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운봉~인원 구간 탐방(지리산 둘레길)

어르신네 2017. 11. 12. 22:06

운봉~인원 구간 탐방(지리산 둘레길)

또 한 해의 늦가을의 끄트머리 문턱에 들어섰다. 무엇이라고 특정 지울 수는 없는, 뭔가 꼭 했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그냥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드니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 그리고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들 등등... 정리해놓아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데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해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이젠 마음도 몸도 따라주지 않는다. 무기력해지고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초조해지기만하다. 게다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포기하고 체념에 사로잡힌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내가 나이 먹었다는 증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공기관이나 사회단체에서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임과 친구들이 있다. 또 웬만한 국내의 모든 산들은 올랐고, 아직도 무리하지 않은 범위에서는 남들을 따라 갈 수 있다. 그래서 산행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고맙게도 나를 그들의 산행에 동참시켜준다. 오늘 하실회에서 지리산 둘레길의 하나인 운봉~인월 구간 탐방에 함께 하였다. 지리산 바래봉과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면서 걷는 10km가 대부분 제방길과 임도로 지리산 둘레길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강물 따라난 제방길을 걸으면서 풋풋하고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 만끽하였다. 그리고 숙제처럼 남아 있던 일들 가운데 하나를 이루어낸 기분이다.

오늘 지리산 둘레길의 출발 지점은 운봉 읍사무소였다. 추수를 끝낸 만추의 들판, 봄여름의 비바람과 무더위를 이겨내고 풍성한 가을걷이로 무거운 짐을 훌훌 벗고 지금은 상큼한 흙살을 드러냈다. 강변과 제방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강물이 한가하게 흐른다. 들판을 지나 강물 위로 불어오는 지리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제방길을 걷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제방에는 일정 간격으로 심어놓은 벚나무들이 제법 자랐다. 벗나무들은 봄에는 아름다운 벚꽃길로 탐방객들의 마음을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여름에는 그늘을 드리워 따가운 햇볕을 가려줄 것이다.

이 구간에는 역사와 문화가 깃든 길이기도 하다.

고려말 우왕 6년에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조 10(1577) 운봉현감 박광옥이 세운 황산대첩비가 있었는데, 일제 때 일본이 파괴한 것을 1959년에 다시 재건해 놓은 것이라 한다. 비전마을에 황산대첩비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황산대첩비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운봉 읍사무소에서 4km되는 거리에 있는 비전마을은 또 남원 국악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비전 마을에는, 조선 순조 현종 철종 대에 명창으로, 계면조, 진양조의 완성, 메나리조 도입과 모든 가사를 집대성하여 판소리의 중시조라 불리며 가왕(歌王)의 칭호를 받았던 송흥록과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수궁가(水宮歌) 보유자로 지정받았던 국창 박초월의 생가(生家)가 있다. 생가의 뜰에 흘러나오는 박초월의 판소리를 들으면서 이분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로지 국악의 한길을 걸으면서 우리고유의 노래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난관을 이겨내야 했을까... 굳건한 의지와 남다른 노력을 우리는 흠모하고 배워야 할 것이다.

출발지점에서 6.6km 지점에 옥계저수지가 있다. 그 저수지 옆으로 난 길부터는 임도(林道)로 들어선다. 우리는 저수지 위쪽의 휴식처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임도를 따라 1km남짓 거리에 있는 흥부골로 들어섰다. 어떤 연유에서 이곳을 흥부골이라 이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흥부일가의 박타는 모습을 형상화한 석조 조각을 보면서 착한 심성과 선한 행실로 일관하는 흥부의 삶을 지향하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흥부골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무인판매가게가 있다. 우리는 거기에 들어가서 막걸리 두병을 먹고 나왔다. 흥부골에 들어서면 흥부처럼 모두 착한 심성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무인 판매 가게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모두 착한 흥부가 되어 나왔다. 무인판매가게에서 다시 산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약 10분 남짓 걸어서 내려왔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인월에 도착하였다. 운봉 읍사무소 앞에서 10시에 출발하여 인월면 목적지에 정각 13시에 도착하였다.

오늘 지리산 둘레길 탐방은 금년에 지금까지 미뤘던 숙제를 하나 해결한 것 같은 기분이다. 둘레길 탐방을 마치고 식당에 들려 산나물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막걸리도 맛있게 마시고...

오늘 탐방했던 곳은 생소한 지역이라 무언가 내 호기심을 꽉 채워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피고 각인 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이젠 늙어서 총기가 빠져버려 본 것도 돌아서면 그 모습들이 희미하게 뭉개진다. 본 것과 느꼈던 것들은 많은 것 같은데,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때 그 때 메모를 해 두어야 하는데....

돌아오는 버스에서 바라보이는 들녘은 추수가 끝나고 텅 비어 있었다. 만추의 고즈넉한 농촌은 지금 조용히 겨울과 내년 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는 것 같다. 좌우에 나타나는 산들은 홍엽으로 붉게 타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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