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하이데라바드(1)
2005년 2월 9일(수) 맑음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4시 40분이었다.
Kacheguda에서 내린다던 옆 칸의 영감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는 바람에 나도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는 새벽어둠을 뚫고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열차내의 여기저기에서 불이 켜지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떠드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짜이와 커피 판매원들의 왕래도 시작되었다. 다섯 시 이십 분에 열차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전면 좌우로 가로등의 불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대도시에로의 진입이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5시 40분경에 옆 칸의 영감이 짐을 챙기면서 나에게 내릴 준비를 하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짐을 챙겨서 일어나 씨끈드라바드까지 간다는 여인과 두 청년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여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우리와의 작별을 무척 아쉬워하였다.
플랫홈에 내리니 전등불 저쪽으로는 아직도 어둠이 사방을 막아섰다.
우리는 날이 밝아질 때까지 여행자 대기실에 가서 쉬기로 하였다.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영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대기실을 찾아 들어갔다.
대기실은 대체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벤치 앞에 이슬람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열댓 명이 대기실 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아 있었다. 아기들을 곱게 차려 입혔는데 너무나 예쁘게 생겨서 아내가 안아 주려고 하니 낯설어하였다.
아기들에게 초콜릿을 주니까 얼른 받아들고는 아기들이 아내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아기들도 맛있는 먹이에는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부부와 그 가족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이슬람 가족들도 우리에게 대단한 호기심을 보이면서 우리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에서부터 우리의 신상에 관한 것까지 시시콜콜 질문을 부어대는 것이었다.
이곳은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것 같다. 역사에 나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이슬람 복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이 많이 보였다.
7시가 되니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7시 30분에 역사를 나와 오토릭샤를 탔다. 25루피로 하이데라바드 역 부근 Numppally Station Rd에 있는 Hotel Amnapurna로 가자고 하였더니, 릭샤왈라가 자기가 잘 아는 여관이 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한다.
나는 “호텔 엄나뿌르나”에 예약을 해 놓았다고 둘러댔다.
왈라는 자기가 소개하는 곳은 거기보다 훨씬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호텔 엄나뿌르나>로 가지 않으면 내려서 다른 차로 갈아타고 가겠다고 하였더니 그는 할 수 없이 ‘엄나뿌르나’에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 여관 엄나뿌르의 카운터에서 방이 없다고 하여 그냥 나왔다.
할 수 없이 거리로 나와 오토릭샤를 타고 하이데라바드 역 부근으로 가서 좀 구석진 곳이기 해도 한 사흘 묵기에는 괜찮을 것 같은 Hotel Ruma를 숙소로 정했다.
여관입구에 현대자동차 서비스 센터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공장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수위의 제지를 받았다.
그래서 여기에 한국인이 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여 실망하고 돌아섰다.
아침요기를 간단히 하고 오전에는 여관에서 빨래를 하고 휴식을 취하였다.
오후에는 Hussain Sagar에 있는 좌대없는 석불상을 보기 위하여 Lumbini Park로 갔다.
여관에서 룸비니 공원까지의 거리가 1km정도 밖에 안 된다는 말을 믿고,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걸어서 가다가 음식점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여관을 나서니 길 좌측에 울창한 수림이 들어선 공원(public Garden)이 보였고 우측으로는 각종 공공기관의 건물들이 있어서 음식점이 보이지 않았다.
1km이상을 걸었는데도 공원과 호수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좌측에 론니에 소개된 Kamat Hotel Rest이 보여서 거기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서비스도 좋고 음식도 깔끔하고 맛있었다.
음식점에 앉아 있는 인도 사람들의 면면이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아내의 안색을 훔쳐보니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고급 음식점을 이용하기는 어려운데...........
직원에게 ‘후쎈 싸거르’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꺼머트 호텔’에서 2km의 거리라고 하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의 카운터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1km라고 하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음식점을 나와서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룸비니 공원으로 갔다.
아주 조그마한 공원인데 입장료가 5루피이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굉장히 넓은 호수가 앞을 터주었다. 이 호수가 후쎈 싸거르이다.
호수 한가운데 불상이 서 있다.
공원 한쪽에 호수의 한가운데에 있는 석불상까지 왕복하는 유람선이 있는데 요즈음에 비수기라서 매시간 마다 1회 왕복한다고 한다.
우리는 1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승선한 사람들이 우리밖에 없으니까 출발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주소와 몇 가지 요긴한 기록물인 수첩을 벤치에 놓았었는데 금방 없어졌다.
수첩을 잃고 나니 영 기분이 좋지 않고 유람선을 출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하여 유람선 승선을 포기하고 말았다.
룸비니 공원에서 나와 오토릭샤를 타고 올드 타운에 있는 하이데라바드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는 Charminar가 있는 곳을 갔다. 그리고 유명한 Bajar를 돌아다녔다.
짜르미나르 앞에서 내리자말자 거지들이 떼거리로 달려와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감당이 안 되고 하여 그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갔더니 옷을 잡고 따라오는 여인도 있었다. 끝까지 상대해 주지 않으니까 떨어져 나갔다.
짜르미나르는 높이 56m, 나비30m인 네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기둥의 꼭대기에 뾰족탑을 올려놓았다. 짜르미나르가 하이데라바드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데 거리 한 가운데에 방치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건축물이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먼지와 오토릭샤를 비롯한 각종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을 뒤집어 써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릴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에 숭례문이나 흥인문보다도 더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짜르미나르 주위에는 상인들이 벌여놓은 상품들이 포진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바자르를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 시장은 없는 게 없을 것 같다.
각종 동전을 좌판에 늘여놓은 곳에 가서 혹시 우리나라 동전이 있는가 하고 보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100원과 10원을 한 개씩 주었다. Mecca Masjid에는 출입을 통제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기웃거리다가 말았다.
<은을 세공하는 곳이라하였다>
해가 기울 때까지 돌아다니다보니 다리도 아파서 오토릭샤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서인지 교통체증이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오토릭샤를 비롯한 각종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에 질식할 것 같다.
저녁식사는 여관 앞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려하니 아내가 슬며시 점심을 먹던 식당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서민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싫다는 얘기 같았다.
조금 아끼려다가 아내의 눈총을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Hotel Harsha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해결하였다.
이렇게 고급으로 맛을 들이면 안 되는데..........
여관으로 돌아오면서 맥주 한 병 사가지고 와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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