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쉬트>
2005년 10월 20일 (목) 구름
오전 날씨가 잔뜩 흐리고 바람도 세찼다.
오늘 테헤란으로 가는 버스표를 사야 하는데 어저께 저녁에 버스 회사를 찾아보았으나 영어 간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그냥 돌아왔었다. 여행 안내서에는 Shohade Sq주위에 있다고 하였으나 간판이 모두 아랍어로만 쓰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였다. 그래서 여관 지배인에게 버스 회사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었더니 우체국을 가리켜 주는 게 아닌가. 우체국 건물 안에 버스 회사도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우체국을 찾아 갔다가 창피만 당하였다. 그래서 우체국 옆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갔다. 만나는 경관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한 경찰관이 나를 건물의 이층 어느 사무실로 안내했는데, 그 사무실에 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 같았다. 그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 여행 목적이 무엇이냐, 직업이 무엇이냐,’
하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내가 테헤란 행 버스 티켓을 사고 싶은데 모든 간판이 아랍어로만 쓰여 있어서 버스 회사를 찾을 수 없다고 하자, 자기 부하인 듯한 경관을 불러 나를 버스 오피스로 데려다 주게 하였다. 이란 경찰은 참 친절하다. 경찰관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우체국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나는 어저께와 오늘 아침에 그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그곳이 버스 회사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테헤란 행 버스는 오늘 저녁 12시에 사무실 앞에서 출발한다고 하였다.
오후 2시에 체크아웃하고 짐을 여관 프런트에 맡겼다. 테헤란 행 버스를 탈 시간이 앞으로 10시간 남았다. 마땅한 구경거리가 없는 곳이라 시간을 보내기가 난감하였다. 여관에서 큰 거리로 나와서 아침에 돌아다니다가 본 공원을 찾아 갔다. 공원에 앉아서 영어 단편 소설집 을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었다. 두어 시간 읽고 나니 지루하고 하품이 나와서 책읽기도 귀찮았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공원에 심은 꽃나무가 모두 무궁화였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과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외면을 당하고 있는데, 이곳 카스피 해 연안 도시 라쉬트(Rasht)의 한 공원에서는 후대 받는 것을 보고 반가우면서도 마음으로는 부끄러웠다.
공원에서 나와 무작정 시내 쪽으로 나갔다.
시내에 대한 아무 정보는 없었지만 시간을 소비할 요량으로 거리를 돌아다녀보기로 하였다. Shohade Sq에서 우측으로 바자르를 끼고 난 큰 길을 따라 갔다. 500m 남짓하게 가니 십자로가 나타났다. 십자로에서 우측으로 꺾어지는 길은 공원처럼 조성해 놓은 길인데, 차도 중앙과 양쪽 인도에 야자수를 심어놓아 운치가 있었다. 거리도 깨끗하고 길 양편에 늘어선 건물이 육중하고 윈도우에 진열한 상품들도 고급스럽다. 특히 삼성과 LG 제품들이 가장 대접받는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보니 마음 뿌듯하였다.
거리를 한 시간 이상 걸어 다녔다. 다리가 아프고 시장기도 돌았다. 게다가 날씨도 흐려 거리가 어두운데다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심상찮아 Shohade Sq쪽으로 되돌아 왔다. 오면서 저녁밥을 사먹으려고 음식점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낮에 공원 옆에서 보았던 햄버거 집을 찾아갔다. 햄버거 집은 6시 이후에 연다고 하여 다시 거리를 한바퀴 돌아서 6시 30분에 찾아 갔더니 그사이에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햄버거 집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대학생들 같았다.
햄버거로 저녁 식사를 대신하고 여관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여관 지배인에게 버스 탈 시간까지 로비에서 쉬겠다고는 허락을 받고 앉아 있는데 이 여관에 묵고 있는 젊은이들이 로비로 나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오곤 하였다. 그 중에 타브리즈에서 의과대학에 다닌다는 학생이 나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접근해 왔다. 그는 나에게 한국의 경제적인 면에 대해서 많이 물어왔다. 그리고 나의 직업, 연봉, 자가용 소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어떤 이란인이 칼을 가지고 와서 100,000R에 사라고 졸라댔다. 타브리즈에서 온 의과대학생이 그를 물리쳐 주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플래시를 단 커다란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일본제라면서 120,00R에 사라고 했다. 나도 사진기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내 사진기를 보자고 하여 보여주었다. 나의 디지털 카메라를 살펴보더니, 나의 디지털 카메라에 50,000R을 더 보태어서 자기 카메라와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 때 의과대학생이 나서서 나의 디지털 카메라가 그 아날로그 카메라보다도 값이 더나가고 사진도 다양하게 찍을 수 있다고 설명을 해 준 모양이다. 그의 말을 들은 다음에야 고개를 흔들면서 슬그머니 자기 물건을 거두어 갔다. 그들과 그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흘러 11시가 되었다.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버스 회사로 가서 테헤란 행 밤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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