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매다<74> 시리아의 알레포

어르신네 2006. 11. 21. 09:43
 


시리아의 알레포(Allepo : 아라비아어로는 Halab)


2005년 12월 31일(토) 흐림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몸이 무겁다. 체조를 하고 샤워를 하였는데도 몸이 뻐근하고 머리가 맑지 않다. 하여간 정상이 아니다.

음식점에 가서 아침 먹거리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엽서를 부치고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손녀들이 내 엽서를 받아보고 기뻐할 모습이 떠오른다. 지영이는 의젓해지고, 지민이는 생각이 깊어지고, 지오는 조금 더 꾀가 들고 지은이는 말을 잘 배우고 있으면 좋겠다. 나의 사랑하는 손녀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니 마음에서 기쁨이 흐른다.

오늘은 2005년 마지막 날 조용히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또 다가오는 새해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알레포(Allepo : Halab)는 터키어로는 Halep이다. 알레포는 시리아 북부 제1의 도시이자 할라브 주(州)의 주도(州都)로서 아라비아 이름은 할라브(Halab)이다.

해발고도 400 m의 고원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후는 대륙성이지만 살기에 무난하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 비가 오며, 연강수량은 400 mm이다.

이스탄불~바그다드 철도가 통과하고, 베이루트· 다마스쿠스와도 철도·도로로 연결되었으며, 예로부터 동서교통의 요지가 되어 무역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였다.

알레포는 BC 2000~1000년 사이에 히타이트, 미타니 왕조, 이집트 등에게 차례로 지배를 받았다. 지중해 연안지역과 동방을 잇는 고대 대상로의 관문으로서 BC 6~4세기에는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BC 1세기에는 고대 로마의 한 주였던 시리아에 흡수·통합되었다. 비잔틴 제국 치하에서 번영을 누리던 알레포는 637년 아랍인들에게 정복되었고, 1516년에는 오스만투르크에 합병되어 18세기말까지 번성했으며, 20세기에 다마스쿠스와 쌍벽을 이루는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목화의 대집산지이며, 견직물과 면직물의 제조 및 식품가공·양모·담배·시멘트·방적 등의 공업이 성하다. 시내에는 시리아대학의 분교를 비롯하여 라스샴라와 마리에서 출토된 유물을 간직한 박물관이 있으며, 옛 시가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오리엔트풍의 큰 시장과 12세기에 건조된 비잔틴 시대의 성채가 있다. 이슬람 교회도 많으며 최대의 것은 715년에 건조된 자미자카리야이다. 또 알피르다우스 교회(낙원의 교실)는 시리아의 중세 건축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유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출처 : 백과사전>--


오늘은 좀 무리하게 다녔다.

아침나절에 우편물을 부치고 바로 걸어서 알레포 성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박물관을 찾았다. 저녁에는 시장 돌아보았다. 

알레포 성으로 가는 길에서 노후 차량들이 일으키는 먼지와 매연이 목을 아프게 하고, 코 안에 시커먼 덩어리가 맺히는 것 같았다.

길가에 모스크(자미)에 들어가서 좀 쉬었다. 자미 안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기도는 참으로 경건하고 진실해 보였다.


알레포성을 찾아가는 길을 지도를 보면서 따라갔는데 사실은 먼 길로 돌아갔다.

알레포성은 도시 한가운데 높이 솟아있는 성채이다. 이 성은 자연지형을 이용한 것인지 해자(垓字)를 파서 올린 흙으로 만든 성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이 평지에 갑자기 우뚝 솟은 산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깊은 해자를 파서 끌어올린 흙과 다른 곳에서 날라다가 쌓은 성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채 안은 모두 파괴되어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석축과 석조건물의 내부가 보존된 곳이 있어서, 당시 성채 안에서의 삶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벽면의 육중한 바위덩어리들을 보니 이 높이 솟은 성채는 인력으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긴 언덕에 인력을 들여 만든 성채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적인 장비로 役事한다하여도 많은 시간과 인력과 장비들이 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오로지 인력에 의존하여 성채를 이룩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끔찍스러운 일이었다. 


성채로 들어가는 성문이 하나밖에 없다.

성채에 오르는 계단의 상단부의 성문은 여느 성채의 성문과 마찬가지로, 견고하고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된 길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성문은 잘 보존이 되었으나 내부의 대회의장은 중건한 것으로 보였다. 성 내부는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이라 어수선하였다.


성벽에 붙어 서서 알레포 시내를 바라보는 경치가 좋았다. 사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알레포 남단 지역은 공장 지대로 보였다. 공장지대에서 뿜어내는 검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시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공해와 먼지로 뒤덮인 듯한 알레포를 잿빛도시라 하면 좀 지나친 평가일까.


성채를 내려와서 다시 시내로 왔다.

시내를 들어오는 길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 가운데는 지금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어린이가 조건이 열악한 일터에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어린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할 터인데, 저렇게 일터에서, 그것도 먼지가 이는 불결한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오후에는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박물관 입구에 화강암의 입상 넷이 버티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1층 우측에는 선인류(先人類)의 하나인 안데르센 인의 유골이 전시되어있는데 소년으로 추정하였다. 기원전의 것을 출토한 각종 원시적 도구와 토기 그리고 청동제품들이 무수히 전시되었다.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귀중한 것들인데, 보관 관리가 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각종 석상들, 유골들, 석관, 인물상들 그리고 최근에 팔미라에서 출토되었다는 석물들의 전시물을 보고 나왔다.


박물관에서 나와서 그리스도교 지역을 돌아보았다. 그리스도 지역은 아침에 성체를 찾아가면서 보았던 이슬람 사람들의 지역보다는 집과 거리가 깨끗해보였다.

처음 들린 곳은 성당이었다.

늦은 시각이라 성당내부를 살펴보고 바삐 나와 신 시장을 들러보았다.

신 시장은 그런대로 깨끗하고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세련되어 보였다.


2005년 마지막 날 밤을 이국의 낯선 땅 알레포의 여관방에서 혼자서 쓸쓸하게 보내는 것이 좀 따분하여 맥주를 한 병 사서 마셨다.


내일 2006년 1월 1일에는 지중해의 도시 라타키아(Lattakia)로 갈 예정이다.

 

다음 사진은 알레포 성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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