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남미(南美) 여행 8. - 부에노스아이레스(2)

어르신네 2011. 5. 20. 14:09

부에노스아이레스(2)

 2011년 3월 8일 (화) 맑음

 어저께 탱고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한밤중에 먹은 음식이 기어이 탈을 냈다. 그래서 오늘 우루과이 투어 계획을 취소하고 오전 내도록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기운을 내서 오월 광장에 있는 대성당을 들어가 보았다. 이름 그대로 대성당이다. 관람객들도 많이 드나들었다. 예수 수난의 14처를 그린 대형 유화(油畵)가 각 코너에서 장식품으로 훌륭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입구에서 들어오다가 중간 오른쪽의 한 예배소 앞에 입초한 위병들이 보였다. 그곳에는 아르헨티나의 독립에 공을 세운 산 마르틴 장군의 시신이 든 관을 모셔둔 곳이라 한다. 제복을 입은 위병의 모습은 멋있게 보였지만, 성당 안의 위병 입초가 낯설었다.

대성당

산 마르틴 장군이 관 앞의 입초병들

 

 대성당에서 나와서 플로리다(Florida)거리로 갔다.

플로리다 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표적인 쇼핑거리라고 한다. 인파가 물결을 이루었다. 그리고 고급스런 상품들을 진열해 놓고 고객을 기다리는 크고 작은 각종 멋진 매장들이 좌우에 도열해 있다. 거리의 악사들과 마임 분장한 이들의 퍼포먼스는 이 거리를 찾은 사람들을 흥겹고 즐겁게 만들었다. 플로리다 거리는 2km 정도는 될 것 같다. 거리가 끝난 곳에 플라자 산 마르틴(Plaza San Martin)의 울창한 숲이 앞을 막았다.

 

 

플로리다 거리

 

 숲길을 가로 질러가서 ‘산타 페 길(Av. Santa Fe)'을 걸어서 '칠월구일거리'로 갔다. 그리고 오벨리스크(obelisk)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오벨리스크는 ‘칠월 9일 거리(Av.9 de Julio)’의 플라자 데 라 리푸블리카(Plaza de la Republica)의 중앙에 우뚝 세워졌다. ‘칠월 구일 거리’는 좌우 차선 사이에 넓게 공원을 조성하였다. 한 쪽 차선(한쪽 차선이10차선?)도 두 구역으로 나눠서 운영된다. “이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거리이며,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7월 9일)에서 이름들 딴 것이다.”(주:백과사전). 도로가 넓으니까 횡단건널목을 걷는 거리도 멀다. 그래서 신호등을 보고 한쪽 차선을 건너서 중앙 분리선 역할을 하는 곳에서 기다렸다가 반댸 쪽에 있는 차선의  신호등을 보고 건너야 한다.

 

칠월구일대로의 오벨리스크

칠월구일 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100년 이상 된 건물 가운데서 역사성과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선정하여 시에서 특별 관리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선정된 건물은 사유재산이라도 당국의 허가 없이 개보수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어저께 탱고 쇼를 구경하였던 Tortoni도 1870년대의 건물로 특별 관리를 받는 건물이라 한다. ‘칠월구일 거리’에서 ‘메이요 거리’로 오면서 고풍스럽고 멋진 건물이 눈에 띄면 ‘혹시 이 건물이 특별 관리를 받는 건물이 아닐까?’하고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건물 앞에 세워둔 입간판을 읽어보기도 하였다. 오늘 오후에는 오랜 시간 먼 거리를 걸었다.

 

‘칠월구일 거리’와 ‘메이요 거리’가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북을 치고 노래하다가 구호를 외치는 일군의 데모대가 프랑 카드를 들고 대통령궁 쪽으로 행진을 하는 것이었다. 데모를 하는 것인지 무슨 축제를 벌이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데모하는 모습이 재미있게 보였다. 경찰들도 교통통제와 대통령 궁과 일정 거리를 두고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그 옆에 서서 지켜볼 뿐이었다. 데모 구경하느라고 늦게 숙소에 돌아왔다.

 

데모대인지 놀이꾼인지?

대통령 궁 앞에서의 데모

 

 가방을 잃었던 젊은 친구가 대사관에서 단수 여권을 발급받아 오늘 살바도르로 갔다. 예정대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관 로비에서 여행자들의 대사관 직원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리나라 대사관 직원들은 최고 엘리트 계층이다.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일반인들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재외 국민을 보호하고 잘 돌보는 것이 자기네의 직무인데 문제를 해결해 주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쾌하게 만든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 외교관은 국민의 공복이란 국민의식이 고조되면서 외교관들의 태도에 변화가 있다.’

 ‘지난 번 한지수씨에 대한 외교부의 태도에 분노한 국민의 질타에 좀 달라진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외교부 직원들의 거만한 태도가 국민을 분노하게 한다.’

 ‘지난 번 이집트 사태에서 나타난 대사관의 처사는 공복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등등.

 그러나 아르헨티나대사관은 가방을 잃은 젊은 친구에게 여권 발급을 해주면서 친절하였고 공복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해외동포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외교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여권 발급을 해준 아르헨티나 대사관처럼.....

 

2011.3.9(수)맑음

볼리비아 입국을 위해 황열병 예방 주사를 맞았다. 예방주사는 무료이고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일반직원들도 무척 친절하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의사가 나를 따로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예방주사 후에 지켜야 할 유의사항을 일러주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똑 바로 알지도 못하고 눈치로 ‘예스, 노’라고 대답하였다. 예방주사 증명서를 발급받아서 볼리비아 가기 위한 준비가 하나는 해결되었다. 볼리비아 비자는 칠레 산티아고에 가서 발급 받을 예정이다.

 

‘한인촌(韓人村)’을 형성하여 살아가는 동포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젊은 친구와 함께 ‘한인촌’에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한인촌’은 한인들의 자활의지와 그 노력이 결실은 맺은 곳으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서 그 일대의 거리를 ‘한인의 거리’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것을 쉽게 얻은 것이 아니라 ‘한인촌’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한인들의 열성과 노력과 신뢰가 이룩해 놓은 성과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딜 가든지 착근을 잘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인촌은 위험지역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한인촌에서 일하던 페루 사람들이나 볼리비아 사람들이 한인촌 주위에 거주하면서 한인들을 상대로 강도짓을 하는 일이 있어서 한인촌이 위험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들렸던 ‘두꺼비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그런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하나이지 한인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한인촌이 좀 더 안정된 곳으로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한인촌(韓人村)

 

 

2011.3.9(목) 맑음

오늘은 깔레파테로 가는 날이다.

오전에 미술관이나 관람하려고 찾았다가 문이 잠겨 그냥 돌아왔다.

 

오늘이 평일인데 문이 닫겨 있었다(미술 백화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상파울로나 리오데자네이로와 마찬가지로 서구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만의 특성을 나타내는 탱고라든가 축구에 대한 열기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남미 사회를 지배하고 이끌어온 지배층이 모두 백인 중심이었고 그들의 지배 하에서 서구 문화 중심으로 사회가 운용되어왔기 때문에, 특히 근대까지 아르헨티나의 지배자들이 백인 중심 정책을 펴온 결과 더욱 서구적으로 착근한 것이 아니었을까...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기가 아쉽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일간이나 묵으면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명소를 찾아다녀봐야 하였는데 판단력과 기동력 등이 떨어져서 무엇부터 봐야할지 어떻게 봐야할지 몰라서 허둥대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떠나는 것 같다.

그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월광장’을 중심으로 ‘플로리다 거리’와 ‘칠월 구일의 거리’, 그리고 ‘산 텔모’의 벼룩시장을 걸어보았고, 대통령궁도 관람하였으며, 대성당과 ‘토르토니’라는 유명한 카페에서 탱고도 관람하였다. ‘시티투어’에 참가하여 ‘보카’체육관을 얼떨결에 관람하게 되었고 ‘한인촌’에 가서 소주와 소불갈비로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고 돌아왔었다. 늙은 몸이 의욕만 앞세우다가 모든 것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자제하다보니 여행이 소홀하였고 내용이 빈약하다. 박물관과 ‘보카의 거리’와 같은 명소들를 좀더 많이 돌아다녀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 타는 법, 전철(지하철) 타는 법과 노선을 좀 익힐 만하니까 떠나게 된다는 것도 뭔가 할 일을 남겨두고 가는 느낌이다.

 

 

 

 

 

 

 

 

 

 

비행기를 타기위하여 뉴베리 공항으로 가는 45번 버스 정거장으로 나가는데 ‘남미사랑’의 사장부부와 직원들, 그리고 투숙객들이 따뜻하게 배웅해주어 고마웠다.

 

 

뉴베리 비행장 바로 앞에 있는  Rio de la Plata

내가 타고 갈 갈레파테 행 비행기

뉴베리 공항의 한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