樂工廳)을 두었다.<출처 : 안내 입간판>


정전

정정에 봉안된 신위

제관들의 행렬

제관들의 행렬


전사청 일원(典祀廳) : 제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이곳은 제사용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ㅁ"자 모양의 건물로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 있다. 정전 동문 옆의 수복방(守僕房)은 종묘를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하던 곳이며, 그 앞에 찬막단과 성생위가 있다. 찬막단은 제사에 바칠 음식을 상에 올리고 검사하는 곳이며, 성생위는 제물인 소, 양, 돼지들을 검사하는 곳이다.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용 우물인 제정(祭井)이 있다.<출처 : 안내 입간판>


영녕전 일원(영녕전) : 정전의 신위를 옮겨 모시기 위해 1421년에 새로 지은 별묘로 건물 이름을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 일원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친밀하게 지어졌다. 정전 일원과 유사하게 2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남서 세 곳에 문을 두었다. 원래 6칸 규모였으나, 여러차례 좌우 협실을 늘려서 현재 신실은 모두 16칸이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동쪽에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악공청(小樂工廳)을 두었다.  <출처 : 안내 입간판>



종묘 제례식

종묘제례는 조선의 국가 사당이며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앙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 종묘 대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납일 등 1년에 5번 지냈으나 현재는 매년 양력 5월 첬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에 봉행되고 있다. 제향 의식뿐 아니라 제례악과 일무 등 유형과 무형의 세계 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종묘제례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종합적인 의례이다.


문덕(文德)을 을 내용으로 한 문무(文舞) -- 종묘제례악


문덕(文德)을 을 내용으로 한 문무(文舞) -- 종묘제례악


무덕(武德)을 을 내용으로 한 무무(武舞) -- 종묘제례악


종묘 제례악(국가무형문화제 제1호)

 종묘제례악은 종묘 제례 의식에 맞추어 기악[樂], 노래[歌], 춤[武] 을 갖추어 연행하는 종합 예술로, 악기 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과 행으로 벌려서서 추는 춤인 일무(佾舞)를 춘다. 그 인원은 조선 세종대에 신악(新樂)으로 제정된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 있는데, 세조10년(1464)에 이르러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으로 개정되어 처음으로 종묘 세례에 연주하면서 종묘제례악으로 채책되었다. 보태평은 조선의 역대 선왕들의 학문과 덕망을 기리는 내용으로 영신례, 신관례, 초현례 때 연주되며, 정대업은 외적에 맞서서 군사상의 공적을 세운 선왕들을 기리는 내용으로 아현례, 종헌례 때 연주된다.

이 곡들을 연주하는 위치와 악기 편성에 따라 악대는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로 나뉘다. 상월대에 배치되어 하늘[天]과 양(陽)을 상징하는 악대를 등가라 하고, 하월대에 배치되어 땅[地]과 음(陰)을 상징하는악대를 헌가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사(人事)를 장징하는 일무 무인(佾舞 舞人)이 자리하여 문덕(文德)과 무공(武功) 을 내용으로 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황제의 격을 갖춘 팔일무의 형태로 연행된다. 종묘제례악은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종묘제례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출처 : '宗廟秋享大祭/ 안내서>


종묘제례 의식의 한 부분


종묘제례 의식의 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