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동남아 여행.33 - 만달레이(Mandalay)

어르신네 2009. 7. 11. 00:59

 

만달레이(Mandalay)

2009년 5월 2일(토) 맑음

만달레이 언덕(Mandalay hill)에서 바라본 왕궁 - 물이 가득한 해자가 보인다

 

오늘은 바간에서 만달레이(Mandalay)로 왔다.

바간에서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만달레이로 이동 차비를 하였다. 여관에 버스를 예매하였더니 6500짯을 받고 로칼 미니버스에 태워주었다. 버스가 낡았고 좌석도 좁아서 불편하였다.

버스 정거장이 따로 없고 길 중간에서 사람이 손을 들면 태워주고 또 내릴 사람이 말만 하면 아무데서나 차를 세워 하차시켰다.

차 안이 만원이 되니까 젊은 남자들은 차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앉고 아녀자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차 안으로 들어앉게 하였다. 1950년대 우리나라 6.25 전쟁 때 열차의 지붕에 올라앉거나 트럭에 매달려 피난 가던 모습과 흡사하였다.

바간에서 나오는 길은 정말로 엉망이다. 이 길을 양곤에서 바간에 들어갈 때는 한밤중이라서 이렇게 엉망인 줄은 몰랐다. 중간중간 길을 보수하는 것이 보였지만, 공사 현장을 지나오면서 도로를 보수하는 공사를 보니, 장비는 열악하고 대부분 사람의 힘에 의하여 공사가 이루어지니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도로를 보수하지 않고 오랜 기간 방치해 두어서 파손된 포장길 위를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차량들이 파손된 포장길 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예 포장하지 않은 갓길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렸다.

그리고 미얀마에는 신형 자동차는 볼 수가 없었다. 모든 자동차들이 중고차라서 매연을 달고 다닌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차체(車體)는 태국처럼 운전석이 좌측에 있고 타고내리는 출입문은 우측에 있는데 통행은 우리나라처럼 차량이 우측통행을 한다. 그래서 사람이 도로 한 가운데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게 된다. 버스에는 운전수와 조수가 있는데, 조수와 운전수는 일정한 구간을 운행하고 나서는 서로 역할을 바꿨다.

그런데 조수 한 사람은 바간에서 만달레이에 도착할 때까지 7시간을 출입문틀에 매달려서 마주 오는 차나 앞서 가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사람에게 길을 터주라고 신호를 보내거나 고함을 친다. 괴력의 사나이 같다. 그것은 내가 탔던 버스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버스에서는 하나같이 조수가 출입문틀에 매달러 그렇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전통 공예품

바간은 사막지대이다. 야자수가 삭막한 사막지역을 그런대로 운치 있게 만들어주었다. 가로(街路)에는 선인장들이 도열하였고 광활한 사막에는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의 풍치가 볼 만하다. 날씨가 건조하여 맨살의 땅이 많이 들어나 보였고 사막 가운데로 흐르는 도랑에는 물이 말라붙었거나 극히 적은 양의 물이 흐를 뿐이었다.

 

바간에서 4시간 정도 달려와서 정차했던 곳은 Meikhtilar이었다. 메틸라는 양곤과 만달레이의 중간 지점에 있는 도시다. 양곤에서 바간과 인레를 가려면 이 메틸라에서 바간은 좌측으로 인레는 우측으로 갈라진다. 양곤에서 만달레이까지의 도로는 다른 지역으로 나 있는 도로보다는 양호하다. 포장도 그런대로 잘 되었고 어떤 구간은 4차선으로 시원하게 잘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미얀마의 차량들은 거의가 고물이라서 속도를 내지 못한다. 메틸라에서 만달레이까지 3시간 소요되었다.

만달레이 시외 터미널에서 내리니 삐끼들이 달라붙었다. E.T여관에서 픽업을 해주기로 했는데 픽업을 나온 사람이 없었다. E.T 여관에 전화를 했더니 사람이 나갔다고 하는데 기다려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오토바이를 타고 Garden Hotel로 갔다. E.T 여관에서 나를 픽업하러 보냈다는 사람이 거기에서 내 이름의 표찰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내가 버스에서 내릴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 그는 미안하다면서 내일과 모래 이틀간 오토바이로 싼 값으로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려고 부근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 여관 골목에는 얼굴 모습이 서구적인 사람들(인도계통)이 많이 보였다. 한 골목이 완전히 그런 사람들이었다.

 

 2009년 5월 3일(일) 비 오후 갬

만달레이는 이라와디 강변에 자리잡은 미얀마의 옛 수도였다.

만들레이는 미얀마에서 양곤 다음으로 큰 제2의 도시이며, 미얀마의 중앙부에 위치한 덕분에 철도, 도로, 비행기, 강을 운항하는 기선 등을 이용한 내륙교통과 교역로의 중심지가 되었다. 만달레이는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푸라를 대신하는 수도로 건설한 도시이다. 미얀마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으며 1885년 11월 영국군에게 함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되어 거의 전부가 파괴되었고, 영국이 재점령했던 1945년 3월, 12일의 포위기간 동안 최악의 손상을 입었다.

미얀마 불멸의 심장'을 뜻하는 만달레이에는 불교신자가 많으며 중요한 불교중심지로서 수많은 승려들의 본고장이다. 

 

오늘은 만달레이 외곽의 유적지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어저께 오토바이를 예약하면서 9시에 출발하기로 하였는데 이 녀석이 아침부터 굼뜨게 행동한다.

그런데 하늘에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외곽지대의 첫 번째 코스인 마하간다요를 향하여 가던 중 호수 옆을 지나가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길가 움막집에서 비를 긋고 있는데 길 건너에 있는 한 집에서 자기들 집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 부어 도저히 길을 건널 수 없었다. 그 집 남자가 우산과 우비를 가지고 건너와서 우리 둘을 데리고 자기들 집 안으로 안내했다. 그 집도 움막같은 집인데 거기에 3가구가 각각 방 하나씩 차지하여 사는 공동 주택이다. 그들은 이국인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친절히 대해주었다. 자기들이 앉았던 의자의 물기를 걷어내고 내게 주었으며 따뜻한 녹차를 끓여 주기도 했다.

 

비를 긋게 해준 가족

 

비가 줄기차게 내렸으며 쉽게 그치지 않았다. 남자 한 분이 내가 자꾸 걱정스럽게 하늘을 쳐다보니까 한 시간 이내에 비가 그칠 것이라면서 내 마음을 달래 주기도 하였다. 비는 한 시간을 지나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초초해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연신 차를 잔에 부어주고 또 생선 튀김을 내어놓기도 하였다. 2시간 동안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비가 그친 것이 아니라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계속 내렸다.

마냥 이 집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비를 맞더라도 여관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집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와서 오토바이 뒤에 타고 비를 맞으면서 시내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도로가 침수된 곳도 있고 도로에 괴였던 물이 잦아들면서 가라앉은 부유물들이 어지럽게 거리에 널려 있기도 하였다.

여관에 돌아와서 옷을 벗어 빨고 몸에 튀긴 흙탕물을 말끔히 씻어냈다.

 

오후는 날이 괴었다. 3시에 다시 오토바이 기사를 불러서 만달레이 성으로 가자고 하였다.

만달레이 성(Mandalay Palace)은 민돈왕에 의해 1859년 완성되었으며 성의 한 변의 길이가 3km이고 성벽 높이가 8m, 해자의 폭이 70m 해자의 깊이는 3m에 이르는 견고한 성이다. 성을 싸고 도는 해자가 강(江)가 같은 느낌을 준다. 

 1945년 영국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로 성벽만 남고 모조리 다 타버렸다. 현재는 민돈 왕이 거주하던 곳만 복원해 놓고 관광객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콩바웅 민돈 황제의 거처지

 

사전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팔라스(Palace)에 들어가면 풍성한 볼거리가 있을 줄 알았다. 해자를 건너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군인들이 행인들을 검문하였다. 검문소를 지나 입장료(10$)를 내고 숲길을 한참 달려가니 앞에 높은 탑이 우뚝 서 있는데, 그것이 꽁바웅 왕조의 마지막 왕인 민돈왕이 거주했던 왕궁이다. 중요 건물마다 실내에는 옥좌가 있고 그 옥좌에는 민돈왕이 앉아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궁전 한쪽에 전망대가 있어서 올라가보았다. 현재의 왕궁 건물을 한눈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높은 탑이 있는 건물이 가장 웅장하게 보였고 왕궁 정중앙에도 크고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밖의 건물들은 대체로 비슷하였다. 전체적으로 좀 단조롭고 얼핏 보면 급조한 건물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왕궁은 성(城) 안의 극히 일부분이고 성안의 그 광활한 지역은 숲으로 덥혔으며 숲속에 건물들이 숨바꼭질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광객이 관람할 수 있는 민돈왕이 거주했던 왕궁 이외의 성안은 군사보호지역이라서 성내의 통행을 극도로 제한한다고 한다.

 

만달레이 성을 나와서 민돈 왕궁의 일부였다는 쉐난도우 사원으로 갔다.

 

쉐난도우 사원

 

건물이 시커먼 칠이 되었고 또 그 앞에 큰 사원으로 가는 길옆에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내부에 들어가니 기둥, 벽면, 문, 난간과 천정에까지 어느 한곳 빈틈없이 정교한 부처님과 불교 관련 그림을 양각해 놓았다. 이 목조 건축물은 상당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민돈 왕이 죽고 그 아들 티보 왕이 왕궁에서 이 건축물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달레이 성 안에 있던 모든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민돈왕 당시의 건축물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왕실지정 불사였던 Kuthondaw Paya로 갔다. 말달레이 언덕 발치에 있는 이 사원의 중앙에는 대형 황금색 파고다의 종탑이 높이 솟아있고 그 사방으로 부처님을 모신 사당이 하나씩 있다. 이 대형 종탑 둘레 광장에는 729개의 흰 석탑이 있는데 각 석탑 안에 미얀마 불교도들이 개정·정선(精選)하여 정통경전으로 받드는 불교경전들을 기록한 석판이 있다. 민돈 왕 때 제5차 불교도회의에서 다음어진 불교경전을 영구히 보전하기 위하여 729개의 석판에 새겨 그 하나하나를 흰 석탑 안에 세워놓은 것이다.

 

 Kuthondaw Paya

 

Kathondaw 인근의 산다무니(Sandamui) 파고다에도 중앙에 황금색 대형 파고다가 있고, 역시 경전을 새긴 석판이 들어있는 1774개의 흰 석탑들이 중앙 황금색 파고다를 애워싸고 있다.  

 

사다무니 파고다의 석답들

사다무니 파고다의 석판에 경정을 새겨 둔것

 

만달레이 언덕에 올랐다.

계단을 따라 오르고 또 올랐다. 만달레이 시내와 Palace가 한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지켜보려고 이 언덕에 올라온 것 같았다.

 

만달레이 힐의 입불상

 

만달레이 언덕을 오르는데 한참 올라갔다고 생각되는 곳에  큰 부처님 상이 정면에 보이기에 거기가 끝인가 올라가서 돌아보면 또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러기를 여러 차례..... 지루하게 올라갔다. 맨 꼭대기 대형 부쳐상을 모셔놓은 광장을 타일로 깔아놓았다. 미얀마 사람들의 부처님 공경하는 마음이 한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어디에 가나 부처상이 있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정성을 다하여 불공을 드리는 경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여관에 돌아가기 위해서 일찍 언덕을 내려왔다.

 

   

2009녀 5월 4일 (월) 맑음

어저께 오토바이로 다녔더니 허리가 아프고 또 위험성도 느껴져 오늘은 경비를 더 들여 택시를 이용했다.(15,000짯). 그런데 차가 낡아서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 걱정되었으나 일정을 무사히 소화해 주었다.

오늘 돌아볼 곳으로 밍군을 얘기했더니 한결같이 밍군은 하루 일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마하간다욘 승원(Mahagandhayon Monastey), 바가야 승원, 사가잉 힐과 다른 파고다 한두 곳만 더 다니기로 했다.

처음 들린 곳은 각종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소수민족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과 장신구 그리고 불교 관련 소품들을 다양하게 갖춰놓았다. 값이 비싸도 하나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다음에는 Pa-To-taw Gyi에 들어가서 종탑을 오르는 계단을 타고 종탑 중간에 올라서 사방을 돌아보았다. 숲 위로 멀리 혹은 가까이에 있는 사원들의 첨탑이 파노라마를 이루었다.

 

사원을 나와서 마하간다욘 승원(僧院)으로 갔다.

이 승원은 1914년에 Janakbiramse라는 승려가 창설한 것인데 그분은 승려과 일반 신자들을 위한 불교 서적을 많이 저술한 분이기도 하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도 하는데 그 교육은 승려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어린이들이 모두 승복을 입었으며 일반인들의 후원금으로 혹은 자원봉사 등으로 운영된다.

이 곳은 미얀마 최대 규모의 승원으로, 1,000여명이 넘는 스님들의, 엄격한 교육장으로 유명한 사원이다.마하간다욘은 일종의 승가대학이다. 스님들이 빨리어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입학하며 한국인도 입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에게는 무엇보다 스님들의 긴 공양행렬이 볼 만한 광경이다. 아침 10시경까지는 승원에 도착해야 스님들에게 나누어 줄 음식 장만하는 모습과 이런 대규모의 공양행렬과 승려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10시 조금 전에 마하간다욘에 들어갔다.

대형 음식 만드는 공장에서 음식물들을 정결한 넓은 정원으로 옮겨놓았으며 일반인들이 빵과 과일 등을 가지고 와서 그 옆에 가지런히 배열해 놓았다. 그리고 마하간다욘 입구에서는 승려들이 바리를 옆구리에 끼고 일렬로 늘어섰다. 긴 행렬을 이룬 스님들이 정원으로 들어가서 노(老) 스님의 지휘하는 대로 음식물을  진열한 곳에서 공양을 받아 넓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간 승려들은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고 정좌했다가 기도가 끝난 다음 일제히 식사가 시작되었다.

 

  

스님들의 아침 공양 행렬

 

관광객들은 그 광경을 놓지지 않고 사진기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다음에는 우베인 (U- Bein)다리를 건너보았다.

 

우베인 (U- Bein)다리

우베인 다리에서 만난 연인들

 

베인 다리는 160년 전에 우베인이라는 사람이 만든 다리이다. 1.2km나 되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인데 다리의 재질은 티크목이다. 다리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계속 수리를 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다음에는 Bagaya Monastery에 가려고 남쪽으로 20여분 달려서 가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거기서는 호스 카(Horse Car)를 대놓고 5000짯을 받았다. 별로 볼 거리도 없는 곳에 와서 돈만 쓰고 왔다.

바가야 수도원은 Bagyidaw 왕 치세 때 세운 것이다. 이 수도원의 건축물은 고대 건축물의 상징이며, 몇 개 안 되는 예술적인 조각품들이 있는 미얀마 문화유산의 한 보고(寶庫)라는 평을 받는다.

수도원 안에서 어린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데 선생이 보이지 않고 어린이들만 앉아서 조용히 글을 쓰고 혹은 책을 보고 있었다. 너무 신통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파괴되어 흩어져 있는 유적지를 돌아다가 전망대에 올라서 주위를 살펴보고 마하 아웅 뭬 봉산(Mahar Aung Mye Bon San) 수도원을 갔다.

 

 마하 아웅 뭬 봉산(Mahar Aung Mye Bon San) 수도원

 

수도원 안이 동굴과 미로처럼 만들어졌다. 이 수도원은 바기이다우 왕의 왕비 Nanmadaw Me Nu에 의해서 1822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진에 의해 파손된 것을 1873년에 복원한 것인데, 이 수도원은 콩바웅 시대에서 가장 훌륭한 미얀마 건축양식에 해당된다고 한다.

 

배를 타는 곳에서 어린 소녀가 목걸이 팔아달라고 졸랐다. 그걸 못 팔아주어서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목걸이 파는 소녀

 

요즈음은 이곳이 너무 덥다. 그래서 기사에게 점심을 먹고 한숨 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식당 주인이 평상을 나무 그늘 아래 깔아주어서 한잠 잤다. 음식점 주인이 살갑고 참으로 고마웠다.

 

이번에는 Ayeyarwaddy 강을 가로지르는 새로 놓은 큰 다리를 건너서 Sagaing Hill로 갔다. 강을 건너면 만달레이 주가 아니라 사가잉 주라고 한다. 그러나 만달레이 생활권에 들어있는 지역이다. 산 입구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붉은 벽돌을 길에 깔았고, 만달레이 힐에 오르는 길처럼 지붕을 씌워 길게 연결하였다. 산에 오르는 동안 햇볕이나 우중에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상에는 커다란 파고다가 있고 정상의 파고다가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파고다를 거느리고 있는 듯하였다. 사가잉 힐의 정상 중앙의 대형 파고다의 광장에도 만달레이 힐처럼 타일로 덮어놓았다. 여기서는 외국인은 보이지 않고 현지인들만 보였다.

사가잉힐에서는 멀리 만달레이 시가지가 아스라이 보이며, 강과 주변의 호수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놓았다. 사가잉 힐을 올라 대형 불탑을 돌면서 산 아래를 바라보는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북쪽으로는 대형 사찰들이 산의 봉우리를 다 차지하여 그 사찰을 서로 연결하는 길과 그 길에 씌운 지붕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불탑을 만들어 놓아 길이 단조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한 형식의 사찰들이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남쪽에도 있고 또 다른 곳에서도 눈에 띄었다.

 언덕의 서쪽 바로 아래에 대형 불탑이 보였다. 언덕을 내려와서 기사에게 그곳을 들렸다가 가자고 하였더니, 이제는 자기가 해야할 임무는 돌아가는 것만 남았다고 하면서 완강히 거부하였다. 하긴 시간적으로도 그곳을 들리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사가잉 힐의 무법자들 

 

사가잉 힐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본 경관

 

사가잉 힐의 종탑

 

오늘도 강행군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운전기사가 파고다 한곳을 더 들려가겠다고 하는 것을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시내로 들어오자 매연이 숨을 쉬기 곤란할 정도로 심하다. 여관에 돌아와서 운전기사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주어서 1000쌋을 팁으로 주었다.

여관 리셉션에서 인례가는 버스 티켓을 받았다. 내일 오후 5시에 여관에서 픽업하여 터미널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