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등산기] 강화 별립산

어르신네 2010. 5. 26. 14:21

강화 별립산 


 부처님 오신 날 구건서 교장하고 강화 별립산 등반을 하였다. 별립산은 강화 본섬의 서북단에 위치하여 힘차게 우뚝 솟아있다.  


 별립산에 가기 위하여 인천 동암역에서 700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강화 서문에서 내려 창후리행 버스로 갈아탔다. 창후리 선착장 조금 못 미쳐 우측 포장된 길을 따라 유스호스텔로 들어갔다. 호스텔 건물 왼쪽 능선에서 별립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림이 울창한 숲길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 창후리 중간마을에서 내려 천지정사 남골당 뒤로 오르는 길이 있다고 하여 그리로 오르려고 했다. 그런데 길이 험하고 가팔라서 등산하기가 힘든 곳이라는 마을 사람의 말을 듣고 창후리 선착장으로 걸어가다가 유스호스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유스호스텔에는 단체 손님을 받아 행사를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춰놓은 것이 보였다. 유스호스텔에서 별립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일부는 호스텔에서 행사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숲속을 해쳐 올라갔다. 호스텔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것 같으면서도 가파르다.


 유스호스텔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을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능선을 오르는 숲길은 참나무 숲이고, 참나무 숲을 지나면 주로 소나무 숲이다. 두 번째 능선에서는 약간의 내리막길도 만나게 된다. 마지막 정상으로 오르는 곳은 가파른 바윗길이 대부분이다. 유스호스텔에서 오르는 길은 전반적으로 산세가 부드러워 험한 코스는 별로 없다. 좀 가파른 곳이나 바윗길에는 밧줄을 설치해 놓아서 오르고 내리는 데 편리하였다.


  오월의 숲 속은 풋풋한 향기가 가득 뿜어져 나왔다. 아기 손처럼 부드럽고 고운 나뭇잎과 풀잎이 찌든 때로 얼룩진 내 마음을 부드럽게 닦아주는 것 같았다. 땀을 흘리면서도 오르는 길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월의 숲은 사람들에게 기(氣)를 넣어주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가 정상이 가까운 곳에서 잠시 쉬기 위하여 전망이 트인 곳을 찾아 앉았다. 눈 아래 펼쳐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별립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격이다. 바둑판같은 망월 벌판이 시선에 바로 와서 꽂혔다. 어떻게 저렇게 정교할 수가 있을까? 내 산란했던 정신이 번쩍 깨어나는 것 같았다. 바둑판같은 들판에 담긴 물빛이, 어쩜, 저리 청량해 보일까? 조금 있다가 모내기가 시작되면 그 자리에 파란 생명을 불러들이겠지! 새로운 생명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깨끗하게 몸단장한 망월벌판이 오늘은 유난히 넓고 맑고 단정했다.


 망월 벌판을 끼고 있는 바다는 해무에 가려졌고, 해무 위로 머리를 봉긋 내민 석모도의 해명산과 상봉산 그리고 교동도의 화개산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였다. 산 아래 해무가 걷힌 창후리 선착장 가까운 바다에는 배들이 점점이 한가로이 떠있고, 물살을 가르면서 교동에서 창후리로 건너오는 연락선의 모습도 정겹다.


 인화리에서는 북쪽 바다로 벋어 내린 얕은 산을 허무는 작업 소리가 별립산으로 메아리쳐 왔다. 그것은 인화리에서 교동도를 있는 교량공사가 한창 진행하고 있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강서중학교 17회 졸업생들이 세워놓은 정상 표지석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해발 399m. 모교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모교룰 품어 안은 별립산을 사랑하여 강서중학교 17회 동기생 카페의 이름도 “별립산”이라 하였다. 그리고 여기 별립산 정상에 강서중 17회 동창들이 뜻을 모아 이 표지석을 만들어 세운 것이다. 정성들여 만들어 세워놓은 표지석을 보면서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였다.


 정상에는 몇 그루의 반송이 소담스러운 모습으로 멋지게 가지를 벌리고 산에 오르는 사람을 반겨주었다. 별립산 정상은 정상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와 1970년 초에 미국 공군이 군대시설물을 설치해 놓은 봉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1970년 전후에 내가 강서중학교 근무했을 때는 이 산을 자주 올라왔었다. 그리고  별립산에 군 시설물을 공사하던 미군이 주말에는 학교에 내려와서 선생들과 어울려 탁구도 치기도 하였다. 우리도 미군 피엑스에서 당구도 치고 캔 맥주도 사서 마시면서 별립산 정상에서 놀다가 내려왔던 일이 엊그제처럼 느껴졌다.


 그 때를 회상하니 패어라는 흑인병사가 생각난다. 미군들은 장교를 제외하곤 병사 대부분은 학교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이 별로 없었고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부류로서 군대를 지원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군 군부대 내에서도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이 있었다고 한다. 패어는 대학을 나온 재원이었는데 백인 병사들로부터는 인종차별을 받았고, 흑인 병사들은 상종할 만한 수준이 못되어 부대 내에서도 항상 외톨이였다. 그래서 토요일이나 일요일만 되면 강서중학교에 내려와서 우리 선생들과 어울려서 탁구공놀이나 바닷가에 가서 낚시를 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우리 선생들과 패어가 학교 앞 목로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는데, 별립산에서 군사시설 설치 공사장에서 일하던 민간인 인부들 몇 명이 우리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공사를 하면서 패어와 낯이 익은 인부 한 사람이 개고기 한 저름을 가지고 와서 패어에게 먹으라고 주었는데,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결국 먹었다. 나중에 그것이 개고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힘들어 해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패어도 이젠 할아버지가 되었겠다. 군시설이 있는 저쪽 정상 부분 어디쯤에서 패어와 캔맥주를 마셨던 그 때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정상에서 하점벌 건너의 고려산과 혈구산도 안개 속에 희미하게 나타나고 북쪽으로는 맑은 날 송악산도 보인다는데 안개가 가렸다. 시야가 맑은 날을 택하여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창후리 선창가에서 숭어회에 소주 한잔하고 강화읍으로 가서 흥륭궁과 성공회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강화성을 따라서 남산에 올라갔다가 서문으로 내려와서 700번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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