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즈드의 마지막날>
2005년 11월 1일 (화) 맑음
오전 중에 여관에서 테헤란에 갈 준비를 하였다. 체크아웃이 1시라고 하여 12시 30분까지 방에서 쉬다가 체크아웃하고 짐을 여관에 맡기고 테헤란 갈 버스표를 사려고 나갔다.
버스표를 구입하고 엊그제 가보았던 Old City의 구두를 만들던 영감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런데 오늘 영감님이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엊그제 보았던 물건들이 어둠 속에서 그대로 보였다. 오늘은 무슨 일로 가게에 나오지 않았을까? 몸이 아픈 것은 아닐까? 꼬마 한 녀석이 나타나서 가게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무어라 주절대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영감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긴 한데.... 구둣가게 문이 닫긴 것을 보니 바자르(시장)로서의 실낱같은 생명줄 마저 끊긴 것 같았다.
올드 시티의 골목길을 헤집고 다녔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보다는 빈집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어느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사람이 살지 않았다. 집안의 많은 부분이 파손이 심하여 어수선하였다. 그러나 그 집의 윤곽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집 전체의 구조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토담집인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우측 터널로 된 통로가 있다. 5~6m 정도 되는 통로를 통하여 들어가니 안뜰이 있고 입구자집이었다. (중략)
그 집을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또 대문이 열린 집을 들어가 보았다.
젊은이 둘이서 방안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니 차이를 내어 놓으면서 들어와 앉으라고 하였다. 방 이외의 공간에는 작업도구와 두꺼운 비닐두루마리들을 쌓아 놓은 것으로 보아 폐가를 임시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손을 만져보니 험한 작업을 하는 손이라서 그런지 타이탄의 손이 아닌가 할 정도로 크고 두텁고 나무토막 같았다. 영어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가면서 혹은 내 책의 지도와 사진들을 보면서 손짓으로 혹은 몸놀림으로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자기 고향이 Hamanh이라고 하면서 거기에도 좋은 곳이니 놀러 오라고 하였다. 그들은 내가 나가려고 하자 저녁을 해주겠다면서 자기들이 사용하는 주방을 가리키기도 하고 밥을 먹는 시늉도 하면서 한참 웃겼다. 인정 많고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몸짓발짓 다하면서 재미있게 놀다가 나왔다.
이란에 21일간 체류허가를 받았는데 이제 나흘 밖에 남지 않았다. 기일을 넘기지 말고 출국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터키의 동부와 중부지역은 11월이면 겨울로 들어가서 춥기 시작한다는데 더 춥기 전에 터키의 중부지방을 돌아 지중해 지역으로 가야 한다.
6시경에 Amir Chakmagh Complex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짐을 가지고 터미널로 갔다. 시내로 들어갈 때는 7,000R으로 되었는데 이놈의 택시 기사는 10,000R을 기어코 받아갔다. 하여간 오늘 밤 테헤란으로 버스를 타고 간다.
<다시 타브리즈로>
2005년 11월 2일 (수) 맑음
밤새도록 달리는 버스에서 여러 번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새벽 5시가 조금 지났을 때 버스가 섰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버스기사가 나를 보고 빨리 내리라고 하였다. 여기는 터미널이 아닌 것 같은데 내리라고 하여 어리둥절해서 사방을 살피고 있으니까 또 재촉이었다. 옆 사람에게 ‘테헤란이냐.’ 하고 물어 확인한 다음에 내렸다. 차에서 내리니까 조수가 내 배낭을 꺼내 주면서 짜증스레 뭐라고 얘기하였지만 알아들 수가 없었다. 아마 욕을 했겠지!
내가 내린 곳은 터미널이 아니고 큰 도로변이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짐을 챙겨 자기들 갈 길이 바빴다. 지금 서 있는 곳이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가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 시간 정도는 지나야 하는데, 길거리에 마냥 서있을 수도 없고. 여기가 어디이며 터미널이 어디인지 물어볼 만한 적당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가방을 짊어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젊은이가 “영어를 할 줄 아느냐?” 하기에 “별로!”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혹시 무얼 노리는 놈은 아닐까?’ 불빛 아래지만 인상을 보니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여기가 테헤란의 남부 터미널 부근인가?”
“아니다. 서부터미널 부근이다.”
“테헤란 남쪽에서 오는 버스는 남부 터미널로 오는 게 아닌가?”
“우리가 타고 온 차는 야지드에서 카스피 해 지역으로 가는 차이기 때문에 남부 터미널로 들어가지 않고 서부 터미널 부근에서 테헤란 손님을 내려놓고 간다.”
그는 내가 알아들기 좋게 천천히 또박또박 친절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는 레바논 학생인데 인도와 파키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그 학생은 나를 타브리즈 행 버스 매표소까지 안내해 주고 버스표를 사는 것을 보고서야 자기의 갈 길을 간 것이다. 그의 도움으로 새벽어둠 속에서 어렵지 않게 서부 터미널에서 타브리즈 가는 버스를 바로 바꿔 탈 수 있었다.
야지드에서 온 버스가 테헤란 남부터미널로 와서 내려 주었더라면, 밤차로 타브리즈에 가야 하거나, 아니면 테헤란에서 하루 묵고 내일 가야 할 뻔하였다. 만약 오늘 밤차로 타브리즈로 가려면 남부 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지인 이맘 호메이니역에서 내려서 시내버스로 타고 서부시내버스터미널로 가야했다. 배낭을 짊어지고 남부 터미널에서 서부 터미널로 가려면 수월찮은 시간이 소요되고 힘도 들었을 것 같다.
참으로 좋은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에게 음료수라도 하나 사 줄 것을 그냥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타브리지행 버스는 아침 5시 40분에 출발하였다.
테헤란 시내를 벗어날 즈음하여 날이 밝았다. 테헤란에서 타브리즈로 오는 동안 버스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를 계속하였다. 좌우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농작물을 거둬들인 농토는 메마르고 건조해 보였다. 그러나 농장에는 수로를 그물처럼 잘 설치해 놓았다.
테헤란을 출발한 버스가 평야지대를 지나 산지(山地)로 접어들면서부터 오르막길이었다. 모든 산들은 민둥산이었고 그 민둥산 사이로 만들어 놓은 길을 끝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높고 험한 산골짜기로 접어들었다가 높은 고갯길을 힘들게 넘기를 수차례 하였다. 그러니까 타브리즈는 1,367m의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이다.
오후 3시 조금 지나서 타브리즈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러 가다가 바닥에 깔아놓은 철주(鐵柱)에 걸려 넘어졌다. 손바닥이 깊게 패이고 무릎을 시멘트 바닥에 부딪쳐 상처가 생기고 통증이 있다. 여행 중 이런 사고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
타브리즈는 어느 정도 지리에 익숙해서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전에 묵었던 다랴 여관으로 갔더니 영감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오늘 여기서 묵고 내일 국경을 넘어 터키고 가야 한다.
야즈드 전통가옥의 바그디르(Bagdir =wind tower)
Amir Chakmagh complex
모스크에서 사제의 강론을 듣고 있는 사람들
야즈드 올드시티의 빈집에 임시로 거처 하는 사람들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야즈드 전통가옥
테헤란에서 타브리즈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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