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1)<백담사 ~ 대청봉>
설악산(1)<백담사 ~ 대청봉>
2017.09.02 (토) 맑음
설악산 등산을 위해 05시30분에 집을 나섰다.
인천을 출발한 버스가 백담사 입구의 용대리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이어서 10시 30분경에 셔틀버스로 백담사에 도착하였다.
백담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한용운 선생이 1900년대 초에 백담사에서 우거하시면서 득도하셨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적인 이유로 이절에 은거했던 일로 유명해진 사찰이다.
설악산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백담사 앞에 이르러 계곡의 폭을 넓혀놓아 물의 흐름을 완만하게 해 놓았고, 오랜 세월 갈고닦아 표백을 해 놓은 세석들이 넓은 개울을 고르게 채웠다. 세석 사이로 옥구슬처럼 물이 흘러내리고, 사람들은 그 물이 깨끗이 씻어놓은 세석들로 수없이 많은 탑을 쌓아 놓았다.
백담사에 잠시 들려서 사찰을 돌아보고, 바로 오늘의 목표지점인 소청봉 대피소로 향하여 숲길로 들어섰다. 오늘은 아주 청명한 날씨에 등산하기에 알맞은 기온이었다. 숲 사이로 계곡을 세차게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숲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깊게 들어 마시면서 걷는 발길이 한결 가벼웠다.
12시 30분 경 수렴동대피소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다시 수렴동 대피소에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 심산유곡 구곡담계곡을 따라 난 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비가 내린 지 며칠이 지난 후라 계곡의 물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골짜기를 따라 물과 함께 흘러내린 깨끗한 반석위에는 햇살이 눈부시다. 굽이굽이 반석위로 흐르던 물이 갑자기 폭포를 만나기도 하고 크고 작은 바위들을 감싸 돌던 급류가 하얀 조약돌과 모래 위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조용히 아래로 내려간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바쁘게 정신없이 생활하다가 조용히 한숨을 돌리는 때를 만나는 것처럼... 울창한 삼림 저 위에는 기암기봉들이 솜털처럼 피어오른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 사이로 우뚝우뚝 솟아 있다.
계곡에는 큰비에 휩쓸려 내려오던 크고 작은 등걸들이 큰 바위나 물길을 막는 장애물에 걸려 있는 모습들도 간간히 보였는데 그 나름대로 하나의 풍치를 느끼게 하였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크고 작은 바위, 불끈불끈 가는 길을 막고 나타나는 암석들과 폭포들을 보면서 오후 2시 30분경에 쌍용폭포에 도착하였다.
폭포는 여러 곳이 보였는데 폭포의 명칭이 표시된 곳은 쌍용폭포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렴동대피소 위에서 만난 작은 폭포가 아담하고 운치가 있다. 그 폭포가 만수폭포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리고 산행안내지도로 추정하면 쌍용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폭포가 관음폭포라고 생각되었다. 쌍용폭포에서 봉정암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폭포도 꽤 운치가 있다.
쌍용폭포에서 20여분 더 올라가면 봉정암으로 오르는 고개까지 막바지 가파른 길을 만난다. 봉정암에 오르기 위해 만들어진 고행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겹게 올라야 했다. 고개에 오르니 3시 20분이 되었다. 고개에서 200m 정도의 거리에 봉정암이 있다.
우리는 봉정암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경내를 돌아보았다. 기암기석 아래 자리한 봉정암은 自然과 調和를 이룬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찰은 조용하고 엄숙 경건해야 한다. 사찰을 들어서면 누구든 경건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불도들이 스님을 따라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불도들의 불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여 주변경관을 둘러보았다. 사리탑 위쪽에서는 용화장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산세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넋을 놓았다. 정말로 장엄하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가 자랑스럽다. 오래 머물러 지켜볼 시간이 없어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리는 봉정암에서 소청봉대피소로 올라가서 배낭을 맡겨 놓고 대청봉에 올랐다.
오늘은 오후 6시가 가까운 시각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대청봉 표지석 주위에 많이 몰려있지 않았다. 2015년 10월 3일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대청봉으로 올라와서 오색으로 내려갔었다. 그 때 설악산을 오르면서 점점 노쇠해져가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서 대청봉에 다시 오를 수 있을지, 그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서 77세가 되어 다시 대청봉을 밟을 수 있는 이 기쁨을 누리게 되다니우리의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다시 대청봉을 밟고 싶다. 과욕일까... 전에는 일행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산을 오르고 내리느라고 산의 경개(景槪)를 지나치기 일쑤였다. 이제 다시 대청봉을 밟을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내 눈 앞에 보이는 저 경개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저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돌덩이 하나하나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대청봉에서 화채능선, 공룡능선 용화장성들,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동해바다, 금강산이 있는 북쪽, 인제방향의 서쪽으로벋어나간 아름다운 산세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대청봉에서 주위를 돌아보는 기쁨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렵다. 잠시나마 조용히 주위를 관망하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쪽 화천 땜이 있는 곳에 운해가 드리워졌다. 일대 장관을 이뤘다. 화천 땜이 있는 쪽 외에는 사방이 탁 트였다. 멀리 금강산이 눈에 확연히 잡혔다. 동해의 물결이 손에 닿을 듯하였다. 속초 시내의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대청봉에 오르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승천하는 용을 닮은 쌍룡폭포
쌍룡폭포는 보통 쌍폭(雙幅)이라고 약칭하며,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서 왼쪽 목포(좌측, 높이 약22m) 는 봉정암 방향의 국곡담계곡의 상류에서 흘러 내리며, 오른 쪽 폭포(우폭, 높이 약 46m)는 청봉골에서 흘러 내린다. 전망대에서 정면으로 포이는 것이 폭포는 대장부처럼 힘차게 흘런려 南瀑이라고도 하고 왼쪽의 폭포는 여인의 치맛자락에 떨어지는 듯하다고 하여 女瀑이라고도 한다. 그 아래에 형성된 폭포는 남폭과 여폭의 자식이라 하여 용자 폭포(龍子瀑布)라고 부르며, 그 아래폭포는 손자라 하여 용손 폭포(龍孫瀑布)라고 부른다.<출처 : 안내판>
봉정암
“봉정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인 백담사(百潭寺)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 성지인 5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중의 하나로 불교신도들의 순례지로도 유명하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가지고 귀국하여, 이곳에서 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하였다. <중략>
법당 옆 바위 위에는 보물 제1832호로 지정된 봉정암오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자장이 사리를 봉안하였던 때보다 훨씬 후대의 양식을 띠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기단부를 따로 조성하지 않고 자연의 암반 위에 그냥 탑신을 안치하였으며, 탑신 자체는 잘 정제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5층 석탑이다.“<출처 ;한국민족 문화대백과사전>
사진 - 중앙의 암봉군이 용하장성임(소청봉에서 내려다보면서 촬영)
설악산 대청봉
대청봉에서 바라본 운해(화천 댐 위가 아닐까 하고 축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