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세계를 헤매다<114> 인도 -부바네스와르(Bhubaneshwar)

어르신네 2008. 1. 10. 23:37

부바네스와스(Bhubaneshwar)

 

2006년 3월 7일(화) 맑음

8시 50분 체크 아웃하고 첸나이 중앙역으로 가는데 한국학생을 만났다. 그는 2개월째 여행 중이며 곧 귀국한다고 하였다. 그와 함께 로칼 기차를 타고 Park station에서 내렸다. 그는 거기서 기차표를 사느라고 매표소로 가고 나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중앙역으로 바로 가는 바람에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9시 05분에 첸나이 중앙역을 출발하였다.

 

Seat와 Bed를 겸한 LB의 젊은이가 Seat를 독차지하고 앉아서 MB와 HB에 배정된 사람이 Seat를 사용하기 불편하였다. 젊은 놈이 자기만 알고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았다. 기차의 진행 방향을 등지고 안쪽에 앉아 있으니 밖을 내다보는 범위도 한정되어 창밖도 잘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역의 이름도 확인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LB의 젊은이가 자리를 깔고 자려는 것이었다. 앞쪽 사람들도 모두 자기가 자야 할 침대를 펴서 잠자리에 들어갔다. 나도 할 수 없이 침대를 펴고 올라가서 누웠다가 잠이 들었었다.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니 모두 Seat에 내려가 앉았다. 내가 내려가니 젊은 놈이 그제야 좌석을 내주었다.

나와 같은 칸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젊은이들로서 책을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인도에서 기차를 타면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외국인들에 대하여 대단한 호기심을 보인다. 그런데 오늘 내가 탄 칸에서는 모두 젊은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동양인 나에게 무관심하였다.

오늘 낮 동안 기차가 달려온 지역은 북위 10도 와 15도 사이로 몹시 더운 지역이었다. 차창 밖 끝없는 들녘에서는 모내기도 하고, 벼 수확도 하고, 심어놓은 모가 자라서 푸른 들판을 이루기도 하였다.

네 시경에는 하이데라바드로 연결되는 지점인 위자야와다(Vijayawada)라는 곳을 지났다.

5시 30분경에 해가 지고, 6시에는 들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저녁 식사는 열차에서 파는 달리를 사서 먹었다. 인도인들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주전부리를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먹던 음식을 땅에 떨어뜨려 놓고, 자리를 들고 나면서 밟기도 하고 짐을 넣어놓은 의자 밑으로 밀어 넣기도 하였다. 그걸 주워 먹느라고 바퀴 벌레와 쥐들이 종횡으로 설치고 다녔다.

9시 30분 모두 침대를 펴고 잠자리에 들었다. 10시경 소등하였다.

그런데 내 옆 침대의 사내는 맞은편 침대에서 자고 있는 자기 아내와 얘기를 주고받기가 이어졌다. 또 내 바로 밑에서 자는 젊은이는 침대를 펴고 눕더니 바로 잠들어 코골기 시작하였다. 또 내 옆 칸의 한 어린이가 잠자지 않고 발로 벽을 툭툭 쳤다. 11시가 지나도 부부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내 침대 밑에서 자는 자의 코고는 소리는 강도를 더해갔다. 옆의 어린이가 벽을 퉁퉁 치는 소리도 계속되었다.

모두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눈만 감고 있었다.

 

2006년 3월 8일(수) 맑음

도저히 잠잘 것 같지 않더니 언제 잠들었던지 4시 30분에 눈을 떴다.

부바네스와르 도착 예정 시간은 5시 10분인데 차는 같은 속도로 달렸다. 은근히 더 연착해 주었으면 했는데 겨우 1시간 정도 연착하여 6시 10분에 도착하였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삐끼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싸이클릭샤, 오토릭샤 택시 기사들이 집요하게 접근하였다. 나도 그들을 좋은 낯으로 대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감당하기가 귀찮고 기분까지 상하여 모두 물리치고 말았다. 그들은 몸에 밴 습관처럼 외국 여행객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기는 하겠지만 외국인인 나로서는 짜증만 났다. 한편 너무 매몰차게 그들을 대해 주었으니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Hotel Anand Inn(225루피)을 숙소로 정하였다.

부바네스와르에서는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투어(390루피)를 신청하였다.

9시에 시내에서 출발하여 넌던까넌 동물원(Nandankanan Zoological Park)으로 갔다. 동물원은 그런대로 구색을 갖췄다. 곰과 백범 각종 뱀 하마 원숭이 우랑우탕 코끼리 등등....

다음에는 동굴사원이 있는 우데기리 동굴(Udaigiri Khandagirl Caves)을 돌아보았다. 우데기리와 간데기리 동굴 사원은 젠교 수행자들을 위해 BC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였다. 동굴은 대부분 사암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데, 많은 조각들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작용으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며 또 많은 부분들이 무슬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우데기리 동굴 군(群)이 있는 산기슭 오른 쪽에 있는 2층의 왕비의 궁전동굴(Rani ka Naur)이 규모가 가장 크다. 정교한 조각들이 심하게 파손 당하였고 남아 있는 것들도 마모가 심하다.

코끼리 두 마리를 조각하여 양쪽 앞부분에 세워놓은 쪼다하티꿈빠(Chotahathi Gumpha)는 철책으로 앞을 막아놓았다. 아마 내부의 조각의 손상을 예방하기 위한 것 같다. 에로틱한 장면을 조각해 놓은 장면도 보였다. 이 동굴은 앞에서 보면 커다란 바위를 파고 만든 것이 꼭 한 채의 아담한 집과 같다.

산등성이 평평 바위 위에는 어떤 구조물이 세워졌던 장소로 보였다. 거기서 좌측으로 내려오다가 중간에 두껍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양의 바위를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두껍이 바위의 입안에 들어가 앉아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고 바빴다.

간데끼리 동굴은 별로 볼 것이 없는지 건너뛰었다.

다음에 링거라즈 만디르(Lingeraj Mandir)로 갔다.

사원에는 힌두교도만 입장하고 우리는 전망대에서 기부금을 내고 사원을 안을 살펴보라고 하여 힌두교도들이 돌아나올 때까지 그늘에 앉아 쉬었다.

다시 차를 타고 시 외곽지대에 있는 일본 불교 사원에 갔다. 부바네스와르 관광사업소는 이 일본 불교 사원을 자기들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돈 많은 일본의 힘이 느껴졌다. 시내 동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 넓게 자리 잡은 불교 사원은 탑처럼 높이 솟아 있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 사원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 먹고 나오는데 주인인지 직원인지 나보고 10루피를 더 내라는 것이었다. 내가 주문한 수프가 재료가 없어서 다른 것으로 했는데 그것은 값이 10루피가 더 나가는 것이라 하였다. 나쁜 놈들~. 불란서 부부는 주지 말라고 하였다. 안내원이 그 모습을 보고 미안했는지 내게 다가 와서 이런 식당을 소개해서 미안하다면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부바네스와르는 아름다운 도시이고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였다. 나는 더 말하기 귀찮아서 10루피를 더 주고 말았다.

 

버스는 다시 시내로 돌아와서 무크떼스와르 만디르(Mukteswar Mandir)로 갔다. 이 사원은

링가라즈 만디르보다 규모는 적지만 조각한 작품들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조각에는 불교 젠교 힌두교 형식이 혼합된 것이라 한다. 사원 내부에도 빈틈없이 조각을 하였다. 천장의 조각들은 아주 미세하고 복잡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어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원입구에는 아름다운 아치형 또렌나(torana-천장도리)가 있다. 옆에 있는 다른 사원 건물들도 돌아보고 싶은데 외형만 슬쩍 보고 그냥 지나쳤다.

 

다음에는 박물관에 들어갔다.

부바네스와르 일대 및 오리싸(Orissa) 주에서 수집한 유물과 각종 조각품들이 정교한 모습으로 진열되었고 코인을 비롯하여 주로 오리싸주에서의 특산품인 수공예품들이 전시되었다. 박물관의 소장품 내용은 비교적 충실한 것 같았다.

오늘은 투어 마지막인 박물관에 왔을 때에는 거의 녹초가 되었었다. 어제 밤새도록 기차에 시달리면서 잠도 부족했는데 오늘 오후가 되니까 피로와 졸음이 겹쳐서 무척 힘든 하루였다. 여관으로 돌아와서 저녁에는 맥주 한 병을 사서 마시고 자려고 하는데 매니저 녀석이 뒤따라와서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한국에 가서 비즈니스나 사무직으로 일 할 수 있는가, 보수는 얼마 정도 받을 수 있는가,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었으며 보수는 얼마인가, 그리고 자기가 한국에 가면 당신이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가 등등 많은 것을 물었다. 그는 한국에 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만약 네가 한국에 오게 되면 나에게 연락하라.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힘껏 도와주겠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나라에 너무 환상적인 생각을 가지지 말라 한국에도 실업자가 많다.>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는 할 수 없어서 올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아보아라. 그리고 work permit를 받아서 오는 것이 취업의 확실한 길이다. 말과 필담을 나누면서 꾀나 긴 시간을 보냈다. 11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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