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65세의 젊은이가 중동과 동유럽을 해매다(31)<-반(Van)->

어르신네 2006. 9. 13. 23:54
 


 

<지난 6월 28일 <30회>분까지 여행기를 싣다가 갑자기 70여일을 타지에 가서 지내야 할 사정이  생겨서 그동안 여행기를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재미도 없고 지루한 느낌만 주는 글이지만 그래도 읽어주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계속 올리겠습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


<반(Van)>

2005년 11월 5일 ( 토) 흐리고 바람이 세차다 

반에서는 여러 제약 때문에 관광이 용이하지 않았다.

반 호(湖)에 있는 아크다마르 섬에는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하여서 아예 포기하고, 반 성(城 - Van Kalesi)으로 갔었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더니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 성위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나에게 급히 다가오더니 나에게 산위로 올라가자고 하면서 입장료는 성을 구경하고 나올 때 지불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6TL라는 것이었다. 책을 보이면서 2TL인데 무슨 소리냐고 하였더니 그건 학생요금이고 성인 요금은 6TL라는 것이었다. 날씨도 궂고 바람도 정신없이 불고, 또 이 젊은이가 나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반 성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버렸다. 그래서 구경하지 않고 돌아 나왔다. 반 성(城)에서 바라보이는 호수의 경치가 아주 좋다는데----


반 성 구경을 포기하고 돌아오면서 내일 디야르바크르로 가면서 버스 안에서 반 호수 구경을 실컷 하리라 생각하면서 박물관을 가 보았다. 박물관은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면 반(Van) 고양이라도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유줌쥐유르 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돌무쉬 정거장에서 Kampus행 돌무쉬를 0.5TL 주고 타고 갔다. 대학입구에서 반 고양이의 집은 우측으로 가야 했다. 군 막사 뒤쪽에 있는 어느 가정집 같은 집이 있는데, 거기가 반고양이를 유줌쥐유르 대학에서 사육하는 곳이다.


고양이가 크지는 않고 모두 흰색이며 눈의 색깔이 양쪽이 서로 틀리다고 하여 자세히 보니 한쪽은 노란색인 것 같고 다른 한쪽은 푸근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정확한 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반 고양이는 반의 마스코트라고 한다. 그런데 역시 고양이로서의 앙칼진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과자를 몇 개 던져 주었더니 서로 견제하면서 과자를 가져가려는 놈에게 다른 놈들이 달려들어 손도 못 대게 견제하였다.


반 고양이 집을 나와서 유즘쥐유르 대학 구경을 할까 하다가 반 호수가 가까워 보이는 마을 쪽으로 향하여 걸었다. 반고양이 집에서 호수로 가려면 대학구내로 들어가는 것이 더 가까운 거리였는데, 마을이 있는 곳으로 가는 바람에 2km나 되는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언덕이 보이기에 그곳을 넘으면 바로 호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언덕 위는 평평한 평지로 꾀 넓은 농경지가 있고, 그 농경지 저쪽에 마을이 있고 마을 끝부분이 호수 가장자리였다.


마을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반겨주는 사람들은 귀찮은 동내 사내 녀석들이었다. 이 녀석들이 나를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동내에 나이 든 남정들은 다 외출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애들과 여인들만 보였다.


호수의 물이 바람에 몹시 일렁이었다. 물을 묻혀 입에 대보니 염기가 있었다. 호수 가장자리의 모래 빛이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내가 들어간 곳에 깔려 있는 모래는 모두 검정색이었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좋아서 호숫가 검정색 모래위에 앉아 있으니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서 나를 에워싸고 같이 앉았다. 호기심이 많은 녀석들이니 귀찮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느낌에 내가 맞춰주어야 편할 것 같아서 손도 만져보고 얼굴도 빤히 쳐다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만져도 보고 했더니 이놈들이 아주 내게 붙어 다녔다.


동네 아이들을 달고 호숫가에서 마을로 들어갔다. 어떤 할머니가 마당에 서 있기에 그 집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야겠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을 하면서 흙벽돌 건물의 문이 특이해보이기에 열어도 괜찮은지 물어보았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손녀가 되는 듯한 소녀가 나타나서 아주 밝은 얼굴로 문을 활짝 열었다.


거기에는 소가 여러 마리 있었다. 그 옆의 다른 문을 열어보니 각종 농사에 필요한 연장들과 말안장과 같은 장신구들을 잘 정리정돈을 해 놓았다. 또 다른 문을 열었더니, 주방인지 주방 보조 방인지 식료품과 주방기구들이 있었다.


할머니가 거실로 들어가면서 나를 들어오라고 하니까 소녀가 내가 앉을 의자를 가져오면서 아주 살갑게 대해 주었다. 거실은 깔끔하고 바닥은 카펫을 깔아서 아주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거실 입구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마루 같은 곳인데 그곳을 지나면 그 안에 거실 겸 침실이었다. 안쪽으로 그런 거실 겸 침실이 두 개가 더 있었다. 


구경을 시켜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려니까 할머니가 ‘차이’, ‘차이’를 연발하였다. ‘차이’를 마시고 나서 무슨 말을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더니 조금 있다가 젊은 아주머니가 빵을 한 접시 가지고 나왔다. 빵이 아니라 설탕뭉치이었다. 무척 달았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그 달디 단 것을 다 먹어치웠다. 맛있게 다 먹어주는 것이 대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것 같기도 하였다. 오늘 점심식사는 그것으로 해결해버렸다. 이슬람 사람들은 라마단 기간이 막 끝날 무렵에 그렇게 단 음식을 해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바로 엊그제가 라마단 기간이 끝난 날이었다.


이 집에는 딸아이가 무척 인정이 넘친다. 할머니의 말씀에 고분고분하면서도 처리해야 할 일을 알아서 척척해나가는 것 같았다. 이집에는 아주 극심한 장애아가 있었다. 이 장애아가 허우적거리며 사진을 찍고 싶어 하니까 이집 딸아이가 그를 아기 다루듯이 안아서 같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또 차이를 마실 때 차를 흘리지 않고 마실 수 있도록 도왔고, 내 옆에 와서 앉고 싶어 하니까 나의 의사를 물어서 그를 부축하여 내 옆에 앉히는 등 장애아에 대하여 지극 정성이었다. 딸아이뿐 아니라 모든 식구들이 그랬다.


한 시간 남짓 앉아서 살펴보았지만 이 집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보고 돌아올 때 마음이 훈훈하였다. 그 집을 나올 때 기념으로 줄 만한 물건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마침 500원짜리 동전이 있어서 기념으로 가지라고 소녀에게 주었다.


이란에서는 레스토랑을 찾지 못해서 종종 밥을 굶을 때가 있었는데 터키는 그래도 먹는장사가 많아서 식사문제는 어려움이 없지만 노는 날이 많아 여행자에게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저녁 때 디야르바크르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하였다. 반(Van)에서 하루쯤 더 머물고 싶긴 한데 날씨가 추워서 호숫가에 쉽게 나가 볼 수도 없고, 따분하게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렇고 해서 내일 떠나기로 하였다.

집에 전화를 하였다. 한 달 가까이 전화가 없어서 무척 걱정을 하였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자주 전화를 해야겠다.

Van 호수


동네 개구장이들


Van 호 가까운 마을의 어느 가정집


반(Van) 고양이


반(Van) 성