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2005년 12월 3일 (토) 흐림 프라하에서는 눈
이스탄불 국제공항에서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의 이륙시간은 7시 25분이었다. 그 시간에 대중 교통수단으로 공항에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동양여관에서 알선해준 3시30분에 공항으로 가는 차를 이용하였다.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하여 지루한 시간을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6시 30분에 배낭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쳤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20분이나 늦어서 7시45분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50여명 정도가 타는 프라하 행 소형 비행기에 탑승하여 간밤에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려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륙 후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대지는 온통 흰 눈으로 덮였고, 흑해로 흐르는 다뉴브 강이 가느다랗게 굽이치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 구름이 가렸고 눈 덮인 대지도 하늘을 닮아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비행기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모두 겁먹은 표정들이었다.
비행기의 계속되는 심한 흔들림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비명소리까지 났다. 승무원들이 중간 중간에서 안심을 시키는 것 같았지만 동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10분 이상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나는 벨트를 움켜잡고 눈을 감은 채, 몸을 고추 세우고 바짝 긴장하였다. 별생각이 다 났다. 여기서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구름 속에서 벗어났는지 비행기의 흔들림이 좀 가라앉았다.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안도의 숨을 쉬는 것이었다. 구름에 가렸던 육지가 조금씩 드러났다. 다뉴브 강이 여기서도 여전히 유유히 그리고 굽이굽이 흘러가고 있었다.
10시 30분경에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우선 쓸 돈 20불만 환전해서 전화박스를 찾아 ‘OK민박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다. 옆의 전화박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한 사람이 다가와서 친절하게 대신 걸어준다고 하였는데 돈만 자꾸 먹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전화를 하려는 외국인이 사용할 전화기를 작동을 멈추게 해놓고는 도와주는 척하면서 나중에 전화기에서 그 돈을 챙겨 간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핸드폰을 사용하게 해주어서 겨우 통화를 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OK민박집’을 어렵게 찾았다.
OK민박집에는 한국 젊은이들 5~6명이 숙박하고 있었다. 짐을 풀고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침대에 쓸어졌다. 눈을 뜨니 네 시였다. 저녁에 젊은이들이 카를 교(Karluv Most)의 야경을 보려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눈이 제법 쌓였다. 눈길을 터놓은 곳을 따라서 가는데 젊은이들이 키가 크고 걸음이 빨라서, 나와 한 여학생은 뛰다 시피하면서 따라가느라고 무척 힘들었다. 프라하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젊은이들을 따라나섰는데 앞장선 한 젊은이가 방향을 잘못 잡아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다.
눈이 흩날리는 밤 카를 橋(Karluv Most)에는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야경을 보려는 人波로 붐볐다. 볼타바 강을 가로 지르는 카를 교에서 올려다 보이는 프라하 城과 카를 교 주변의 야경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프라하 城과 카를 橋, 그리고 거기에 물결치는 人波.... 모두 하나 되어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버러지고 있는 여러 가지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밤 날씨가 춥고 또 바지가 젖어 종아리가 아프도록 시렸다. 여학생 서 양도 밤이 깊어 가고(밤11시경) 추위도 참기 어려웠는지 민박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젊은 남자들은 야경을 더 구경하고 가겠다고 하여 그들과 헤어져서 나와 이양은 트램(tram)을 타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식당에서 산청이 고향이라는 젊은 친구들이 내놓은 맥주를 마시면서 프라하를 비롯하여, 그들이 경험한 유럽 여행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들었다.
2005년 12월 4일 (일) 오전 한 때 눈과 비가 섞여 내림. 대체로 흐렸음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어 視界가 좋지 않았다.
젊은이들을 따라 어저께 야경으로 본 프라하 성으로 갔다.
1626년에 이탈리아의 산카사 수도원을 모델로 세웠다는 로레타(Loreta)교회를 둘러보고 왕궁으로 향하였다. 로레타 교회에서 왕궁으로 가는 도로는 예전에 사용하던 도로를 최대한으로 활용한 것 같다. 도로 포장은 작은 돌을 땅에 촘촘하게 박아놓은 것이라서 걷는데 편안하지는 않았다. 관광 코스인 구시가지의 거리는 대부분 그렇다.
왕궁 앞에는 입초(立哨)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근위병들의 멋진 행진이 눈길을 끓었다. 왕궁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프라하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닿는다. 관광 시즌에 프라하의 관광 코스에는 사람들이 발을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한다.
왕궁과 성당을 둘러보면서 정말로 멋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멋을 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왕궁은 16세기 말까지 보헤미아 왕가의 궁전이었던 곳으로 체코 정치 일번지라고 할 수 있다.
성비타 성당[Katedrala sv.Vita]은 10세기부터 건축하여 1929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프라하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이라 한다. 성당 내부에는 수많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보이질 않는다. 기둥에는 성경이야기와 관련된 부조물과 그림들로 빈틈없이 없다. 그리고 유명한 호화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끌었다.
복잡한 성당에서 나와 황금소로로 갔다. 황금소로로 가는 길목에 서서 124m나 된다는 성비타 성당의 대첨탑을 올려보니 정말로 장관이었다.
우리는 황금 소로와 성 이르지 교회를 둘러보고 카를 교로 걸어 나왔다. 밤풍경에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카를 교에는 체코의 성인 동상을 비롯하여 예수의 십자가상 등이 세워져 있어서 더욱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 다리는 1353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50년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는데, 다리가 중후하고 기품이 있다. 다리 위를 걷고 있노라니 중세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추운 겨울 카를 교 한가운데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관광객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떤 동상에는 그 동상의 어느 한 부분을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만지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여 그 앞에 줄지어 있는 모습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카를 교 한 편에서는 중국인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또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볼타바 강의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강 위쪽에 구조물을 만들어 넓은 강바닥 위로 강물이 고르고 완만하게 흘러가게 하였다. 그 잔잔한 강물의 흐름이 카를 교를 가득 매운 인파의 흐름과 어쩌면 그렇게도 조화를 이룰까 싶었다.
민박집에서 같이 나왔던 일행 가운데 일부는 신시가지로 가고 나와 서양은 구시가지로 가서 구경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카를 교의 동쪽 입구에 있는 탑을 통과하여 구시가지로 향하였다. 구시가지 입구에서 환전을 하였는데 20유로를 420kn으로 환전해 주었다. 나와서 생각해보니 여자 환전원에게 사기를 당하여 100kn는 손해를 본 것 같다.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관광객으로 붐볐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광장은 각종 선물가게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섰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느라고 복작거렸다.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돼지고기 캐밥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광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선물가게에 들어가서 손녀들에게 보낼 엽서와 너무 추워서 머리에 쓸 벙거지를 샀다.
광장 가운데는 중세 보헤미아의 종교 개혁가 요하네스 후스의 동상을 비롯하여 구시청사와 틴 교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구시청사는 카를 교에서 구시가지 광장으로 들어오는 좌측 입구에 있다. 구시청사 건물에는 시계탑이 있는데 그 아래에는 천체의 회전과 사계의 이동변화를 나타내는 두개의 시계가 있다. 틴 교회는 구시청사에서 마주보이는 흰 건물 뒤에 두 개의 첨탑이 솟아 있는 건물이다.
구청사 광장에서 17세기에 화약 창고로 사용되었다는 화약탑을 보려고 첼레트나 거리를 따라 갔다. 사람들이 뜸하였다. 이 거리는 옛날에는 무역이 성행했던 곳이기도 하며 왕의 대관식행진이 이루어졌던 왕의 거리로 역사와 유서가 깊은 곳이라 하였다. 연도의 중후한 건물들이 거리의 무게를 느끼게 하였다.
저녁 무렵에 젊은이들과 함께 마실 맥주와 안주거리와 부식을 준비하여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은 밥은 무료인데 반찬(부식)은 각자가 알아서 장만하여 먹으면 된다. 저녁 늦도록 맥주를 마시면서 젊은이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카를 교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 야경(사진이 엉망이라서 죄송합니다)
왕궁 입초병
성 비타 대성당
성 비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왕궁에서 내려다 본 카를 교
황금소로에서
중국인 신혼부부
볼타바 강
종교 개혁가 요하네스 후스 동상
비틀즈 낙서벽 --독도는 한국땅---
카를 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구시청사의 벽시계
구 시가지에 있는 틴 교회
카를 교의 어느 동상의 한 부분을 만지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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