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강화 통일 전망대

어르신네 2012. 5. 29. 00:14

 

오늘은 知友들과 이종탁 선생 승용차로 강화를 한 바퀴 돌았다. 이북의 개풍지역이 바라보이는 강화도통일전망대을 구경하고, 외포리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강화는 내 젊은 시절 5년 동안 살면서 자식을 둘씩이나 낳아 길렀던 곳이라 남다른 향수를 느끼는 곳이다. 강화를 떠난 후 어쩌다가 강화를 찾게 되면 고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설렘이 인다.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서 하루 만에 볼일을 다 보고도 여유롭게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강화에서 살 때에는 도로는, 지금처럼 쭉쭉 벋은 곧은 도로가 아니라, 이리저리 꾸불꾸불 돌아가고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꿈틀꿈틀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비포장도로였다. 또 그 때는 전방지역의 통행인들에 대한 검문소의 조사가 엄격하여 검문소에서 많은 시간을 지체하였다. 또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 갑곶이에서 바다를 건너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하였었다. 그래서 인천이나 서울 나들이를 하려면 최소한 이틀은 계산하여야 했다.

 

 

인천에서 양곡까지는 그런대로 잘 왔는데 통진에서부터는 차량들이 거북이 걸음이었다. 서울 인천 차량들이 모두 강화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연휴기간에 강화에서 휴일 보내려는 사람들과  내일이 석가 탄신일이라서 절을 찾는 사람들의 차량 행렬인 것 같다. 인천을 출발하여 강화 통일전망대에  3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아침에 인천에서 출발할 때에는 구름이 약간 드리워졌었는데 양곡을 지날 무렵 갑자기 바람이 일었다. 양곡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돌개바람에 먼지가 구름처럼 일면서 사위가 어두워지더니 천둥번개에 소나기까지 쏟아졌다. 그러나 통진을 지나면서 소나기도 그치고 구름도 물러나는 것 같았다. 그 이후 간간히 빗방울이 듣기는 하였지만 우리 일정을 소화하는 데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다.

 

 

강화 읍내를 지나 송해면 당하리 민통선 검문소를 통과하였다. 옛날에는 통행증이 없으면 출입을 제한하던 곳인데 검문소 군인들이 우리 차가 접근하자 차 안의 면면들이 파삭 늙은이들 얼굴만만 보이니까 그냥 통과시켜 준 것 같다. 今昔之感이 들었다. 곧이어 통일 전망대에 올라갔다.

통일 전망대에 오르는 길가에 “우리는 결코 잊지 않는다. 천안함 폭침 만행을!”이란 플래카드(placard)가 보였다. 여기는 남북이 대치해 있는 최전방지역으로 항상 긴장의 끈이 팽팽하다. 그래서 적에 대한 경계에 추호도 틈이 있을 수 없는 곳이다. 이곳 일선장병들은 신성한 국방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투철한 정신무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도록 명을 받았다. 플래카드는 장병들로 하여금 천암함 사건을 상기시켜 국방의무 수행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고취하려는 것 같았다. 아울러 관광객에게도 천암함 사건을 통하여 북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무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세계 유일의 분단의 나라. 첨예한 대치.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다. 작금의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徹天之寃인 것 같다. “남북화해”를 말하면서도 모든 상황은 그와 정반대이다. 북과는 달리 남에는 언로가 트였다. 그래서 북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있고, 북에 대한 견해가 첨예하게 갈라져 있다. 깊은 고찰 없이 말하기가 두려운 것이 남북관계다. 현재 그 다양한 소리 가운데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어있다.

지금까지의 북쪽의 소식들은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대부분이었다. 한 민족이라면서 남쪽을 대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만약 ‘내가 가족들과 함께 현재 북에 가서 살게 된다면..’ 이란 가정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남북관계에 대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훌륭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남북관계를 연구하여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남북관계해법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남북관계를 비롯하여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 분야에까지 국민을 극단적으로 갈라놓는 정치인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날씨가 흐린 탓으로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개풍지역의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렇게 철조망을 가로 막아놓고 한민족이 60년 이상을 갈라져 살았으니 생활방식과 사고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모습까지도 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언제나 통일이 될라는지....... 날씨가 흐리고 가물거려 흐릿하게 보이는 북의 모습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 후의 강화 통일전망대 답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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