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짜나부리(Kanchanaburi )
2009년 4월 23일 (목) 맑음
삼센에서 516번 버스를 타고 방콕 남부 터미널에서 내렸다. 남부터미날에서 깐짜나부리(Kanchanaburi) 행 버스를 찾아서 갈아탔다. 방콕에서 출발하여 깐짜나부리까지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깐짜나부리에 도착하니 지열이 달아올라 온 몸에 열기를 불어다 주었다.
깐짜나부리의 거리
졸리 프로그 백패커스(Jolly Frog Backpachers)에 투숙하였다.
졸리 프로그 백패커스 여관은 콰이 강변에 접해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방값도 싸고 음식도 맛있고 싸다.
내일 깐짜나부리 외곽지역에 있는 에라완 폭포(Erawan Waterfalls)와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s)' 투어도 신청(700바트)하였다.
깐짜나부리 터미널에서 삼러(40바트)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맛사지나 음식점 간판에 한글이 커다랗게 병기된 것이 많이 보였다. 그만큼 이곳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이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투숙한 여관에 들어와서도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니 한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서울에서 왔다는 40대 중반의 건장한 장정은 이 여관이 가격도 저렴하고 강변에 접하여 풍치도 아름답고 좋아서 자주 온다고 하였다.
점심을 먹고 오후 늦게 걸어서 콰이 강 다리가 있는 곳에 갔다.
여관에서 출발하여 40여분 걸은 것 같다. 콰이 강 다리 못 미쳐 철도 건설 중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위령탑이 있고 세계 제2차 대전 박물관이 있다.
콰이 강의 다리는 강을 가로지르는 단선 철도인데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 철길을 걸어서 오가고 있었다.
콰이 강의 다리
이 철도의 교량은 영화 ‘콰이 강의 다리’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서부 아시아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보급로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태국의 농 뿔라둑(Nong Pladuk)과 미얀마의 탄뷰자얏(Thanbyuzayat)까지 총 415km를 연결하기 위해서 철도를 건설하였다. 이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연합군 포로들을 투입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철도를 죽음의 철도라고도 한다. '콰이 강의 다리'는 이 죽음의 철도의 한 구간이다.
이 곳은 영화 ‘콰이 강의 다리’ 덕분에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오늘날에는 깐짜나부리의 대표적인 볼거리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철도를 건설하다가 공사현장에서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강은 말없이 흘러만 간다. 고통의 역사는 지나갔고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철로를 평화롭게 걸어서 오간다. 평화의 이면에는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서 콰이 강의 철로를 건너갔다가 돌아와 보았다. 다리 밑 맑은 강물의 유속이 빠르고 수량도 엄청나다. 많은 사람들이 강을 오가거나 다리 입구에서 다리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 속에서 1시간 이상 걸었더니 목이 말라 또 콜라를 사서 마셨다. 탄산음료는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이 금새 무너졌다. 여관에 돌아와 강변 나무그늘 안락의자에 앉았다가 혼곤히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강 너머로 해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강 너머 일몰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 여관에 오기를 잘 하였다.
깐짜나부리의 일몰
2009년 4월 24일 (금) 맑음
오늘은 ‘에라완 폭포(Erawan Waterfalls)’와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s)’ 투어에 참가하였다. 나와 서양사람 5명이었다.
서양사람 영감 내외는 코끼리 투어에 참가하고 나머지 네 명은 에라완 폭포로 갔다.
영감내외와는 오전 중에는 헤어졌다가 오후 ‘죽음의 철도’ 투어에는 다시 함께 하였다.
‘에리완 폭포’ 투어에는 나를 비롯하여 영국 청년과 캐나다 여인 스페인 여인이 참가했다. 가이드가 남자처럼 생겨서 게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여간 친절하고 영어도 잘 구사하였다.
미니버스가 깐짜나부리의 여관을 출발하여 한참동안 평원을 달리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 옆구리를 끼고 올라가더니 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강을 건너고 오르막길을 한참 올랐다. 그야말로 과속으로 1시간 정도 달려서 에라완 폭포 입구에 도착하였다.
가이드는 에라완 국립공원 사무실 건물에 있는 공원 안내도 앞에 우리를 모아놓고 에리완 폭포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공원을 다녀오는 요령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는 폭포가 레벨 1에서 레벨 7까지 있는데 어디서나 수영을 할 수 있다면서 사진도 찍고 마음껏 즐기면서 놀다가 1시30분까지 지정한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에라완 공원에 들어설 때 큰 강을 보았기 때문에 폭포가 그 강 줄기 가운데에 있는 것인 줄로 생각했다. 그래서 폭포의 규모가 크고 수량이 상당할 것으로 상상하였다. 그러나 폭포를 향하여 한참 올라가다가 물소리가 나는 개울에 당도해 보니 수량이 적어서 폭포가 있다고 해도 규모가 보잘 것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곳이 어떻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까 의아했다.
에라완 국립공원 현판 앞에서
그런데 레벨(Level)1에 당도하니, 탕 안에서 혹은 탕을 넘어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탕 속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사람과 물고기가 함께 물놀이를 한다.
에라완 폭포의 하나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수량은 많지 않지만 넓은 바위를 타고 고르게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바위 전체를 고르게 타고 흘러내리는 모양이 장관이다.
추측컨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석회수가 흘러내리다가 웅덩이에 고여서 물에 함유된 석회가 가라앉아 탕을 만들고, 탕 속에 가라앉았던 석회가 탕을 넘쳐 흘러내리면서 둥글고 예쁜 둔덕과 바위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고르게 흐르는 것이리라. 레벨1에서 7까지 모두 그런 형태를 이루고 있다.
에라완 폭포
에라완 폭포의 물은 고운 옥색 빛을 발하며, 바위 위로 흘러내린다.
에리완 폭포수는 우거진 숲속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넓은 항아리로 흘러들면서 항아리 밖으로 물을 쏟아내는 형상이다.
레벨 1에서 7까지의 거리는 산길이라서 상당히 멀다. 그러나 만나는 폭포마다 모양이 독특하여 힘들어도 모두 보지 않을 수 없어서 끝까지 다 올라가 보았다.
레벨 7의 폭포는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레벨 7에서는 울창한 숲이 빚어내는 주변 경관과 여기저기 탕 속에 고인 옥색 물빛과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한데 어울려 그야말로 절경이다.
관광객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의 유혹에 너도 나도 옥색 탕 속으로 빨려들었다. 탕 속에 있는 남녀의 모습은 나무꾼과 선녀의 만남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선녀와 나뭇군 이야기가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폭포를 내려오는 길에 원숭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공원 입구에는 야생동물들에게 사람들이 가지고 온 먹이를 주지 않도록 당부한 글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 원숭이들은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얻어먹던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원숭이가 사람에게 먹이를 얻으려고 사람부근을 서성인다.
끄라비에 갔을 때 보았던 태국사람들의 놀이 문화의 일면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연인들도 많이 보였지만 내 눈에는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모습이 많았다. 부모와 자녀가 혹은 3대가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즐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에라완 공원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승합차를 타고 기차 시간에 맞춰 ‘죽음의 철도’가 있는 Tham Kra Sae 역으로 갔다. 다른 팀들도 많이 와 있었다. ‘죽음의 철도’는 지금은 시골 간이역을 끼고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평범한 교통로이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 철도를 만들기 위해 전쟁 포로 6만 명을 포함하여 강제로 투입한 인부가 20만여 명이었으며 20만명 중에서 11만 6천명이 이 철동 공사장에서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철도를 "죽음의 철도"라고 일컫게 되었다는 것이다
Tham Kra Sae 역
죽음의 철도
Tham Kra Sae 역에 있는 철로의 생산년도가 1940년으로 표시된 것이 보였다. 모두 그것이 신기한 양 사진기에 담기에 분주하였다.
Tham Kra Sae 역 옆에 동굴이 있는데 동굴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강이 흐르고 강을 낀 산의 절벽을 만난다. 이 산의 절벽을 깎아 내리고 강 위로 버팀목을 세워 철로를 놓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위락시설들이 산자락과 강변을 끼고 무수히 들어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세삼 느끼게 된다.
Tham Cra Sea 역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 철로의 기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를 향하였다. 강변 산자락 절벽을 지날 때 너도나도 깎아지른 절벽을 돌아가는 기차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여염이 없다.
콰이 강의 다리가 오늘의 마지막 코스다. 나는 어저께 왔다가 갔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은 없었지만 다시 눈여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콰이 강이 떠올리는 영상들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강제 징집, 강제노동, 전쟁과 건설, 수많은 인원들의 희생 등 인명을 파리목숨 여기듯 살상이 자행되는 전장, 대혼란 속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던 백성들......
전쟁은 인간이 만든 최상의 죄악이다.
역사의 비극의 현장이 지금은 또 치열한 삶의 터전으로 바뀌었다. 이 역사적 사건 현장을 구경온 관광객을 상대로 수많은 가게와 포장마차와 행상인들이 열심히 호객하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우리는 강위의 철로를 따라서 맞은 편 강 너머까지 갔다가 왔다.
제2차세계대전 박물관
깐짜나부리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공기가 맑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또 졸리 프라그 여관도 값이 저렴하고 음식도 괜찮다. 무엇보다도 여관 앞 잔디밭과 강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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