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

2018.01.31. (수) 구름이 많았음

어르신네 2018. 1. 31. 23:04

2018.01.31. () 구름이 많았음

오늘은 서울 명동에 가서 고등학교 때 같이 자취하였던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을지로 입구에서 명동으로 들어가다가 옛 내무부가 있던 곳에 동상이 있어서 살펴보았더니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었다.

나석주 의사는 19261228일 일제가 우리 민족을 침략하고 민족의 재산을 강탈하던 일제의 동양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경찰들과 맞서 총격전을 벌이다가 자결한 독립운동가이다.

 

 

 

나석주(羅錫疇)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의열단원으로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했다(동척투탄의거). 아버지는 병헌(秉憲)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재령 명신학교(明信學校)에서 2년간 공부한 뒤 농사를 짓다가, 1913년 간도로 이주했다.

간도 뤄쯔거우[羅子溝]의 무관학교에서 4년간 군사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황해도 겸이포(兼二浦)에서 상업을 하며 항일공작원으로 일했다. 1919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다. 석방된 뒤 정미업을 하며 비밀항일결사를 조직,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모금하여 보내고 대한독립단원들과 황해도 일대에서 친일파 숙청공작에 크게 활약했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19209월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뒤 임시정부 경무국 경비원으로 일했으며, 1923년 허난 성[河南省]의 중국 육군군관단강습소를 졸업하고 중국군 장교로 복무했다.

1925년 상하이로 돌아와 1926년 유자명의 소개로 톈진[天津]에서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했다. 19266월 톈진에 체류중이던 유림대표 김창숙(金昌淑)과 모의하여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 국내에 들어와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었다. 일본경찰의 추격을 받자 총격전을 벌인 끝에 다바타[田畑唯次] 등을 사살, 탄환이 떨어지자 자결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출처 다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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