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자이뿌르에서 조드뿌르로
2005년 3월11일 (금) 맑음.
조드뿌르(Jodhpur)로 갈 행장을 꾸려 7시 30분에 check out하고 Main Bus Stand에 갔더니 7시40분밖에 되지 않았다. 3번 버스 플랫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조두뿌르 행 버스를 탔다. 차가 딜럭스라고 하는데 관리상태가 별로였다. 그러나 아그라에서 자이뿌르로 올 때 탔던 버스보다는 훨씬 양반이었다. 8시 15분에 버스는 출발하였다.
버스가 매인 버스 스탠드를 출발하고 10분 지나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고속도로가 편도3차선으로 비교적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가 우리나라의 고속버스처럼 속력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지역은 준사막지역이라고 하는데 광활한 평원은 눈이 다하지 못하고, 경작지에는 밀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경작지가 가운데 듬성듬성 숲을 이루는 나무는 수종(樹種)이 몇 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대종(大宗)을 이루는 것은 아카시아와 비슷한 나무인데 가지가 많이 퍼지고 잎이 작고 가늘며 가시가 있다. 계절적으로 봄이라 나뭇잎이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작은 나무들은 새잎이 많이 나와 있어서 푸르고 싱싱해 보이는데 큰 나무들은 아직도 잎이 나오지 않거나 조그맣게 새순을 내밀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비교적 한가하다. 인도 땅이 넓기도 하지만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곧게 벋은 고속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렸을 때였다. 맞은 편 차선에서 대형 트럭이 갑자기 우리 앞에서 전복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뒤를 바짝 따라오던 트럭이 전복한 트럭을 올라탔다. 대형 사고 같은데 우리가 탄 버스는 잠간 멈칫하다가 그냥 달려갔다. 트럭에 탔던 사람들이 많이 다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자이뿌르를 떠날 때에는 하늘이 맑았었는데 한 시간 이상 달려온 도로의 전방에 심상치 않게 보이는 구름이 포진하고 있었다. 혹은 짙은 안개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비가 온다면 가는 길이 지체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한 30분 지나니 하늘이 도로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도로변 곳곳에 물이 괴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는 빗줄기가 지나간 것 같다. 그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마을을 지날 때 장대에 매달린 깃발이 심하게 나부끼는 것으로 보아 차창밖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는 것 같았다.
10시 10분경에는 고속도로가 끝나고 일반국도로 접어들었다. 농지가 아닌 곳에는 돌밭과 선인장과 가시나무들로 채워졌으며 이곳이 준 사막지역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경작지의 대부분은 붉은 속살[흙]을 드러냈는데 봄을 맞아 씨앗을 뿌리고 움이 트면 곧 푸른 들판으로 바뀔 것이다.
10시 40분경 Ajmer의 초입에 들어섰는데 산 중턱에 움막과 같은 집들이 보였다. 우리나라의 6.25직후 서울 변두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아즈메르 버스스탠드에 들어가니 비온 뒤에 생긴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보였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튕기는 흙탕물을 뒤집어 쓴 사람들이 자동차 운전수에게 항의하는 게 아니라 흙탕물을 뒤집어 쓴 것이 기분이 좋아서인지, 천성인지, ‘기왕 당한 걸 화내봐야 뭐하냐.’ 하고 체념하고 만 것인지, 그냥 허허 웃고 서 있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즈메르의 버스 스탠드에 들어가기 직전에 도로변에 큰대자고 길바닥에 누워 잠자는 사람이 있었다, 대형 트럭이 끊임없이 지나다니고 트럭과 각종 차량들이 내는 소음도 대단한데 저렇게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심장은 강철로 된 것인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콜 중독자이거나 마약을 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저녁에 Cosy G.H 주방장에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아즈메르 지역은 음주와 마약을 엄격히 통제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거리에 누워 잠잘 수는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가장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11시10분에 버스는 아즈메르 버스 스탠드에서 출발하였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이 좁은데 오가는 차량들이 많았다. 도로의 폭이 갑자기 좁아진 곳에서 헝클린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한대씩 빠져나가느라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가 급격한 산업화를 이루면서 도로망은 구축되지 않았는데 화물차량들이 많이 늘어났었다. 그때 도로의 어느 한 지점에서 사고가 나면 그 뒤에 따라오던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서 사고처리가 끝날 때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했던 일이 생각이 났다.
12시50분경에 Beawar라는 도시에 도착하였다. 지도상으로는 자이뿌르와 조드뿌르의 중간지점을 조금 지난 지역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4시간 30분을 왔는데 조두뿌르에 도착하는 시간은 아무래도 정시를 훨씬 넘을 것 같았다. Beawar 버스 스탠드에서 5분 만에 발차하였다. Beawar를 출발한 다음부터는 딜럭스가 아니라 완전히 시내 일반버스처럼 운행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데서나 손님을 태우고 내리는 것 같았다. 아침에 선선할 때는 힘차게 돌아가던 에어컨이 한낮이 되자 작동을 멈춘 듯하다.
13시경 좌우로 그리 크지 않은 산들이 나타났다. 산은 바위투성이고 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고 선인장과 가시나무들만 듬성듬성 보였다. 그리고 산간(山間)에는 밀밭들이 보였으나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한 곳 같았다. 버스가 갑자기 도로를 벗어나서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더니 어느 식당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산길을 돌아가는데 이번에 보이는 산의 바위들은 모두 검은 색이였다. 산이 검은 바위를 뒤집어 쓴 것 같이 이곳은 유난히 검은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가 입간판에 호랑이 머리(?)를 그려놓은 것이 보였다. 혹시 호랑이가 나타나는 지역(?)이란 표시가 아닌지 모르겠다. 지역명을 알아보려고 입간판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있는 것을 놓혔는지 아니면 설치되지 않은 것인지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풀길이 없어 아쉬웠다.
얕은 산이 사라지고 이어서 평원이 전개되었다.
짐승들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밭의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둘러놓았는데 그 재료가 대부분 石材였다. 옛날 우리 농촌에서 집을 짓거나 어떤 구조물 즉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 쓰였던 주요 재료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산의 나무였던 것처럼, 이 지역에서 각종 구조물 재료로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석재인 모양이다.
어떤 지역을 지날 때 소 떼가 도로를 가득 매웠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도로에서 어슬렁대는 소 떼를 몰아냈다. 그렇게 하기를 한두 곳에서 한 것이 아니었다. 차들은 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정차하여 기다리곤 하였다. 소뿐이 아니다. 염소 떼도 도로에 무수히 나타났다. 그 때마다 차량들이 슬슬 피해 가는 형상이었다. 들판에는 염소와 소들도 보였지만 낙타들도 많이 보였다. 달구지는 거의 낙타가 끌었다. 황무지와 같은 이런 척박한 땅에서 저렇게 큰 동물들을 사육한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광활한 대평원은, 경작지와 황무지와 다름없는 비경작지가 서로 자리를 바꾸면서 나타나는 광경에, 우리의 시선을 멈추지 않게 하였다. 좁은 국토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너무나 부러운 땅덩어리였다. 평원 위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다양한 그림을 그리면서 갖은 조화를 다 부렸다. 버스 안의 이국인이 단조롭고 삭막한 평원의 볼거리에 식상할까 염려하여, 라자스탄의 하늘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15시 40분경에 멀리 산위의 메헤랑가르(Meherangarh)城이 보였다.
16시에 조드뿌르 버스 스탠드에 도착하였다. 버스스탠드에서 Clock Tour까지 20루피에 오토릭샤로 갔다. Clock Tour에서 Cosy G.H까지 걸어갈 생각으로 어느 상점주인에게 그 소재를 묻고 있는데 마침 서양 남녀가 자기들도 Cosy G.H로 가려고 한다고 하여 우리부부는 그들과 동행을 하였다. 그런데 클록 타워에서 먼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우리는 물어물어 찾아 갔다. 메헤랑가르 성을 들어가는 뒤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서양인 남녀는 그 긴 다리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우리는 짧은 다리로 따라가느라고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그들도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안쓰러운지 가다가는 멈춰 서서 우리를 기다려 주곤 하였다. 좁은 골목길에서 오토바이가 아내의 다리를 치고 지나갔다. 큰 부상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내도 보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걷는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아내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여관을 두고 왜 멀리까지 걸어가느냐.’고 하면서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절룩거리면서 겨우겨우 여관에 도착하였다.
서양 남자는 여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른 곳으로 가고 여인만 코시 게스트 하우스에 남았다. 우리 내외가 들어갈 방은 공동욕탕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였다. 아내는 겨우 이런 곳에 와서 자려고 먼 거리를 걸어서 왔느냐고 하였다. 아내가 자꾸 짜증을 내니까 나도 미안했던 마음은 없어지고 약이 살짝 오르기 시작하였다.
여관에서 주문한 식사(달리)가 괜찮았다. 그런데 아내는 ‘이런 것 먹어서 자꾸 배탈이 난다.’고 하면서 저녁을 먹지 않고 그냥 잠자리에 들어갔다.
나는 저녁을 먹고 테라스로 가서 마주 보이는 메헤랑가르 성과 조두뿌르의 밤하늘을 보면서 지나온 여정을 더듬어 보았다. 꾀 많은 거리를 돌아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맥주를 시켜서 마셨다. 한병에 100루피다. 너무 비싸다. 그래도 마셔야겠다. 두병을 마셨다. 취하지 않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내가 두병을 마시고 있는데 옆의 서양남녀는 한 병씩 시켜서 앞에 놓고 3분의 1도 마시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저 여유와 느긋함. 나에게 저런 게 필요하다.’
식당 주방장이 와서 말을 거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반도 못 알아듣겠다. 그는 동양인인 내가 무척 신기한 모양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니까 자기는 요리사로서 가장 좋은 요건을 갖춘 사람인데 한국에 가서 인도요리 업체에 취업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와 된 말 안 된 말 하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다. 술이 약간 들어가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옆의 서양 사람들도 거의 자리를 떴다. 취하니까 기분도 좋고 힘들었던 생각과 일들이 모두 잊혀서 좋았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니까 취기가 싹 가셨다. 이 헛간 같은 방의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는 순간, 내가 아내를 아무렇게나 팽개쳐놓았다는 자책이 가슴을 쳤다. 후덥지근한 방안의 공기를 바람개비가 감고 돌았다. 그래서 방안의 공기는 후덥지근하였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다가가서 아까 오토바이에 부딪힌 정강이를 들여다 보려했더니 아내가 획 돌아누워 버렸다. 미안한 생각도 들고 해서 다시 다리를 만져보고 꾹꾹 눌러보았다. 처음에는 툭툭거리더니 가만히 있기에 좀더 강도를 높였다. 저녁도 나만 먹고 술도 적잖이 마시고 들어와서 미안한 마음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의 마음을 누그려지게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술기운을 빌어 아내의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 안마를 해주었더니 마음과 생각이 다 풀렸는지
“이 방도 지내보니까 괜찮은 것 같다.”면서 나를 오히려 달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 한방에 술기운도 어지간하였지만 참으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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