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매다<39>-넴룻다이에 오르다-

어르신네 2006. 10. 4. 18:30
 


<넴룻다이에 오르다>

2005년 11월 12일 (토) 맑음

넴룻다이(Nemrutdagi)를 가는 날이라서 조금 흥분된다.

넴룻다이는 터키 중부 남쪽 안티 타우러스(Anti Taurus) 산맥 남동쪽기슭에 있는 2150m의 산봉우리이다. 이 높은 산봉우리에 Commagene 왕국의 안티오쿠스 1세가 건설한 거대한 무덤 유적이 있다.


터기를 돌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데, 혹시 산길에 눈이 많이 쌓였거나 고르지 못한 날씨 때문에 산을 오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자꾸 마음을 괴롭혔다. 왜냐하면 산르우르파에서 말라타로 오는 길에서 바라보이는 높은 산들은 대부분 두터운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바람이 좀 사납게 불었고 하늘에는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가렸었기 때문이다.


2000m가 넘는 산봉우리에 석상들이 지진으로 파괴되어 머리부분이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여기저기 나둥그러져 있는 그 진기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늘 마음 한 구석에 미진함을 깔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약속한 11시가 지났는데, 짐을 싸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아 조바심이 일었었다. 12시가 되어서야 매니저가 직접 와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그냥 와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드디어 넴룻다이를 오르게 되어 여간 기쁘지 않았다.


오늘 넴룻다이 투어는 대만 처녀와 단 둘이서 참가하였다. 대만 처녀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였다. 내가 영어 회화가 부족하여 대화하다가 말이 자주 끊기기는 했지만 생기발랄하고 붙임성도 있었고 또 같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첩첩 산중을 들어서면서 나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다. 우락부락한 운전사와 같이 동승한 터키남자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12시가 지나서 말라탸를 출발하여 바로 도시를 빠져 북쪽으로 난 산길을 향하여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또 재를 넘고 재에서 굽이쳐 내려가더니 또 높은 산마루를 향하여 올랐다. 산길을 따라 2시간을 이리저리 굽이쳐가다가 또 높은 산을 향하여 올랐다. 갈림길에 “Nemrutdagi"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리고 또 내리막길로 들어서서 어느 마을에 닿았다. 거기서부터 또 오르막길로 들어섰다. 넴룻다이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 차가 할딱거리면서 까맣게 쳐다보이는 산꼭대기를 향하여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산마루 음지에는 눈이 쌓여 있기도 하고 녹아서 빙판을 이룬 곳도 있었다.


숨차게 산마루를 넘어서 넴룻다이 유적지 바로 아래에 있는 호텔에 당도하였다. 2000m가  넘는 곳이라 기온이 뚝 떨어졌다. 땅에는 눈이 녹아 꽝꽝 얼어붙었다. 3시 30분이었다. 호텔은 이미 산 그림자에 가려졌는데 바로 정상에 올라가야 일몰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운전기사를 재촉하였더니 순순히 차를 산 정상 가까운 곳까지 몰아주었다. 눈이 쌓여 더 이상 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지점에서 내려 20여분을 걸어 올라갔다.


일몰 구경보다도 산 정상(2150m)에 있는 신상(神像)의 모습을 해가 비쳐줄 때 보아야 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빨리 올라가고 싶었다. 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바람이 실어다주는 차가운 공기가 살 속을 아리도록 파고들었다. 대만 처녀는 추위에 무척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더운 지방에서 나고 자라서 추위를 이겨내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눈길을 따라 한참 오르니 돌무더기 같은 고깔 모양의 작은 산봉우리가 보이고 그 주변에 책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석상들과 제단이 보였다. 해는 원추형의 봉우리에 가려져서 동쪽에 있는 석상들과 제단이 두꺼운 그림자에 쌓여 있었다. 석상들이 있는 곳으로 한걸음에 달아갔다. 아폴로, 티케, 제우스, 안티오쿠스1세, 헤라클레스의 두상과 그 양편으로 사자와 독수리 상이 가지런히 앉아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동쪽은 내일 새벽 해맞이 때 와서 자세히 보기로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서쪽 테라스를 구경하기 위하여 원추형 봉우리를 우측으로 돌아갔다. 많은 돌들이 앞을 막았지만 그 사이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 서쪽으로 갔다. 북쪽에 테라스가 있다고 했는데 눈에 묻혀 그 지점을 분간하기 어려워 그냥 지나쳤다..


서쪽 테라스에도 동쪽에도 있는 신상들과 같은 것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참으로 거대한 신상들을 이런 산꼭대기에 만들어 놓은 그들의 재주와 의지가 놀랍다.


넴룻다이에 온 것이 얼마나 가슴 부듯한지 모르겠다. 정말로 오겠다는, 와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오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이런 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내 자신에게 감사하였다. 신이 내게 준 특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최고를 향하려는 의지가 있기에 이런 높은 산상(山上)에 거대한 신상을 세운 것이리라.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이루고자 하는 욕망과 지향하는 세계가 끝이 없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상의 세계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것 같다. 어저께 하루종일 차를 타고 지나온 산르우르파에서 안디야만으로 오던 길목에 잠깐 나타났던 안타튀르크 댐과 그 하구를 이루는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가 한 눈에 잡히고, 안디야만에서 산 굽이굽이를 돌아들던 말라탸로 가는 산길도 가늠할 수가 있었다.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지평의 끝을 붙잡으려고 하였지만 눈길이 닿지 않았다. 참으로 높은 산에 올라 세상을 한 눈에 굽어보는 듯하여 호기를 부려볼 만도 하였다.


해가 지는 광경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보석처럼 빛나던 해가 지평 위에 앉더니 붉은 불덩이로 변하여 서쪽하늘을 불태웠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일몰의 장엄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오늘 나는 넴룻다이 정상에서 해가 지평 너머로 내려않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감격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또 경탄하였다.


해가  지자 산 아래는 완전 어둠이 드리워졌다.

다시 차를 타고 산장으로 내려와서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방안에 스팀이 없어 한기가 가득하였다. 나와 대만 처녀는 벽난로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필담도 나누면서 12시가 넘도록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붙여보려고 하였더니 대만 처녀가 나에게 옆에서 떠나지 말라고 졸라댔다. 산장의 젊은 지배인이 대만 처녀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4시 가까이 되어서야 방에 들어가서 눈을 붙였다.


<다음은 인용하여 편집한 글입니다>

넴룻다이의 유적지는 188년 오토만 정부에서 고용한 독일의 지질학자 Karl Sester에게 발견될 때까지는 이 세상에서 잊혀져 있었다. 산꼭대기의 원추형 무덤은 석회석 조약돌 60만 톤으로 만들었는데 이 무덤 안에 안티오쿠스의 석관과 보물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 무덤은 높이 50m에 동서 직경 150m이다. 1953년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나 무덤의 지하 터널 방으로 통하는 길은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작은 조약돌로 이룩한 무덤이기에 섣불리 발굴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안티오코스 1세는 무덤 주위를 신전처럼 장식했고, 무덤의 동, 서, 북쪽에는 잘 다듬은 돌들을 깔아 테라스를 만들었으며, 이들 중 동서(東西) 양쪽에는 각각 7개의 거대한 신상의 좌상을 만들어 놓았었는데. 이들 좌상은 콤마게네 인들의 주요 신인 아폴로(Apollo), 티케(Tyche), 제우스(Zeus), 안티오코스(Antiocus 1), 헤라클레스(Herakls) 등의 신들과 이 신들의 양옆으로 사자상과 독수리상 등을 만들어 세웠다. 안티오쿠스는 자신을 다른 신들과 같은 반열에 놓았다는 사실은 자신을 신격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각 옥좌의 높이는 8-9m에 이른다.

  이들 좌상의 머리부분은  지진으로 인하여 모두 땅에 떨어져 있다. 동쪽 테라스는 지진에서 넘어지지 않은 옥좌 앞쪽에다가 좌상에서 떨어져나간 두상들을 나란히 세워놓았다. 그런데 서쪽 테라스에는 옥좌도 파괴되어 신상들의 좌상에서 떨어져 나간 두상들이 굴러다니는 돌과 함께 땅에 굴러 떨어져 있다.  이들 옥좌들을 만드는데 쓰였던 거대한 흰색의 대리석은 이곳에서 30Km 떨어진 Gerger에서, 검은색의 대리석은 5Km 떨어진 Karabelen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 한다.



이렇게 높은 산봉우리에 안티오쿠스 1세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이런 거대한 신상들을 만들어 놓았을까?


신상의 앞에는 각각 제단이 있는데, 동쪽 테라스에 있는 받침대에는 5cm 높이 크기의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 문자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들 중 하나는 바로 Antiochus 1세의 입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 위대한 왕 안티오코스는 결코 파괴되지 않을 거대한 능과 모든 신들의 옥좌, 그리고 이곳에 이르는 길을 건설하게 했다. 초능력의 노력을 기울여 내가 생각한 것을 실현 시켰다. 내가 이룩한 업적은 신들의 존재를 믿는 나의 신앙의 증거이다. 나의 축복 받은 생애가 끝나면 나는 이곳에서 영원한 잠에 빠질 것이며, 나의 영혼은 천국에 있을 것이다."

                                                    --출처 Campusmon.com--


넴룻다이 동쪽 테라스

넴룻다이 서쪽 테라스

 


오스트리아 부부와  대만 처녀

 


멀리 아타튀르크 댐이 보입니다.

밤에 방이 추워서 들어가지 못하고 벽난로 앞에서 거의 밤샘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