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Barecellona)(2)
<카메라를 잘못 취급하여 바르셀로나의 사진을 모두 날려버렸음>
2012년 11월 25일(일) 맑음 높은 구름
날씨가 우리나라의 가을의 중반에 들어선 것처럼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다가 낮이 되면 활동하기에 알맞은 기온으로 바뀐다. 11시경 여관을 나서서 카탈루냐(Catalunya) 광장으로 갔다. 광장 안에서는 아이스링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분수대가 있고 동상들을 사방에 세워놓았다. 동상들은 역사적 인물의 동상들이 아니라 대부분 창작조각품들이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도로는 La Rambla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람블라 거리는 좌우에 좁은 차도가 있고 중앙은 넓은 보행자 거리이다. 보행자 거리에는 울창한 숲으로 덮였으며, 노천카페도 있고 기념품과 각종 편의점들이 들도 있는가 하면 거리공연자들도 있고 거지들도 있다. 인파의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갔다.
나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 좁은 통로로 많은 사람들이 들고나기에 그리로 따라 들어가 보았다.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 들어갔더니 고딕식의 건축물인 성당이 나타났다. 11세기 로마네스코 양식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건립된 것이라 한다. 이 성당은 관광객들에게 일요일만 무료로 입장을 시킨다고 한다. 성당 주변의 많은 건물들이 로마시대의 유적이라 한다. 레이 광장 주변이 모두 로마 유적지로 보수 발굴작업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좁은 골목이긴 하지만 중후한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La Ribera 지구로 갔다. 바다가 가까운 지역인데 중세에 바르셀로나의 해외 무역의 중심지로서 부유한 상인들이 거주하는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데 피카고 초기 작품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피카소 미술관을 나와서 산타마리아 데 마르 교회(Esglesia de Santa Maria del Mar)로 갔다. 사타마리아 델 마르 교회는 카달루냐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우아한 건축물로 곱힌다고 한다. 미사가 막 끝나고 신자들의 점심식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픈 다리를 쉴 겸 성당 안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왔다. 이 성당도 대부분의 서양의 성당들처럼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 그런데 신자석과 회랑 사이의 석주들이 큰 장식없이 높이 천장을 받치도 있는데 회랑과 신자석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알 광장을 거쳐 다시 람블라거리로 나왔다. 높이 솟은 콜럼비아 기념탑이 보였다.
람블라 거리는 입맛을 다시게 하는 노천 카페들이 이어지고,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는 거리도 한참 이어지고, 한쪽에서는 마임 복장의 거리공연자들도 행락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또 거리의 악사들도 감미로운 선율로 행락객들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었다.
인파의 물결 따라 바다위의 부교로 올라갔다. 부교 위에서 콜럼비아 기념탑을 바라다 보았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가르키며 부하들을 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에서 서양인들의 개척정신을 보는 듯하였다. 부교를 건너오려하는데 통행이 차단되면서 부교 중앙이 갈라지고 내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20여분 서 있는 동안 내 뒤로 줄을 선 인파가 콜럼버스 동상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다시 부교가 이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어간 곳은 큰 백화점 같은 건물과 놀이터였다. 백화점 앞의 한 벤치에 앉아 바르셀로나 항구의 내항을 바라보았다.
항만 가운데에 두 개의 철탑을 세우고 우측 언덕 Place de L'Armada와 케이블 카를 운행하는데, 항구에 있는 Place del Mar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철탑 위로 올라가서 케이블 카로 갈아타고 Place de L'Armada로 갈 수 있도록 연결해 놓았다. 대단한 역사(役事)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4시30분인데 해가 기울고 부교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기 시작하였다.
5시가 되자 도시가 불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분주하였다. 음식점을 비롯한 몇몇 영업장을 제외하고 건물들이 문을 닫아 거리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유럽사람들 대부분이 저녁 때가 되면 가정으로 돌아가서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는 것 같다.
저녁에 여관에 돌아와서 저녁 밥을 짓는데 젊은녀석들이 시쓰럽게 떠들고 버르장머리 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만든 음식을 제 멋대로 맛을 보고, 저들끼리 떠들어댔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온 학생들인데 이곳 대학을 다닌다고 하였다. 그런데 시간을 함께 하면서 관찰해 보니까 아주 명랑하고 재미있는 녀석들이었다. 까불락거리는 것 말고는 무척 순박한 학생들이었다.
2012.11.26 (월) 맑음
오전에는 인터넷으로 valencia와 Granada에 있는 Hostel을 예약하였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하루 더 묵어가기로 하고 여관에 1일 추가 요금을 지불하였다. 어저께 산타마리아 교회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이 자기들이 묵고있는 민박을 소개하기에 거기로 옮겨서 하루 더 묵어갈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민박의 주소는 알았으나 주소내 건물의 어느 층인지 알 수가 없고 전화도 알아두지 못하여 민박에서의 체류는 포기하였다.
오늘은 람블라 거리의 우측을 돌아보았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이 있는 곳에 갔더니 월요일은 휴관하는 날이었다. 피카소 미술관이나 바르셀로나 미술관 가운데 하나는 꼭 보려고 하였는데.... 미술관이 있는 거리의 건축물이나 건물의 벽에 도안 내지 그림들이 색달라보였다.
미술관에서 거리를 따라 내려오는데, 어떤 한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가기에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거기는 Art School이었다. 2년제 미술학교인데 16세에서 18세의 학생들이 재학한다고 한다. 이 어린 남녀 학생들 가운데 상당한 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정에서 버젓이 담빼를 꼬나 물고다녔다. 선생들인지 일반 직원들인지 나이든 사람들도 교내 뜰악에서 담배를 피웠고, 학생들의 끽연을 무심히 바라볼 뿐 제재를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고루하고 경직된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인가?
이 학교를 나와서 재래식료품시장(Mercat de La Boqueia)에 갔다. 아침이라 그런지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재래식료품 시장과 별차이가 없어 보였다. 다르다면 내 안목만으로 본 진열된 식품들 가운데 식물성보다 육류를 취급하는 가게가 더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먹거리 장사가 한창이었다. 무얼 좀 사먹어볼까 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보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결국 못 사먹고 군침만 삼키고 돌아섰다.
이발소에 6유로라는 커다란 글자를 보고 들어갔다. 이발사가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았다. 내가 거울을 쳐다보고 머리를 이리저리 보고 있으니까 이발사 녀석이 엄지손가락을 치겨세워보였다. 자기가 잘 깎았다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짧게 깎아서 시원하긴 하지만... 이발소를 나와서 조금 더 이동하는데 같은 골목에서 이발소가 계속 보였다. 대부분 내가 머리를 깎은 곳보다 2유로가 싼 4유로였다.
El Raval광장으로 갔다. 동쪽만큼 번창하지 않지만 El Raval의 넓은 광장에도 카페들이 있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행색들이 거지들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지 않는 곳인 것 같았다.
다음에는 산트 파우 교회(Esglesia de San Pau)로 찾아갔다. 그런데 이 교회로 들어서는 골목이 지저분하였다. 거리에는 무슬림 복장이 많이 보였다. 교회 옆 건물은 학교인데 대다수가 무슬림 복장을 한 학부모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학교 안을 들고나고 하였다. 교회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흑인 두 명이 내 앞으로 오면서 무엇인가 요구하였다(돈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가지 않고 교회 옆 공원길을 돌아와버렸다. 이교회는 작지만 화려한 회랑이 돋보이는 바르세로나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어저께 가본 산타마리아 마르 교회를 다시 가서 좀 자세히 보고 싶어서 찾아갔더니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교회 옆에 붉은 색의 철조구조물(조각품?) 위의 끝부분에 불을 피웠는데 무슨 뜻의 조각품이며 또 불을 계속 피워둔 의미는 무었인지 궁금하였다.
Estacio de Franca로 나가서 다시 항구로 향하여 걸었다. 어저께 가보지 않았던 공원길을 걸었다. 어저께보다 사람들이 적어보였다. 월요일은 관광객들이 많이 줄어드는 것인가? 항구 공원 길이 아름답다. 항구와 항구에 정박한 요트를 비롯한 멋진 배들 그리고 항구 공원이 썪 잘 어울리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럼버스 상(像)이 있는 곳으로 나와서 람블라 거리를 통해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이탈리 학생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주인 남자가 와서 그런 모양이다. 녀석들이 어저께는 소란스럽게 굴더니 오늘은 양처럼 온순해졌다. 웃음이 나왔다.
2012년 11월 27일 (화) 구름과 비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오전에는 내일 발렌시아(Valencia)로 갈 준비를 해 놓았다. 비가 오전에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11시가 지나서야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구름이 옅어졌다. 점심을 해서 먹고 발렌시아 행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하여 Nord Barecellona로 같다.
버스표를 예매하고 Catelunya의 음악당을 찾아갔다. 음악당이 고딕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해서 찾기 쉬웠다. 카탈르니 음악당은 바르셀로나에서 모테르니스타 양식의 건축물로 명성이 높다. 1905년 루이스 메네크 몬타네르가 설계한 건물로 정기적으로 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오늘 공연은 몇 시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공연이 없다고 하였다.
카텔루나 음악당의 외관을 구경하고 익삼플레l'Eixample)로 가려다가 몬주익공원으로 향하였다. 카텔루나 음악당에서부터 걸어서 몬주익 공원을 찾았다. 상당이 먼 거리였다. 공원을 오르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공원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가지 전경이 눈에 들어올 것 같았다. 막상 공원에 오르니 숲이 가려서 시야를 막는가 하면 비가오고 옅은 안개까지 끼여서 시내가 잘 보이지 않았다. 비가 내려서 공원의 주요 지역을 두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희미하게나마 바르셀로나 시가지와 항구를 조망할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참으로 산책하기 좋고 멋진 경관들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인데 아쉬웠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이름난 건축물인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이 옅은 안개 속으로 아련히 나타났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역작인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한다. 상당히 먼 거리인 몬주익 공원에서 보아도 그 모양이 특이해 보여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런데 저기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하다. 무슨 귀신이 뒤집어씌였는지 모르겠다. 가지 않아도 별로 아쉽게 생각되지 않는 곳을 쏘아다녔으면서도 왜 저곳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성급하게 발렌시아의 호스텔을 예약하고 버스표를 예매하였는지 모르겠다. 바로셀로나에 온 목적 가운데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이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인데...
몬주익 공원에서 한국인 단체배낭여행단을 만났다. 그들은 인솔자를 따라 왔는데 몬주익 공원을 구경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하였다. 그 중 한 젊은이가 구경도 시원찮은 곳에 와서 비만 맞았다고 투덜대면서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비가 계속 내려서 공원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을 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바로셀로나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여관이다. 여관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라 주인이 친절하였고 거기에서 기숙하는 이탈이라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었다. 그들은 때 묻지 않은 순박하고 성실한 청년들로 보였고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일정을 좀더 늘여 느긋하게 있다가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이동을 서둘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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