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지드(Yazd)에 가다>
2005년 10월30일 (일) 맑음
새벽 4시 30분에 야지드에 도착하였다.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온 프랑스 사람은 그 시간에 택시를 타고 여관을 찾아갔고, 나는 대합실로 들어가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대합실에는 난민 수용소처럼 긴 의자와 땅바닥에 자리를 펴고 잠자는 사람으로 만원이었다. 엉덩이를 붙일 만한 공간을 간신히 찾아서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조금 앉아 있으려니까 일군의 군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보고 신기한지 나에게 모여들어 짧은 영어로 같은 질문을 계속하였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직업이 무엇이나?’ 등등
택시 기사들이 여관을 안내하겠다고 했으나 사양하였다. 그 시간에는 여관이 문을 열어줄 것 같지도 않고, 또 이른 새벽(6시 이전)에 여관에 들어간다면 1박의 숙박료를 더 지불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택시 기사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살쾡이처럼 아예 내 옆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그 살쾡이 같은 택시기사에게 6시 이후에 버스를 이용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일 뿐 계속 내 옆에 서 있었다.
날이 밝았다. 택시기사에게 시내까지의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10,000R이라고 하였다. 내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3000R이지만 새벽이라 5,000R로 깎았더니 소톱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10,000R이라야 우리 돈으로 1,000원 조금 남짓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란 사람들의 수준에서 여행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야하지 않겠는가. 겨우 7,000R에 흥정하여 시내로 들어갔다.
Silk Road Guest House를 찾아 헤매다가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어서 눈에 띈 아르미르 착막 게스트 하우스(Amir Chakhmagh Guest House)에 들었다. 더블 룸인데 40,000R에 계약했다. 방이 대로(大路)와 붙어 있어서 행인들이 떠드는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다. 넓은 주방을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전에는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버스에서 지친 몸의 피로를 풀었다.
오후에는 빵 한조각을 먹고 여관을 나섰다. 여관에서 나와 Emam khomeni St의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왼쪽 바자르로 들어갔는데 아주 썰렁하였다. 좀더 들어가서 역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갔더니 행인도 뜸하고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다. 시장을 폐쇄한 곳인 듯하였다. 골목길이긴 하지만 통로가 횅하게 뚫려 있는데 왕래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계속 그 길을 걷기가 좀 부담스러웠다. 간간히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오다가다 한때씩 지나갈 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골목 양편은 흙벽인데 그 벽은 돌과 흙을 이겨서 두껍고 견고하게 쌓아올려 지붕까지 만들었다. 길 양편의 흙벽에 크고 작은 공간이 상점이었다. 아직도 몇 개의 상점이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자르로 사용되었던 골목을 가로지르는 다른 골목들이 있는데 대부분 주택지역으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바자르였던 어둑한 골목에 하나의 전기불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가보았더니, 한 노인이 전깃불 밑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다. 영감의 자리 맞은 편 벽에는 몇 켤레의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먼지를 하얗게 덮어썼고, 작업대에는 노인의 작업도구들과 바닥에는 가죽조각이 어수선하게 널려있었다. 그리고 막 일손을 끝낸 구두 한 짝이 왠지 마음을 끌었다.
노인은 그를 찾을 단골손님을 위해서 모두가 떠난 텅 빈 이 시장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이 시장이 생명을 다한 것 같은데, 왜 혼자서 이 시장을 지키고 있느냐.’고 노인장에게 묻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 노인은 앞으로도 그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그의 단골고객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 같다. 기다린다는 것, 누군가가 찾아올 사람이 있다는 것, 인생의 황혼에서 그보다 더 값진 것이 또 있겠는가!
노인장의 손으로 만든 구두를 그리워하여 찾아올 손님이 있기에 노인장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주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그의 고객이 되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그 노인과 눈으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텅 빈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외로이 앉아 있을 노인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Yazd의 Old City는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의 주택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집집이 지붕위로 솟아 있는 굴뚝처럼 생긴 바그디르(Bagdir - wind tower)라는 것인데, 미풍이라도 바그디르의 좁은 통로를 통하여 아래층 거실로 들어가게 하여 집안을 시원하게 하도록 디자인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골목골목에는 오래되고 낡아 허물어져 빈 집들이 많았는데 모두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골목길은 구부러지고 후미진 부분들을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 지역을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자긍심이 깃든 곳인 듯하다. 좀더 개발이 되면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와 닿을 것 같다. Old City의 골목에서는 지역 주민보다 나와 같은 배낭족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Jameh Mosque는 장대한 미나르를 가진 넓고 큰 Mosque이다. 벽면은 타일에 화려한 색상을 넣어 외장을 아름답게 꾸몄는가 하면, 내벽과 천정을 모자이크한 유리로 장식한 것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정신없이 모스크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쏘아 다니다가 어떤 사람에게 저지를 당하였다. 거기는 여자들만 들어가는 곳이었다.
모스크에서 나와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갔다. 집들이 모두 흙벽을 두텁고 높게 쌓았다. 집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마침 한 사람이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붙잡고 집 안을 구경하
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하여 들어가 보았다. 외형과는 달리 집안을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살고 있었다. 집 내부 구조가 아주 모던하다고 했더니 어느 쪽문을 열고는 그리로 들어오라 하였다.
아! 거기였다.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는 85세 된 노인이 앉아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무릎관절이 아픈 것 외에는 기력이 좋아보였다. 방은 두 평 정도밖에 안 되는 장방형인데, 차이 끓이는 물을 담는 용기가 방 한 구석 탁자위에 놓여 있고, 방 한가운데는 화로를 놓고 숯불을 피워놓았다. 그리고 화로 위에 차를 끓이는 조그만 주전자를 올려놓고 그 차이를 자주 따라 마시는 것 같았다. 방의 벽은 두꺼운 흙벽이고 천장은 돔형인데 한가운데 하늘이 보이도록 작고 둥근 구멍을 만들어놓아 방안의 탁한 공기가 모두 그리로 빠져 나갈 수 있게 하였다. 유리로 장식한 방문 문살도 좀 특이해 보였다. 이 방에서 그들의 전통생활양식의 일부분이나마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본 것 같다.
그 집을 나와서 Alexandet Prison으로 갔다.
입구 안내문의 제목은
저녁에 케밥을 사서 먹었는데 고기가 완전히 소힘줄이었다. 비싼 값에 제일 맛없는 저녁 식사였다.
야지드 버스터미널에서 맞이한 아침
Jameh Mosque
Jameh Mosque
장사꾼들이 다 떠난 바자르
바자르가 있었던 거리
구두방 노인
야즈드의 올드 시티의 골목길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는 노인과 그 아들
평생을 함께 했다는 카펫짜는 틀
알렉산더 감옥 - 지하 감옥에로 빛을 들어오게 한 천공(天空)
알렉사더 감옥들어가는 계단
알렉산더 감옥 바닥
실내에서 좁은 통로로 본 바그디르(Bagdir-wind tower)
아즈드의 올드 시티 복원사업 후의 조감도
<야즈드(Yazd)에 가다>
2005년 10월30일 (일) 맑음
새벽 4시 30분에 야즈드에 도착하였다.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온 프랑스 사람은 그 시간에 택시를 타고 여관을 찾아갔고, 나는 대합실로 들어가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대합실에는 난민 수용소처럼 긴 의자와 땅바닥에 자리를 펴고 잠자는 사람으로 만원이었다. 엉덩이를 붙일 만한 공간을 간신히 찾아서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조금 앉아 있으려니까 일군의 군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보고 신기한지 나에게 모여들어 짧은 영어로 같은 질문을 계속하였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직업이 무엇이나?’ 등등
택시 기사들이 여관을 안내하겠다고 했으나 사양하였다. 그 시간에는 여관이 문을 열어줄 것 같지도 않고, 또 이른 새벽(6시 이전)에 여관에 들어간다면 1박의 숙박료를 더 지불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택시 기사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살쾡이처럼 아예 내 옆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그 살쾡이 같은 택시기사에게 6시 이후에 버스를 이용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일 뿐 계속 내 옆에 서 있었다.
날이 밝았다. 택시기사에게 시내까지의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10,000R이라고 하였다. 내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까지 3000R이면 가능하다고 하였지만, 새벽이라 5,000R로 깎았더니 손톱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10,000R이라야 우리 돈으로 1,000원 조금 남짓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란 사람들의 수준에서 여행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야하지 않겠는가. 겨우 7,000R에 흥정하여 시내로 들어갔다.
Silk Road Guest House를 찾아 헤매다가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어서 눈에 띈 아르미르 착막 게스트 하우스(Amir Chakhmagh Guest House)에 들었다. 더블 룸인데 40,000R에 계약했다. 방이 대로(大路)와 붙어 있어서 행인들이 떠드는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다. 넓은 주방을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전에는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버스에서 지친 몸의 피로를 풀었다.
오후에는 빵 한조각을 먹고 여관을 나섰다. 여관에서 나와 Emam khomeni St의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왼쪽 바자르로 들어갔는데 아주 썰렁하였다. 좀더 들어가서 역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갔더니 행인도 뜸하고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다. 시장을 폐쇄한 곳인 듯하였다. 골목길이긴 하지만 통로가 횅하게 뚫려 있는데 왕래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계속 그 길을 걷기가 좀 부담스러웠다. 간간히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오다가다 한때씩 지나갈 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골목 양편은 흙벽인데 그 벽은 돌과 흙을 이겨서 두껍고 견고하게 쌓아올려 지붕까지 만들었다. 길 양편의 흙벽에 크고 작은 공간이 상점이었다. 아직도 몇 개의 상점이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자르로 사용되었던 골목을 가로지르는 다른 골목들이 있는데 대부분 주택지역으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바자르였던 어둑한 골목에 하나의 전기불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가보았더니, 한 노인이 전깃불 밑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다. 영감의 자리 맞은 편 벽에는 몇 켤레의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먼지를 하얗게 덮어썼고, 작업대에는 노인의 작업도구들과 바닥에는 가죽조각이 어수선하게 널려있었다. 그리고 막 일손을 끝낸 구두 한 짝이 왠지 마음을 끌었다.
노인은 그를 찾을 단골손님을 위해서 모두가 떠난 텅 빈 이 시장을 혼자 지키고 있었다. 이 시장이 생명을 다한 것 같은데, 왜 혼자서 이 시장을 지키고 있느냐.’고 노인장에게 묻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 노인은 앞으로도 그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그의 단골고객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 같다. 기다린다는 것, 누군가가 찾아올 사람이 있다는 것, 인생의 황혼에서 그보다 더 값진 것이 또 있겠는가!
노인장의 손으로 만든 구두를 그리워하여 찾아올 손님이 있기에 노인장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주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그의 고객이 되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그 노인과 눈으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텅 빈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외로이 앉아 있을 노인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Yazd의 Old City는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의 주택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집집이 지붕위로 솟아 있는 굴뚝처럼 생긴 바그디르(Bagdir - wind tower)라는 것인데, 미풍이라도 바그디르의 좁은 통로를 통하여 아래층 거실로 들어가게 하여 집안을 시원하게 하도록 디자인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골목골목에는 오래되고 낡아 허물어져 빈 집들이 많았는데 모두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골목길은 구부러지고 후미진 부분들을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 지역을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자긍심이 깃든 곳인 듯하다. 좀더 개발이 되면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와 닿을 것 같다. Old City의 골목에서는 지역 주민보다 나와 같은 배낭족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Jameh Mosque는 장대한 미나르를 가진 넓고 큰 Mosque이다. 벽면은 타일에 화려한 색상을 넣어 외장을 아름답게 꾸몄는가 하면, 내벽과 천정을 모자이크한 유리로 장식한 것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정신없이 모스크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쏘아 다니다가 어떤 사람에게 저지를 당하였다. 거기는 여자들만 들어가는 곳이었다.
모스크에서 나와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갔다. 집들이 모두 흙벽을 두텁고 높게 쌓았다. 집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마침 한 사람이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붙잡고 집 안을 구경하
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하여 들어가 보았다. 외형과는 달리 집안을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살고 있었다. 집 내부 구조가 아주 모던하다고 했더니 어느 쪽문을 열고는 그리로 들어오라 하였다.
아! 거기였다.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는 85세 된 노인이 앉아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무릎관절이 아픈 것 외에는 기력이 좋아보였다. 방은 두 평 정도밖에 안 되는 장방형인데, 차이 끓이는 물을 담는 용기가 방 한 구석 탁자위에 놓여 있고, 방 한가운데는 화로를 놓고 숯불을 피워놓았다. 그리고 화로 위에 차를 끓이는 조그만 주전자를 올려놓고 그 차이를 자주 따라 마시는 것 같았다. 방의 벽은 두꺼운 흙벽이고 천장은 돔형인데 한가운데 하늘이 보이도록 작고 둥근 구멍을 만들어놓아 방안의 탁한 공기가 모두 그리로 빠져 나갈 수 있게 하였다. 유리로 장식한 방문 문살도 좀 특이해 보였다. 이 방에서 그들의 전통생활양식의 일부분이나마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본 것 같다.
그 집을 나와서 Alexandet Prison으로 갔다.
입구 안내문의 제목은
저녁에 케밥을 사서 먹었는데 고기가 완전히 소힘줄이었다. 비싼 값에 제일 맛없는 저녁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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