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산
2013.6.6(목) 맑음
6월 6일 현충일이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 그 공덕을 추모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야 할 날이다. 이 뜻 깊은 날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것보다 뜻있는 곳을 찾아 하루를 의의있게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구건서 교장과 함께 충(忠)의 고장 천안에 있는 광덕산을 가기로 하였다.
아침 8시경에 인천을 출발하여 천안에 도착하니 11시가 다 되었다. 천안역에서 600번 버스를 타고 광덕사(廣德寺)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12시에 가까웠다.
광덕사 입구
우리는 광덕산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길을 택하지 않고 돌아가더라도 오르기가 조금 편한 부용묘가 있는 길을 택하여 올라갔다.
운초 김부용은 평안도 성천 출생으로 황진이, 이매창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3대 시기(詩妓)로 불렸다고 한다. 그녀는 성천부사였던 김이양(1755~1845)의 소실로 들어가 양처가 되었으며 평생을 지조를 지켰다가 그의 무덤 옆에 묻힌 절개 높은 여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덕산에 오르는 길가에는 그녀를 기리는 기념비와 그녀의 시비(詩)碑도 보였다. 천안 문인협회에서는 지난 4월 21일 김부용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를 지냈다고 한다.
산마루에 올라서 정상을 향하여 걸어가다가 장군바위도 만났다. 그리 크지 않은 장군바위 옆의 푯말에 그 나름의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장군바위 옆에 세워놓은 광덕산 등산로 안내판
장군바위
정상봉우리가 있는 곳을 향하여 가는 광덕산 산마루 길은 완만하지 않고 험하진 않지만 작은 굴곡이 많아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였다. 우리는 넉넉하고 순후한 광덕산의 품을 느끼면서 산마루 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정상이 있는 봉우리로 향하였다. 울창한 숲을 헤치면서 광덕산 정상으로 가는 산마루 좌측은 천안시이고 우측은 아산시라고 한다. 우리는 산마루 길을 걸으면서 ‘오른 발은 아산시 땅을 딛고 왼발은 천안시 땅을 밟으면서 걷고 있다’는 우스갯말을 하였다. 6월 초순 광덕산 신록의 향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등산로를 걷는 이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광덕산 산마루 길
헬기장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이곳에 정상 “광덕산”이란 푯말이 보였다.
광덕산 정상 우측 경사면에는 떼죽나무로 생각되는 수목의 군락이 보였는데 이제 막 화사한 꽃을 활짝 피워 경사면을 하얗게 물들였다. 이 광덕산 정상의 순백의 아름다움은 6월 초순의 광덕산의 색다른 풍치를 이룬다.
헬기장 한 모퉁이에 세워놓은 광덕산 정상 푯말
광덕산 정상에서 아산시 쪽으로 내려다본 경관
떼죽나무 꽃이 만개하였다
산봉우리에 활짝 핀 떼죽나무 꽃
산을 오르느라고 고단한 몸을 쉬고 흐르는 땀을 식히려고 그늘 아래 너럭바위에 앉았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풋풋한 신록의 향기를 마시고 앉아 있자니 몸의 피로도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 상쾌하였다.
광덕산에는 오랜 세월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간직한 광덕사(廣德寺)가 있어서 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의의 있는 산행의 보람을 안겨준다. 게다가 조선조의 명시기(名詩妓)였던 부용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함께 담겨있다.
정상에서 내려가던 길에 만난 정자
정상에서 하산하던 길에서 만난 계단
정상에서 하산하던 길에서 만난 계단
하산하는 길에는 나무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계단의 모습도 장관을 이룬다. 계단을 타박타박 내려서 계곡으로 들어서니 좌측에는 광덕산 심장으로부터 맑은 물이 내를 이뤄 흐른다.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의 청량함이 내 마음을 더욱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광덕산의 심장에서 흘러내리는 냇물
하산하여 광덕사에 들렸다.
광덕사들어가자 좌측 산자락에 고목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오랜 세월을 지켜오면서 풍상을 굳건히 이겨내고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 아래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술이 울창한 마을을 보거나 오랜 나무를 보면 그 나무와 관련하여 그곳은 유서가 깊어서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런 나무를 만나면 그 앞에서 발길이 오랫동안 멈춰지곤 한다.
광덕사 대웅전 뒷편 산자락에 있는 수령 500년이 된 보호수 "느티나무 "
광덕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있다.
광덕사는 천오백여년 전 진덕여왕 6년에 자장(慈藏)이 창건된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가람이 옹기종기 배치되어 있어 아담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에 3층 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이 있다. 대웅전의 돌계단 양쪽에는 받침돌이 없이 돌 하나로 조각된 돌사자상(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52호)이 있다.
이 사찰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감역교지(減役敎旨; 보물 제1246호)라고 한다. 감역교지는 세조 3년(1457) 8월 세조가 안질 치료차 온양에 왔다가 광덕사에서 부처님 치아와 사리를 친견한 뒤 광덕사와 개천사(開天寺)의 부역을 면제시켜주고 위토전을 하사한다는 교지를 친서한 것이라 한다.
광덕사 대웅전
광덕사 사찰연혁
*정의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산에 있는 절.
*개설 ; 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역사적 변천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832년(흥덕왕 7) 진산(珍山)이 중수하였으며,
1344년(충혜왕 복위 5)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에서 가장 큰 절 중의 하나로서, 사찰소유 토지가 광덕면 전체에 이르렀고, 89개에 달하는 부속암자가 있었다. 또한, 누각이 8개, 종각이 9개, 만장각(萬藏閣)이 80칸, 천불전(千佛殿)도 3층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타버린 뒤 1598년(선조 31) 희묵(熙默)이 중수하였고,
1665년(현종 6) 석심(釋心)이 불상과 종을 개수하였으며,
1679년(숙종 6) 상민(尙敏)이 중창하였다.
대웅전과 천불전만이 중건된 채 1980년까지 사세가 계속 기울었다.
1981년에 대웅전과 종각 등을 신축하고 천불전도 증축하였으며, 그 앞으로 석교도 가설하였다.
1996년 철웅(哲雄)이 15년 동안의 불사를 마무리하여 대웅전·천불전·명부전·범종각·적선당·보화루 등을 중창하였다.
그러나 이 가운데 천불전은 1998년에 소실되었다.
*내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로 지정된 천불전 안에는 천불이 그려진 후불탱화(後佛幀畵) 3점이 있어, 전체 3,000불의 그림이 장엄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 이 탱화는 가로 28자, 세로 35자의 거대한 규모이다.
이 절에는 진산이 832년(흥덕왕 7)에 가져왔다는 불치(佛齒) 1매와 사리 10과,
승가리(僧伽梨) 1령(領)과 불좌(佛座) 1병 등을 비롯하여, 금·은·흑자로 된 『법화경』과 금자사적기(金字寺蹟記) 및 세조어첩(世祖御帖)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고
고려 말기의 사경(寫經)으로 추측되는 금은자법화경(金銀字法華經)은
비록 낙질본(落帙本: 한 질을 이루고 있는 책에서 권책 수가 빠진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권이 남아 있는데,
그 중 6책이 보물 제390호로 지정되어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269호와 제270호로 지정된 마곡사의 금은자법화경도 원래는 이 절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금자사적기는 다른 데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조선시대의 작품이며,
세조어첩은 1457년(세조 3) 세조가 온양 온천에 왔다가 이 절의 부처님 치아와 사리를 친견한 뒤, 광덕사와 개천사(開天寺)의 부역을 면제시켜주고, 위전(位田: 위토전)을 사급(賜給)한다는 교지를 친서한 것이다.
이 절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는 진산의 부도 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부도 4기가 있으며,
천불전 우측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또한, 이 절 일대에는 호도나무가 많기로 유명한데,
대웅전 앞에 있는 호도나무는 700여 년 전 유청신(柳淸臣)이 중국에서 처음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
<출처 : ? 인터넷에서>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 범종각 아래에 천연기념물 제398호인 호두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천안 공덕 출신인 영밀공 유청신(英密公 柳淸臣: ?∼1329)이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 임금을 수행하고 귀국할 때 중국이 원산지인 호두나무묘목을 가져와서 광덕사에 심었던 호두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 호도가 전래된 시초라고 주민들은 굳게 믿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현충일이라서 차분하게 집에서 하루를 보내려던 생각을 바꿔 천안 광덕산 산행을 택한 것은 오히려 보람된 하루가 되었다. 목숨을 바쳐 조국강산을 지켜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하산하여 버스정류장에서 올려다본 광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