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헤맸다<24>--에스파한3--

어르신네 2006. 6. 18. 22:05
 




  <에스파한3>

  2005년 10월 26일 (수) 맑음


여관에서 체크인을 아침 7시에 했으니 체크아웃도 아침 7시에 하란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하고 다시 확인하였더니, 여관의 규칙이란다. 좀 야박한 것 같아서 투덜댔더니 9시까지는 방을 비워달라고 하였다. 방에서 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9시에 짐을 여관에 맡겨두고 환전하려고 은행을 찾아갔다. 이란에서 환전을 세 번했는데 이번이 가장 좋았다. 1$ = 9,020R.


환전을 하고 Jameh Mosque(입장료가 5,000R)를 찾아갔다. 겉이나 내부가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그 규모가 대단하다. 중앙 광장으로 들면 조그마한 공간에 갇힌 것 같았는데, 각 방으로 나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그 넓이를 헤아릴 수가 없는 공간들이 나타나곤 하였다. 네모난 중앙 광장에서 각 방향으로 들어간 공간의 전체 규모를 생각하면 과연 장대한 규모의 모스크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란에서 제일 큰 모스크라고 한다.

Jameh Mosque는 11세기, 12세기의 Seljuk peiod의 평이한 건축 양식에 13,14세기 몽골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다양한 건축양식이 도입된 실질적인 이슬람 건축양식의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고 하였다.


Jameh Mosque 주변은 에스파한의 변두리지역이다. 모스크 주변은 재래식 농산물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도심에 비하여 많이 낙후된 곳이다. 상인들의 분주한 모습이 우리나라 시골 장터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Takhti Sq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가서 Shiraz로 가는 밤 버스표를 샀다(30,000R). 다시 Emam Hussan Sq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들어가려고 박물관 길 건너편의 잔디공원에 가서 앉았다. 과자로 점심을 대신하고 앉아 있는데 어떤 놈이 내 옆에 다가와서 유창한 영어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무슨 목적으로 왔느냐, 직업이 무엇이냐’ 등등 시시콜콜한 것을 묻더니, 자기도 극동지역에 여행할 계획을 하고 있는데 한국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한국 돈의 단위는 무엇이냐, 대표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위는 무엇이며, 그 화폐는 어떻게 생겼느냐, 한국 돈이 있으면 좀 보여 달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만 원짜리를 보여주려고 지갑을 껴내었더니 이 녀석이 이 지갑이 한국제품이냐면서 내손에서 뺏어보더니 이리저리 뒤져보고는 도로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에스파한에도 나쁜 사람들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자리를 떴다.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지갑을 다시 꺼내어 안을 보았더니, 환전을 하고 지갑에 남겨두었던 50$짜리 한 장을 빼가지고 가 버린 것이다. 박물관 관람할 생각이 싹 가벼렸다. 답답한 속을 풀길이 없었다.


Hasht Behesht Palace 뒤에 있는 공원을 거닐면서 잊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걸어서 다시 Si-o-se Bridge까지 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강물에 흘려보내리라......  강을 따라 걷다가 페르도시 다리(Ferdosi Bridge)를 건너서 맞은 편 강변에 앉아 분수가 만들어놓은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앞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 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우울한데 지나가는 학생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디서 왔느냐에서부터 시시콜콜한 것을 물어왔다. 나도 영어가 되지 않는데 저들은 외국인은 무조건 영어를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영어실력을 조금이라도 실험해 볼 요량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그들은 그 부근에 있는 대학의 학생들인데, 내게 와서 말을 붙였던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하였다.


에스파한에 대한 좋은 인상이 그 날치기 때문에 아주 엉망이 되었지만, 에스파한은 이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교통질서와 약간의 문제가 되는 시민정신(쓰레기 처리 습관 같은 것)은 앞으로 에스파한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에스파한의 자연과 문화유산이 빛을 더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편리하게 관광할 수 있도록 영어로 거리의 표시나 안내문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이곳 젊은 사람들의 복장은 전통 이슬람의 흉내를 내기는 했지만 서구화된 패션이 대부분이었다. 거리의 윈도우에도 서울 거리에서나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의류나 생활용품들이 넘쳐난다. 특히 전자제품은 여타지역과 마찬가지로 삼성이 독차지한 것 같고 거리를 다니는 승용차 중에는 기아의 프라이드가 길에 깔려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까.......


여관에서 짐을 찾아 7시 30분에 버스 터미널로 갔다. 오늘은 여행을 하면서 기분이 최고로 우울한 날이었다. 조심조심, 그리고 나쁜 것은 잊고 좋은 것만 생각하자--


Jameh Mosque


Zayande River의 분수가 만든 무지개

Si-o-Se Bri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