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맸다<21>--테헤란 마지막 날--
<테헤란 마지막 날>
2005년 10월 23일(일) 맑음
날씨가 그늘에서는 선선하지만 햇볕은 따갑다.
10시 조금 지나서 체크아웃을 한 다음 짐을 여관에 맡겨놓고 남부 터미널에 가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에스파한 행 버스표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테헤란 북쪽도시를 구경하고 싶어서 메트로를 타고 이맘 호메이니 역에서 다섯 정거장을 더 올라갔다.
테헤란 북쪽은 산으로 붙었는데 남쪽 테헤란보다 훨씬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Hafre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한 정거장을 더 가서 Mattafah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와서 Mothari ave를 따라서 가다가 Mirza-e St로 내려와서 Sarkis 성당 쪽으로 갔다.
성당 못 미쳐서 어떤 빌딩 벽 전체에다가 대형 성조기에 폭탄을 매 달아놓은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그림 한 가운데에다가 'Down with U.S.A'라는 미국을 저주하는 글을 써놓았다. 이란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을 잘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일본부부가 소개한 한국 및 일본 제품만 취급하는 슈퍼마켓을 찾아보았더니 규모가 너무 작고 한가하였다. 값이 엄청나게 비쌌다. 마땅히 살 것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는데 오다가 생각하니 라면이라도 몇 개 사가지고 올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였다. Ferdosi St를 따라 이맘 호메이니 광장까지 걸어서 왔더니 오후 3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박물관에 가면 두어 시간은 구경할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찾아갔더니 4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였다.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박물관 입장료 60,000R을 내고 들어가서 그 많은 것을 다 볼 수도 없을뿐더러 수박겉핥기가 될 것 같아 아예 관람을 포기하고 말았다.
오늘은 6시간이 넘게 도보 행진을 하면서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였다. 나는 이란 사람들의 라마단 일정에 철저히 걸려 든 느낌이었다. 어떤 식료품점에 들어가서 콜라를 사서 병을 따고 마시려 하다가 제지를 당하였었다. 가게 주인이 여기서 내가 콜라 마시는 것을 경찰이 발견하면 나는 물론 주인인 자기도 잡혀간다면서 못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차도를 가로 질러 건너기가 겁이 났다. 차량의 왕래가 많은 길에서는 눈치를 잘 보아서 길을 건너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고 나기 딱 알맞다. 테헤란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질주를 피하면서 건널목을 건너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여관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한글이 지원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4시경 여관 로비에 앉아서 다섯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배낭여행은 기다림의 시간을 잘 활용을 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다른 소일거리를 계획하고 찾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식당을 찾아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여관으로 돌아와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앉아있기가 너무 지루하여 8시 경에 배낭을 찾아 메고 터미널을 향하여 여관을 나섰다. 상점들은 철시하여 길거리가 한산하고 적막감마저 들었다. 이란은 오후 해질 무렵이 되면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것 같다.
이란 사람들은 모두 가정적인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라서 그런지 저녁때만 되면 거리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우리나라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란 장거리 버스도 터키 못지않게 좋다.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도 좋고 운전사나 조수의 매너도 좋고 차량도 괜찮은 것 같다.
테헤란에서 에스파한 행 밤 버스를 타면 이튿날 새벽 4시에 도착하게 되는데, 에스파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5시에 웨이팅 룸의 문을 열 때까지 룸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6시가 되어야 시내버스가 다닌다고 하니 걱정이 많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