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타키아(Latakia)
2006년 1월 1일 (일) 오전에는 맑음, 오후에는 짙은 구름
밤새도록 떠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에 선잠을 잔 것 같다. 목에 가래가 자꾸 생기고 가슴이 답답하고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오늘이 새해 첫날 컨디션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다.
여하간 최선을 다해 조심하고 건강을 잘 다스려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늘은 알레포에서 라타키아(Latakia)로 왔다. 지중해변 도시라서 마음이 끌려서 왔다.
아침 7시 조금 못되어서 여관을 나와 택시 타고 알레포 기차역에 갔다. 역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대부분 남루해보였다.
시리아 사람들의 힘겨운 삶의 한 단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역사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 호기심어린 눈으로 동양인인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알레포에서 라타키아까지의 기차요금이 50파운드였다. 1번 홈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차를 타려고 나가는데 신분증과 짐 검사를 하였다. 사복을 입은 자가 자기의 신분증을 보이면서 나의 패스포드와 기차표를 보이라고 하였다. 부쿠레슈티에서 당한 일이 머리에 떠올라 약감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내 옆 사람도 검사를 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패스포드를 보였다.
열차는 7시 55분 정시에 출발하였다. 차 안에 손님이 별로 없다. 1월 1일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가? 한 젊은이가 내 앞자리에 와 앉아서 말을 붙였다.
그의 관심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월급이 얼마냐, 학비는 얼마나 드느냐, 미국과 부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국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 중 어느 것이냐, 종교는 무엇이냐 등등....
이스탄불의 동양여관에서 어떤 여행자가 ‘시리아나 요르단에 가서는 종교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불교라고 하거나 그리스도교일 경우에는 없다고 하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천주교를 믿는 나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 ‘종교가 없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눈이 동그래져서 ‘정말이냐, 종교가 없으면 죽은 다음 세계가 걱정되지 않느냐, 종교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면서 옆 사람들에게 ‘내가 종교가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광고를 하는 모양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나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면서 ‘정말 종교가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부근에 앉았던 두 사람이 내 자리 앞과 옆으로 와 앉으면서 또 질문공세였다. 나이가 몇이냐, 아내가 있느냐, 아내가 몇 명이냐, 자녀가 몇이냐 등등 시시콜콜한 것을 계속 물어왔다.
내가 아내는 하나밖에 없다고 했더니, 내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을 가리키면서 이 분은 마누라가 네 명이고 자녀가 14명이라고 하여 박장대소하였다.
나의 앞자리로 옮겨 앉은 Shahme라는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농장 일을 도고 있다면서 7남매인데 sister 4명 brother가 3명이라 하였다. 자기 농장은 다양하고 크다고 자랑하였다. 그리고 내가 종교가 없다고 한 것이 걱정이 되었던지 종교를 가져야 안심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죽어도 걱정이 없으니 종교는 꼭 가져야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증오심을 깊게 가지고 있었다. 지금 아랍민족에게 고통을 주어 자기들을 분노하게 만든 부시와 이스라엘의 사론은 자기가 죽어서라도 저승에서 꼭 복수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레바논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는 원래 한 나라였는데 프랑스가 아랍을 지배하면서 시리아 북쪽 일부는 터키에 때어주고, 프랑스가 물러가면서 지금처럼 레바논 시리아 사우디로 쪼개서 분쟁을 일으키게 하였다는 것이다. 서구사람들은 선대부터 자기들의 원수라고 열을 올렸다. 그는 열차에서 내릴 무렵 내 전화번호를 자기 수첩에 적고는 자기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적어주면서 라타키아에 갔다가 돌아올 때 자기 집에 꼭 들려서 놀다가 가라고......
처음에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Mustafa는 Shahme가 내려 간 후에 다시 질문을 해 왔다. 한국 돈의 명칭 무엇이냐, 한국 돈과 달러의 환율을 어떻게 되느냐, 한국 돈이 있으면 보여 달라 등등.... 그는 집이 알레포에 있고 라타키아에서 학교에 다니는데 영어가 전공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어 구사능력은 한계가 보였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오느라고 지루하지 않게 라타키아까지 올 수 있었다.
12경에 도착하였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 라타키아(Hotel Latakia)’에 25파운드나 지불하고 택시로 왔다.
여관이 썰렁하였다. 1박에 300파운드라 하였다. 짐을 풀고 주위를 살필 겸 점심식사를 해결하려고 나가 보았다. 오늘이 1월 1일이라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몇 군데는 열러 있어서 다행이었다. 길모퉁이 피자집에서 10파운드짜리 피자 두 개를 사가지고 들어와서 먹었다.
오후에는 바다구경을 하고 싶어서 서쪽으로 벋어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본 바다는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바다로 나가는 길은 걷기에는 좀 먼 거리였다. 40여분을 걸어가서 바닷가를 만났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바다에는 안개가 엷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멀리 미치지 않았다. 안탈랴에서 보았던 쪽빛 바다를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바다는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었다.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동안의 피로와 마음을 무겁게 했던 잡념을 바다에 훌훌 털어 던지고 싶었다.
바다는 언제나 힘찬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마음을 툭 트이게 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과 새로운 꿈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바다를 동경하고 만나고 싶어진다.
언덕 밑에 바람을 덜 받는 쪽에서 낚시꾼들이 열심히 고기를 낚고 있었다.
바다로 돌출한 전망이 좋은 곳은 모두 음식점들이 들어섰고 광장에는 놀이기구들을 설치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아름다운 자연을 해치는 흉물덩어리로 보였다. 해안 도로를 따라 1km정도를 걷다가 바닷바람이 너무 차가워 발길을 되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빵과 과일을 좀 사가지고 돌아왔다. 오늘이 새해 첫날인데 좀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고 싶었다.
이곳 라타키아는 그리 추운 곳은 아니다. 그래도 방안에 불을 넣지 않아 냉기가 돌았다. 그래서 목욕을 하면서 뜨거운 물에 몸을 덥게 했더니 한결 몸이 부드럽고 감기 기운도 좀 수그러드는 것 같고 기분도 좋았다.
저녁에는 주인 아들 녀석이 현대자동차 Accent를 사려고 신청해 놓았다고 자랑하였다. 내가 좋은 차라고 하니까 무척 좋아하였다. ‘Accent’가 무슨 뜻이냐고 하기에 그건 우리말이 아니고 프랑스 말이라 하였더니, 그는 ‘우리는 프랑스를 증오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차 ‘악센트’와는 상관이 없다면서 웃었다. 그리고 여기서 사려면 찻값 12,000$와 부대비용 1400$ 합계 13,400$을 주어야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그 값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제품이 훌륭하여 시리아 사람들이 좋아한다면서 나에게 은근히 한국을 칭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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