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랴에 도착한 날>
2005년 11월 20일(일)
눈을 뜨니 새벽 3시였다. 어디인지 차가 어떤 대형 식당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승객 몇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있고 대부분은 식당과 화장실 등으로 갔다. 하늘은 짙은 구름에 가려져서 별이 보이지 않았고 땅은 젖어 있고 눈발이 오락가락하였다. 바깥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안탈랴에 도착하여 여관을 찾아 갈 때까지 만이라도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버스는 다시 떠나고 잠이 깜빡 들었다가 눈을 뜨니 버스가 급경사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시간은 4시 40분경이었다. Manavgat라는 곳까지 무려 1시간 반을 급경사로 보이는 내리막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Manavgat에 가까워지면서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경사진 길을 더 내려가서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난 평지 길로 들어섰을 때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주위는 온통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차도에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버스가 속력을 내지 못하고 서행을 하였다. 차창 윈도샤스가 빨리 움직이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20여분이 지난 후부터는 서쪽 하늘이 훤하게 들려있었다. 그리고 안탈랴에 가까이 갔을 때는 아침 햇살이 멀리 하얀 눈을 덮어쓴 토로스 산맥의 봉우리들을 비추고 있었다. 안??랴에 들어오니 완전히 비는 그쳤고 구름만 간간히 하늘을 지나갔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오토갈에 내려 세르비스를 타고 구시가지의 시계탑 있는 곳에서 내려 Lazar Pansion를 찾아 들었다. 여행 안내서에 소개된 것보다 도미토리 값이 배나 비싸다. 아침식사가 포함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신통찮다. 하여간 오늘 하루 묶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여관으로 옮기도록 해야겠다.
여관에서 70여m 거리에 있는 카라알리오르 공원(Karaalioglu Parki)을 향하여 걸어갔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우측 길가에 기원전 2세기에 세워졌다는 흐드르륵(Hidirlik Kulesi)라는 멋진 성채가 있다. 성채둘레에 대포도 갖추었는데 언제 누가 어떻게 왜 설치해 놓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공원에 들어서니 서쪽에 웅장한 토로스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앞을 막았다. 가물가물하게 높이 솟은 산 위의 흰눈, 힘차게 바다로 흘러내린 장대한 암벽들, 그림처럼 그려져 있는 지중해의 해안선, 서쪽 해안선이 끝난 지점부터의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그리고 쪽빛 바다가 그림처럼 아름다워 눈을 땔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마음이 흠뻑 빠졌다. 저 푸른 바다의 넘실대는 물결, 아스라이 수평선이 만드는 비밀 같은 하늘거림, 바다의 물결을 가르면서 항해하는 선박들, 수평선 위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구름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잊게 하고, 공원의 바닷가 절벽 위 벤치에 묶어두었었다.
이른 아침에 비가 오고 궂은 날씨였던 것이 이렇게 청명해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지중해를 한량없이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바다는 참으로 묘하게 끄는 힘이 있다. 터키에 와서 처음으로 이스탄불에서 마르마라(Marmara) 해(海)와 그 주변을 한없이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삼순의 흑해에서는 북서풍이 불어 해일처럼 밀려오던 거친 파도가 나의 가슴에 맺힌 무엇을 쓸어내려 주는 듯 후련했었다. 그리고 그 흑해가 또 나를 불러 따라갔었다. 흑해 변의 길을 따라 트라브존과 리제를 오가는 버스에서 역시 바다만 바라보았다. 트라브존의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정원에서 흑해의 파란 물결이 일렁이던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란에서는 카스피 해를 보고 싶어서 라쉬트(Rasht)로 가서 안잘리(Anzali)를 찾아갔었다. 바다! 바다는 조용히 나를 맞아주었다. 바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바다로 향하려는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안탈랴의 바다는 지금까지 보아온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나를 들뜨게 하였다.
공원 언덕에서 마냥 바다만 바라보다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시켜 먹고 나오다가, 슈퍼마켓에 들려 저녁밥과 내일 아침밥은 직접 해 먹을 쌀과 부식 및 과일을 사가지고 여관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가게에 문을 닫은 곳이 더러 보였다.
밤새도록 비스에서 시달렸던 터라 오후에는 공원을 돌아보다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공원에는 역시 할 일이 없는 영감들로 북새통이었다. 영감들이 할 일은 없고 오라는 곳도 없고 집에 있자니 갑갑하고 그러니, 소일할 마땅한 장소를 찾아든 곳이 공원인 것 같다. 터미는 어디를 가나 공원을 많이 그리고 제법 괜찮게 마련해 놓았다. 이런 것을 우리나라는 좀더 배워야 할 것 같다. 공원 조성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조금 처진다고 생각했던 나라들이 더 많이 그리고 잘 만들어 놓았다.
여관에 돌아와 조금 있으려니까 한국 젊은 여인이 Lazar 여관에 들었다. 파묵칼래에서 왔다고 하는데 여행하면서 고생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마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다가 시리아로 빠질 모양이다. 내가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여 자신 있게 무엇을 일러줄 처지가 못 되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여관은 큰 길에서 아주 멀리 들어와 있어서 아주 조용하다.
카라알리오루 공원에서 바라본 토로스 산과 안탈랴 서쪽 비치
기원전 2세기에 세웠다는 흐드르륵 탑 --주변에는 지금도 유적 발굴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음
줌후리예 광장 아타티르크 동상과 이블리 미나레가 보입니다.
안탈랴 구시가지에 가로수로 심어놓은 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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