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제1코스를 걷다
김포 평화누리길 14km를 걸었다. 김포 평화누리길 첫째 길은 초지대교 입구에 있는 대포항에서 강화 대교를 건너기 직전의 김포 문수산성 입구까지이다. 오늘 우리는 역으로 문수산성 입구에서 대명항을 향하여 걸었다. 문수산성 입구에서 강화 대교 쪽으로 방향을 꺾어 대교 밑을 지나서 대명항을 향하여 철책길을 따라갔다.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변 철책을 따라 이어지는 평화누리길은 민족분단의 아픈 현실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길이다. 또한 외부세력의 부단한 침입으로부터 국가 방위와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던 전초기지로서의 이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던가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강화 대교 아래쪽에 또 하나의 다리. 그것은 1970년 1월에 개통하여 이용되었다가 이젠 더 크고 튼튼한 새로운 대교가 생기면서 용도 페기된 구대교이다. 구대교의 개통 때가 생각난다. 1970년 1월 강화군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강화대교가 개통하던 날 강화군민들은 축제로 술렁이며 들떴었다. 강화에서 육지로 나가려면 강화의 갑곶이에서 버스나 짐차를 배[船舶]에 싣고 김포지역 성동으로 건너와야 했다. 당시 강화대교의 개통으로 인하여 강화사람들의 생활이 완전히 달리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 인천이 1일 생활권이 된 것이었다.
1969년 처음으로 강화로 발령받고 강화로 오기 위하여 서울 용산 시외버스정류장에서 강화행 버스를 타고 아침 7시에 출발하였는데 김포 성동 나룻터에도착하니 도하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었다. 지루하게 기다렸다가 차례가 된 버스를, 승객을 버스에 태운 채로 배에 싣고 염하강을 건너갔다. 강화읍에 도착하니까 오후 2시가 다 되었었다. 바로 강화 대교 앞에서 옛날 뱃길과 구대교를 바라보고 서있으니 참으로 금석지감이 인다.
"평화누리길" 안내도
문수산정 입구
출발 ---> 동명항으로
동지가 지났는데 평화누리길을 찾은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개나리꽃
이제 용도 폐기된 강화 구 대교
현재 이용되고 있는 강화대교
멀리 우측은 고려산 좌측은 헐구산(?)
티크목 계단에서
곱게 물든 은행나무 잎이 평화누리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철책선을 따라....
자칫 지루하고 답답하게만 느겨질 철책길.
하지만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들이 "평화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더없이 평화로운 바다인데
철책 안은 갈대가 늦가을의 한가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연못가에서도 가을은 붉게 타고 있다.
염하강의 야생 오리들
가을의 끝자락을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철책선 길에도 가을의 정취가 감돈다.
평화누리길의 계단들은 막다른 골목길에 어느 집 대문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오르는 느낌을 같게 한다.
철책선과 단풍. 그래도 가을의 정취는 살아 있다.
멀리 마니산이 보인다.
출렁다리
덕포 나루에서 바라본 부래도
덕포나루는 "평화누리길" 제1코스에서 유일하게 철책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서울이나 인천으로 운행하는 운반선들이나 어선들이 정박하기도 하던 곳이다. 지금도 작은 포구로 역할을 하며 포구 출입구에는 무수한 세우젓통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그리고 물가에서는 강태공들의 낚시 손길이 바삐 움직인다.
덕포나루 바로 앞에는 아주 예쁜 부래도가 아담하게 바다 속에 자리잡고 있다.
덕포나루에서
손돌(孫乭)목. 건너편 강화에 광성보가 보인다.
손돌목은 인천 앞바다에서 마포나루까지 올라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서 강화군 광성보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일컫는다. 이곳은 평상시에는 세곡미를 운반하는 뱃길로 이용되었으며, 전시에는 적을 방어하는 진지로 사용되었다. 손돌목은 고려 이래 조선말까지 경제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곳이었다
손돌의 묘
1231년 몽고(원나라)가 고려땅을 침입하여, 고종은 화친을 내세워 일단 회군시켰으나, 그들이 계속 부당한 조공(朝貢)을 요구하므로 결사항전할 것을 결심하고 1232년 몽고의 2차침략 때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다. 고종은 조정을 이끌고 개경을 떠나 사공 손돌(孫乭)의 배를 타고 예성강 벽란도를 거쳐 임진강과 한강 하류를 지나 강화도로 가고 있는데 현재의 대곶면 신안리와 강화도 광성진 사이의 해협이 협소하고 급류인 목에 닿게 되었다. 이곳은 앞이 막힌듯이 보이는 지형으로 처음 배를 저어 가는 사람은 뱃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지라, 천도하는 고종도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뱃길도 없는 곳을 향하여 노를 젓는 사공 손돌을 의심하여 수차 뱃길을 바로잡도록 하였으나 손돌이 아뢰기를 "보기에는 앞이 막힌 듯하오나 좀더 나아가면 앞이 트이오니 폐하께서는 괴념치 마옵소서"라고 아뢰었다.
고종은 마음이 초조하여 손돌의 흉계로 의심하고 신하들에게 손돌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고도 임금의 안전항해를 바라는 충성에서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뱃길이 트일 것을 아륀후 참수되고 말았다.
이후 왕의 천도항해는 손돌의 바가지 안내대로 험한 협류를 무사히 빠져나와 목적지에 당도하였다.
왕은 늦게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손돌을 후히 장사지내주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도 세워주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 뱃길목을 지금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르며, 公의 기일인 음력 10월20일이면 손돌의 원혼히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이 때의 거센 바람을 "손돌이바람", 이 무렵의 추위를 "손돌이추위"라고 전해온다. 손돌 공의 묘는 이곳 손돌 협류가 보이는 덕포진 북쪽해안 언덕 위에 있다. 公의 제사는 조선조말까지 계속되어오다가 일제강점 후 중단되었으나, 1970년 이후 다시 제사를 지낸다.
덕포진에서 바라본 초지 대교
덕포진(사적 제292호)
덕포진(德浦鎭)은 조선 시대의 진영(鎭營)으로 포대(砲臺)및 파수청(把守廳)이 있던 곳이다. 처음 세워진 연대는 조선 선조 시기로 추정되지만 기록에 의하면 현종 7년(1666년)에 광성보 덕포진 용두돈대와 함께 새롭게 진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덕포진 돈대가 위치하는 곳은 한성으로 통하는 바닷길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싸웠던 격전지이다. 1980년 발굴조사 당시 고종11년(1894)년에 만들어진 중포 4문과 소포 2문이 포대에 걸려 있는 채 발굴되었으며, 포탄과 상평통보가 같이 출토되었다. 건물터에서는 주춧돌과 화덕자리가 발견되었는데,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둘레에는 맞담을 쌓듯이 둘러친 석벽이 있었다.
덕포진 전시관 내부
철책선 따라
"꿈꾸는 염하강"
"꿈꾸는 염하강" - 마을 미술 프로잭트
"평화누리길" 제1코스 입구
해양문화를 선도하는 김포 함상 공원
김포함상공원은 52년 바다를 지켜오다 2006년 12월 퇴역한 상륙함(LST)을 활용하여 조성한 수도권 유일의 함상공원으로써 다양한 볼거리 제공 및 체험 등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조타실
|
|
10시 55분에 문수산성 입구에서 출발하여 오후 4시에 대명항에 도착하였다.
정상적으로 걸었다면 훨씬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러나 , 염하강과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늦가을의 잔치가 철책선을 넘나들며 한데 어우러진 아이러니한 경관들이 우리들의 발길을 곳곳에서 멈추게 하였다.
우리는 평화누리길을 걷는 동안 한갓지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철책선은 민족 분단의 아품을 고스란히 토해내고 있었다. 이 철책 언저리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엄중한 감시의 눈길이 번득이고 있을 것이다. 살상의 무기들이 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는 소름끼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순간적으로 발길을 멈출 때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일행들이 내 발길을 재촉하는 소리가 아니었더라면 또 다른 망상에 빠졌을 것이다.
곳곳에 평화를 소망하는 그림들과 구조물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이 평화누리길에 철책선이 걷혀지는 날에는 또 다른 의미의 산책로로 탈바꿈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오늘 참으로 좋은 길을 걸었다.
5시간 정도 걸었지만 중간중간에 쉬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앞에 나타난 자연경관에 마음이 빼앗겨 함참 그 경관에 몰두해 보기도 하였다. 또 그 경관에 상상의 나래를 얹어 엉뚱한 세계를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오늘 여정의 마지막 행사로 함상공원을 관람하였다. 우리는 함상공원의 조타실에 올라서서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타난 석양에 물든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봉산 (0) | 2015.08.05 |
---|---|
북악산과 인왕산 (0) | 2015.07.18 |
지리산을 종주하다 (제2일) (0) | 2014.09.22 |
지리산을 종주하다 (제1일) (0) | 2014.09.21 |
수리산 (0) | 2014.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