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스크랩]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맸다<16>--타브리즈를 떠나던 날--

어르신네 2006. 12. 18. 11:16

   <타브리즈를 떠나던 날>

    2005년 10월 18일(화) 맑음

카프리 영감을 못 만나고 가는 게 좀 서운하지만 그 영감을 만나기 위해서 다음 여행지로의 계획을 미룰 수가 없다. 자기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여, 혹시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주소를 적어주었으니 언제인가 연락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다음 행선지로 떠나야겠다.


어저께 광풍이 몰아치더니 오늘은 조용하긴 한데, 메마른 공기에는 어제 광풍이 일으켰던 미세한 먼지가 공중에 꽉 차있는 것 같다.

아침 8시 조금 지나서 Check Out하고 버스 정거장에 갔더니 Rasht로 가는 차는 오후 9시에 있다고 하였다. Darya 주인 영감은 오전 8시부터 매 시간마다 Rasht로 가는 차가 한 대씩 있다고 하여 나왔는데 허탕을 쳤다. 하루에 수차례 부정기적으로 라쉬트까지 운행하는 미니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오늘은 할 수없이 타브리즈에서 낮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배낭을 버스 사무실에 맡기고 다시 시내로 들어갔다. 우선 외곽 지대에 있는 Ei Gholi 등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Ei Gholi로 가는 버스는 101번이라 하여 버스 스톱에서 찾아보았으나 101번 버스 표시판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영감의 도움을 받아 10여분을 걸어서 101번 버스 타는 곳을 찾았다. 버스표 250R짜리 티켓을 주면서 이것을 내고 차를  타라고 하고는 갔다.

오늘 하루 여러 번 이런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아침에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한 젊은이에게 Rasht행 버스회사 사무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가던 길을 뒤로하고 나를 데리고 가면서 이사람 저 사람한테 사무실이 있는 곳을 물어서 찾아 주었던 것이다.

이란에는 모든 간판이나 안내문을 대부분 아랍글자로만 써 놓아서(영어로 써 놓은 안내판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랍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버스 터미널에서 차표 구하기가 무척 힘들다. 여하튼 버스 터미널에서는 젊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또 시내에서는 어떤 영감의 도움을 받아 쉽게 목적지를 찾아 갈 수 있었다.

이란에서는 웃음을 보내면 웃음을 되받을 수 있었다.


Ei-Gholi는 타브리즈 사람들의 휴식을 위한 공원이다. 타브리즈 시내 남쪽 7km지점에 있는 54675m₂의 넓이를 가진 이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라고 안내문에 소개되었다.


호수 가에서 이란 여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예술대학 미술학부 학생들인데 사생을 하러 나왔다고 하면서 아주 발랄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들의 영어구사력이 짧아서 겨우 인사정도말만 나누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멈추고 여학생들과 함께 있는 나를 주목하는 것이었다. 이란에서는 외국남자들이 이란 여인들과 가까이 하는 것을 경계한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호수와 동편 언덕의 광활한 지역을 수목원과 꽃동산 등을 조성하여 아름답고 쾌적한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서 훌륭한 공원이다. 언덕의 공원길을 돌아서 다시 호수가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호수가 벤치에 앉아 있으니, 내 앞을 지나가던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말을 한마디씩 붙이고 갔다. 10학년 학생 두 녀석이 내가 앉은 의자 옆에 와서 앉더니 내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보자고 하더니 자기 것과 바꾸자고 하였다. 아니 자기 마음대로 바꿔 가지고 갔다.

1시 30분 경에 Ei Gholi에서 다시 도시 중심지로 들어왔다. 시청부근의 문예박물관을 관람하고 싶어 시청 앞에서 내렸다. 시청 수위실에 갔더니 어저께 근무하던 사람들은 없고 다른 사람들이었다. 시청 안 정원을 다시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니까 들어가라고 하는데 공사장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사진만 찍고 나오겠다고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아 들어가서 분수대 부근의 경관 사진만 몇 장 찍고 나왔다.


시청 수위실 사람들에게 예술 박물관의 위치를 물었더니 그 안에 있던 직원 한 사람이 일어서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미안해서 위치만 알려주기만 하면 찾아가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시청직원을 따라 예술 박물관을 찾았다. 혹시 수고비를 주어야 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서 10,000R을 주었더니 손을 내저으면서 거절하였다. 하여간 고마웠다. 그런데 예술박물관(Shahriar Literary Museum)과 예술 대학(Tabriz Islamic Art University)이 붙어 있었다.


입장료 3,000R를 지불하고 예술학교 안으로 들어가는데 한 무더기의 학생들 가운데서 나이 좀 든 사람이 교수라면서 내게로 다가와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예술박물관 구경을 왔다.”고 하니까 박물관이 아닌 곳으로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하는데 완전히 엉터리 영어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에 미술교수라는 사람은 영어는 모르고 불란서말은 할 줄 안다면서 자꾸 나에게 불란서어로 말을 걸어왔다.


이 학교의 건물들은 150~200년 정도 된 것이라면서 건물양식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서 그냥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미술과 교수라는 분은 이 학교의 각종 도안의 색깔들은 자연 염료를 만들어 사용한 것인데 그 도안들은 자기의 작품이라면서 그 정교함과 예술성을 은근히 자랑하였다.


예술 박물관 건물로 가려고 하는데, 미술과 교수가 나를 이끌면서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자기 방 앞 유리창의 각종문양도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그림의 선과 색상  그리고 문양의 조화 등에 대하여 몸짓을 곁들여 못 알아들을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책상을 뒤지더니 학교의 건물을 찍은 사진엽서와 각종 도안 엽서를 꺼내어 보이더니 사진엽서 한 세트와 함께 나에게 주면서 ‘인익스펜시브’라면서 15,000R만 내라고 하였다. 의외의 일이라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대학교수의 채면을 생각해서 아주 고맙다는 시늉을 하면서 기꺼이 15,000R를 내어 주고 박물관 구경을 하려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시계가 4시 30분을 가리켰다. 예술박물관은 문을 닫았다고 하여 관람하지 못하고 말았다.  오늘은 점심도 못 먹고 많이 걸었던 터라, 몹시 배가 고팠다. 카페나 음식점은 라마단 기간이기 때문에 낮에 영업하는 곳이 없으니 빵을 사가지고 공원을 찾아가서 벤치에 앉아서 먹는 길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빵과 음료수를 사가지고, 낮에 봐 두었던 공원을 찾아갔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 앉을 벤치가 없었다. 길가 시멘트 턱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공원에 들어온 영감들도 한결같이 나처럼 빵을 넣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빵을 먹으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영감들이 하나같이 빵을 먹지 않고 옆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배는 고픈데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빵은 먹지도 못하고, 주스만 홀짝홀짝 마셨다.


6시가 조금 지나서 남부 버스 터미널로 갔다. 저녁을 먹고 9시 반 Rasht행 버스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8시 40분경에 라쉬트행 버스를 탔다. 밤중에 이동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경치를 구경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l.Gholi공원에서 사생을 하는 타브지르 예술대학생들

 

타브리즈 예술대학 여학생들과


타브리즈 시청 수위실 사람들

 

타브리즈 예술대학 교수와 함께

 

미술과 교수와 함께



타브리즈 예술대학교정



미술교수 연구실

미술 교수 연수실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예술성이 높은 것이라면서 사진으로 찍으라고 해서찍어보았음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일영 원글보기
메모 :

 

2005년 10월 18일(화) 맑음

카프리 영감을 못 만나고 가는 게 좀 서운하지만 그 영감을 만나기 위해서 다음 여행지로의 계획을 미룰 수가 없다.

어저께 광풍이 몰아치더니 오늘은 조용하긴 한데 메마른 대기에는 어제 광풍이 일으켰던 미세한 먼지가 떠있어 시야가 맑지 못하고 부유하는 먼지 때문에 숨쉬기조차 거북하였다.

아침 8시에 체크아웃하고 버스 정거장에 갔더니, 오후 9시에 Rasht로 가는 차가 있다고 하였다. Darya 주인 영감은 오전 8시부터 매 시간마다 Rasht로 가는 차가 한 대씩 있다고 하여 나왔는데 허탕을 쳤다. 하루에 수차례 부정기적으로 라쉬트까지 운행하는 미니버스가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배낭을 버스 사무실에 맡기고 다시 시내로 들어갔다. 우선 외곽 지대에 있는 Ei Gholi 등을 돌아보면서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Ei Gholi로 가는 버스는 101번이라 하여 버스 스톱에서 찾아보았으나 101번 버스표시판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영감의 도움을 받아 10여분을 걸어서 101번 버스 타는 곳을 찾았다. 버스표 250R짜리 티켓을 주면서 이것을 내고 차를 타라고 하고는 갔다.

오늘 하루 여러 번 이런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아침에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한 젊은이에게 Rasht행 버스회사 사무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가던 길을 뒤로하고 나를 데리고 가면서 이사람 저 사람한테 사무실이 있는 곳을 물어서 찾아 주었던 것이다.

이란에는 모든 간판이나 안내문을 대부분 아랍글자로만 써 놓아서(영어로 써 놓은 안내판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랍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버스 터미널에서 차표 구하기가 무척 힘들다. 여하튼 버스 터미널에서는 젊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또 시내에서는 어떤 영감의 도움을 받아 쉽게 목적지를 찾아 갈 수 있었다.

이란에서는 웃음을 보내면 웃음을 되받을 수 있었다.

 

Ei-Gholi는 타브리즈 사람들의 휴식을 위한 공원이다. 타브리즈 시내 남쪽 7km지점에 있는 54675m₂의 넓이를 가진 이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라고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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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학 미술부 학생들

호숫가에서 이란 여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예술대학 미술학부 학생들인데 사생을 하러 나왔다고 하면서 아주 발랄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들의 영어구사력이 짧아서 겨우 인사말만 나누었다.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보려고 하니 모두 감춰버렸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멈추고 여학생들과 함께 있는 나를 주목하는 것이었다. 이란에서는 외국남자들이 이란 여인들과 가까이 하는 것을 경계한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호수와 동편 언덕의 광활한 지역을 수목원과 꽃동산 등을 조성하여 아름답고 쾌적한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서 훌륭한 공원이다. 언덕의 공원길을 돌아서 다시 호수가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호수가 벤치에 앉아 있으니, 내 앞을 지나가던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말을 한마디씩 붙이고 갔다. 10학년 학생 두 녀석이 내가 앉은 의자에 옆에 와서 앉더니 내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보자고 하더니 자기 것과 바꾸자고 하였다. 아니 자기 마음대로 바꿔 가지고 갔다.

Ei Gholi에서 다시 도시 중심지로 들어오니 1시 30분이었다. 시청부근의 문예박물관을 관람하고 싶어 시청 앞에서 내렸다.

시청 수위실 사람들에게 예술 박물관의 위치를 물었더니 그 안에 있던 직원 한 사람이 앞장을 서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미안해서 위치만 알려주기만 하면 찾아가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시청직원을 따라 예술 박물관을 쉽게 찾았다. 혹시 수고비를 주어야 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서 10,000R을 주었더니 손을 내저으면서 거절하였다. 하여간 고마웠다. 그런데 예술박물관(Shahriar Literary Museum)과 예술 대학(Tabriz Islamic Art University)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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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브리즈 예술대학                                                  예술대학 교수와 함께

입장료 3,000R를 지불하고 예술학교 안으로 들어가는데 한 무더기의 학생들 가운데서 나이 좀 든 사람이 교수라면서 내게로 다가와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예술박물관 구경을 왔다.”고 하니까 박물관이 아닌 곳으로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하는데 완전히 엉터리 영어였다. 그리고 그 중에 미술교수라는 사람은 영어는 모르고 불란서 말은 할 줄 안다면서 자꾸 나에게 불란서어로 말을 걸어왔다.

이 학교의 건물들은 150~200년 정도 된 것이라면서 건물양식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서 그냥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미술과 교수라는 분은 이 학교의 각종 도안의 색깔들은 자연 염료를 만들어 사용한 것인데 그 도안들은 자기의 작품이라면서 그 정교함과 예술성을 은근히 자랑하였다.

 

예술 박물관 건물로 가려고 하는데, 미술과 교수가 나를 이끌면서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연구실 유리창의 각종문양도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선과 색상, 문양의 조화 등에 대하여 몸짓을 곁들여 못 알아들을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사진엽서 한 세트와 함께 나에게 주면서 ‘익스펜시브’라면서 15,000R만 내라고 하였다. 의외의 일이라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대학교수의 채면을 생각해서 아주 고맙다는 시늉을 하면서 기꺼이 15,000R를 내어 주었다.

 

시계가 4시 30분을 가리켰다. 예술박물관은 문을 닫았다고 하여 관람하지 못하고 말았다. 오늘은 점심도 못 먹고 많이 걸었던 터라, 몹시 배가 고팠다. 카페나 음식점은 라마단 기간이기 때문에 낮에 영업하는 곳이 없으니 빵을 사가지고 공원을 찾아가서 벤치에 앉아서 먹는 길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빵과 음료수를 사가지고, 낮에 봐 두었던 공원을 찾아갔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 앉을 벤치가 없었다. 길가 시멘트 턱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공원에 들어온 영감들도 한결같이 나처럼 빵을 넣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빵을 먹으려고 주위를 살펴빵을 가지고 들어온 경감들이 빵은 먹지 않고 옆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배는 고픈데 주위의 눈치를 살피느라 빵은 먹지도 못하고, 주스만 홀짝홀짝 마셨다.

 

6시가 조금 지나서 남부 버스 터미널로 갔다. 저녁을 먹고 9시 반 Rasht행 버스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8시 40분경에 라쉬트행 버스를 탔다.

 

 

타브리즈의 Blue Mos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