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정월 대보름날
정월 대보름날은 오곡 찰밥을 해 먹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육이오 사변이 나기 전 백신2리 윗마을 정월 대보름날의 마을 풍속도가 주마등같이 뇌를 스친다.
음력 15일 새벽에는 마을을 대표하는 제사장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
정월 대보름에 앞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정월대보름 새벽에 당산제를 지낼 일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당산제를 주제할 제사장을 선정한다.
제사장은 마을의 원로로 덕망이 있고 지난 1년 동안 무탈하게 집안을 다스린 분으로, 집안에 상을 당하지 않았고, 집안 식구 중 어느 한 사람이 집을 떠나 소식이 없거나 질환을 앓은 사람이 없어야 했다.
제사장에 선정된 어른은 그날부터 마을 제사가 끝나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져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 그래서 제사장의 집에는 제사장으로 선정된 날부터 당산제가 끝날 때까지 금줄을 쳐놓고 그 집 출입구와 집 둘레에는 적토(赤土)를 뿌려놓고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였다. 제사장은 물론 그 집 식구들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정월 대보름 자시(子時)가 지나면 제사장은 장만한 음식을 가지고 당산으로 가져가서 마을 사람들을 대표하여 마을의 수호신께 지난 일 년 마을을 지켜주신 것에 대해감사 드리고, 마을전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가가호호 호주의 성명을 낭독하여 마을 수호신의 음덕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린다. 마을 수호신에 대한 당산제사가 끝나면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우물로 간다. 우물 앞에 제수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에 드는 비용은 각 가정에서 염출했으며 당산제가 끝나면 그날 낮에 마을 사람들이 제사장의 집으로 모여와서 제사 음식과 술을 나눠 먹고 농악으로 흥을 돋우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위쪽에 큰 느티나무와 버드나무가 있고 돌무더기가 있는 곳이었다. 돌무더기를 정리하여 돌담을 치고 그 가운데 마을의 수호신격인 금줄을 쳐놓은 큰 돌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마을 제사를 지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거기에 가까이 가면 어른들로부터 제재를 당하였다. 1970년대 초 고향 마을을 찾아갔더니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미신타파의 일환으로 느티나무도 버드나무도 사라졌고 마을 수호신격인 돌도 모두 없앴다고 하였다.
정월 대보름 전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 안팎을 대청소를 하고 장정들은 당산제를 지낼 곳과 하나뿐인 마을 공동우물 대청소를 하였다.
특히 당산제에 쓸 제사음식을 장만하는데 쓰는 우물물 정화(淨化)하기 위하여 우물물을 다 퍼내고 우물 안을 깨끗하게 씻어내어 새물이 차올라오게 하였다. 우물 정화가 끝나면 금줄을 쳐놓고 보름날 새벽에 제사장이 우물에서 제사가 끝날 때까지 사용을 금하였다.
집집마다 필요한 물은 우물 청소를 하기 전에 모두 길러 놓아야 했다.
그리고 제사장이 우물 앞에서의 제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제사장의 안식구가 우물로 나와 물을 길어 간다. 제사장 식구의 모습이 사라지면 바로 이어서 마을 아낙네들이 다투어 물동이를 이고 우물로 나와 정화(淨化)된 우물을 길러서 집으로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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