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한으로>
2005년 10월 24일 (월) 맑음
어제 저녁 10시에 테헤란을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에스파한 터미널에 정확하게 도착하였다. 웨이팅 룸은 열려 있지 않고, 나와 함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건물 밖에서 웅크리고 앉아 날이 샐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몸에 한기가 엄습해왔다.
5시가 되니까 웨이팅 룸을 열어서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웨이팅 룸도 썰렁하였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이면서 Amir Kabiv Hotel이 있는 곳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물었더니 자꾸 헛소리만 하였다.
드디어 6시가 되었었다. 버스 정거장으로 찾아 가는데 택시 기사가 15,000R에 태워주겠다고 하였다. 3,000R이면 된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다섯 배나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기에 버스를 타고 갈 것이라 했더니 그리로 가는 버스는 없다는 것이었다. Amir 여관은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데 그리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 택시기사를 상대하지 않고 버스 정거장으로 가니까 이번에는 10,000R에 태워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못들은 채하였다. 계속 따라오면서 이번에는 8,000R이란다. 내가 ‘5,000!’이라고 하자, ‘오케이!’라면서 타란다. 그래서 5,000R을 주고 여관으로 왔다. 버스 터미널에서 여관까지의 거리는 4km정도 되는 것 같았다.
여관Amir Kabir에 갔더니 방이 없었다. 8시에 체크 아웃하는 사람이 있으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종업원이 어떤 동양여인과 노닥거리면서 나에게는 통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어디에서 대기해야 하느냐니까 마음대로 하란다. 이런 불친절한 친구라니----
8시가 되었을 때 서양사람 한 무리가 여관을 빠져나갔다. 청소가 끝난 다음에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온 몸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요를 펴고 침대에 쓸어져 누웠다가 눈을 뜨니 10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밤새 차를 타고 왔으니 몸을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오전에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지고 다니던 빵과 토마토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Chehel Sotoun Palace를 찾아갔다.
이 궁정에 들어가면서 얼른 생각나는 것이 타지마할이었다. 타지마할처럼 저 안쪽에 아름다운 건물이 있고 그 앞에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만든 인공 연못이 있는데 연못 네 귀퉁이에 똑 같은 모양의 여인상과 사자상을 조각한 작품을 세워놓았다. 연못이 멋진 풍치를 맛보게 하였다.
사실 건축물은 타지마할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지만 동양적인 냄새에 신비감을 풍겼다. 건물 앞쪽으로 17세기에 Shah Abbas에 의하여 세워진 Reception Hall이 있는데 20개의 기둥(Pillars)들이 연못에 비춰져 40개의 기둥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Chehel Sotoun이라고 했다 한다.
건물 안은 작은 Museum인데, 각종 복식(服飾), 도자기 collection, old coins, Pottery 그리고 몇 권의 Qurans도 보였고, 단연 나를 압도한 것은 매인 홀을 꽉 매운 Frescoes였다. 벽면과 천장 전체가 프레스코화로 메워졌는데 파손되고 유실된 부분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잘 보존되었다. 건물의 웅장함과 내부의 프레스코 화와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의 조각품 그리고 출입구의 유리 모자이크 등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은 영원한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그것을 간직하고 보존하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을 연출하기 위해 끈질긴 노력과 희생과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유적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다.
Chehel Sotoun에서 Chahar Bugh Abbase St로 나와서 강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아침에 터미널에서 택시로 시내를 들어올 때도 느꼈지만 거리가 깨끗하고 잘 정비되었다. 전반적으로 도시가 푸른 숲으로 덥힌 것 같다. 매인 로드라고 할 수 있는 Chahar Bugh Abbase St는 길 좌우와 중앙을 수목으로 꽉 채워놓아 일반 교통로의 구실만 하는 게 아니라 거리가 공원 역할도 함께 하는 것 같았다.
30분 정도를 걸어서 Si-o-se bridge가 있는 Zayande River로 갔다. 한마디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Si-o-se bridge는 도보전용이다. 걸어서 건너가고 싶었으나 몸이 너무 피로하여 강둑에 앉아 바라보기만 하였다. 강변로에는 청춘남녀들의 아름다운 데이트 장면이 눈을 어지럽혔다.
유유히 흐르는 맑은 강물과 보트놀이, 분수와 분수가 만든 무지개의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았다. 강변에 조성해놓은 파란 잔디는 내 마음을 한결 더 부드럽고 파랗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캐나다의 오타와 강변의 풍치와도 비견할 만한 아름다움이다.
에스파한에서도 음식점 찾기가 어렵다. 아침 점심을 빵으로 대충 해결했지만 저녁식사는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 한다. 저녁 식사는 제대로 된 밥을 먹으려고 음식점을 찾았으나 도무지 식당이 보이질 않았다. 여관에서 알려준 식당에 갔더니 오늘은 군인들이 집단으로 왔기 때문에 일반 손님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길모퉁이에 허름한 음식점이 있기에 들어갔더니 커다란 가마솥에다가 고기를 넣어 삶는데, 거기서 고기 국물을 그릇에 퍼서 담고 짜파띠 한 개와 접시에 고기를 조금 담아서 손님들에게 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것으로 저녁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다. 손님이 꾀나 북적거렸다. 노린재가 나는 양고기였지만 먹을 만하였다. 식당에 있던 이란 사람들이 동양인인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From where?", "주누비 꼬레”를 연발하였다.
오늘도 꾀 많이 걸었기 때문에 피로하여 여관에 돌아와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사진들은 전부 SHEHEL SOTOUN과 그 내부의 프레스코고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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